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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중지추 May 06. 2024

살아온 힘, 살아갈 힘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일을 했다. 직무가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큰 틀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나의 문제건 타인의 문제이건 아니면 조직의 성격이건 나와 잘 맞아 떨어지는 직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직무도 있었다. 항상 나와 맞아서 에너지 넘치게 일을 했던 것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오랫동안 계속하고 있는 건 우선 생계 유지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하고 ,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는 건 큰 리스크없이 생계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도전을 한다는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 안에서 새로운 도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뽑아 써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럴만한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두번째는 자기계발에 대한 푸시가 없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니 자기계발에 대한 푸쉬가 전혀 없는건 아니지만 내가 별로 애쓰지 않아도 되는 정도였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누가 눈총을 주는 사람도 없고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자신의 역할과 직무만 다하면 되는 업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세번째는 직무의 스프레드가 넓다보니 개중에는 나와 맞는 일이 있다는 점이 꽤 큰 작용을 했던 것 같다. 나와 맞는 일을 발견한다는 건 나를 발견한 기쁨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생계유지를 위한 일에서 시작했지만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한 시간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기한을 맞추기 위해 새벽 기상과 새벽 취침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돌발 상황에 대처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걱정을 한시도 내려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자기 계발에 대한 푸쉬가 없었지만 끊임없이 문서를 읽고 책을 읽었고,  나 홀로 자기계발을 하고 독서를 하고 글쓰기를 하며 끊임없이 나는 살아있으려고 했다. 나와 맞지 않는 일조차도 펑크를 내지 않기 위해 배우고 적용하며 나를 인내한 세월이었다. 또  나와 맞는 일은 누구보다 잘해내기 위해 열심히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일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일을 한다는 건 어느 한쪽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게 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고, 하기 싫지만 하지않을 수 없는 그런거 말이다. 

때때로 이 바닥에서 군살이 박힐 대로 박힌 사람들이 관록이 있어보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 뻔한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지겹고 쳐다보고싶지도 않을 때도 있다.

어느정도는 서로의 모습에서 배울점이나 존경할 점을 찾기보다는 자신안의 또다른 모습을 타인에게서 발견하면서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타인에게 투영시키기도 한다.

동시에 맘맞는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를 즐긴다. 사소한 대화에서 비롯되는 웃음으로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기도 한다. 맘에 맞지 않는 사람과도 실없는 대화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대화를 하면서 가끔은 맘에 드는 구석을 발견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친함, 호감 그런 것과 상관없이 서로 서로 조그만한 간식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마음을 읽는다. 구내 까페를 찾아 망중한을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문서를 들고 가서 읽어야 할 정도로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그 많은 시간동안 나는 계속 생각이란 것을 한 것 같다. 이 바닥을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완전히 적응하고 이 바닥의 문화와 생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가끔씩 의미를 발견하면서 제대로 살기 위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이란 걸 한 것 같다.

직장이란 그런 곳이다. 삶의 총체성이 투영된 곳 같은 거 말이다. 

이제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더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생각은 덜하면서 몸을 더 움직이려고 한다. 운동을 좀 더 하고, 몸을 더 움직여서 몸을 만들고 싶다다. 

또 나는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서 마냥 즐거운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성공으로만 가득차지는 않을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음에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미래가 아니라서 실패라고 규정하지 않고, 거기에서 또 시작하고 싶다는 말이다. '끝장'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삶은 다시 시작된다.  끝장 같고 막장 같은 곳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같이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그들에게도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작지만 확실한 나의 행복을 찾고 싶다. 그리고 그런 행복을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다. 순간 느끼고 휘발되는 그런 행복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그런 행복의 조건 같은 거 말이다.  내가 우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나를 찾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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