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날들 Sep 08. 2024

사랑과 결혼 그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신데렐라와 왕자님은 그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사랑의 결말은 언제나 아름답다. 나도 그런 사랑을 꿈꾸던 날들이 있었고, "오래오래 행복하다"라는 말은 먼지 한 톨만 한 슬픔도 없는 완전무결한 행복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 10년 차가 되고 보니 똑같은 문장 뒤에 이제는 "정말요? 그럴 리가요"라고 적는다.

한 심리학자는 "그. 후. 행. 복. 하. 게. 살. 았. 다."는 말은 문학에 나오는 가장 비극적인 문장이라고 했다. 여러 세대에 걸쳐 가능하지 않은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잘못된 신화라고. 우리는 모두 변하지 않는 사랑을 꿈꾸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이란 없다.

1. 사랑 
사랑의 시작이 설렘이라면 그것을 지속하게 해주는 것은 의지이다. 권태, 미움, 익숙함, 서운함, 실망, 불안함 같은 '사랑의 민낯'까지도 끌어안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마음의 태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이 구간을 견디지 못해 소멸된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음을 자각하게 해주는 첫 신호는 설렘이다. 그런데 설렘을 느끼게 해주는 '도파민'이 정점에 달할수록 뇌는 이것을 위험 신호로 인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안정을 요하는 억제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설렘이 안정감으로 바뀌는 과정을 권태로 인식한다. 그리고 권태로움은 곧잘 사랑을 파괴시킨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를 시전 하며 달라진 서로에게 실망하고 상처를 받는다.

관계의 이상신호를 감지할 때 우리는 방어기제를 발동시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방어기제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방어기제를 받아줄 여유가 없다. 힘든 문제는 그때그때 이야기로 풀어야 하는 사람과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한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이 설렘을 지나 익숙함으로 모습을 바꾸는 구간을  버티기 위해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어기제로 관계의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지 상대에게 잘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선 또한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2. 결혼
아름답고 예쁘기만 할 것 같은 사랑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가면 의지의 문제는 더욱 중요해진다. 연애가 상대에게 들뜨고 설레는 일이라면 결혼은 상대에게 예측가능성을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결혼은 일상이다. 일상 안에 있기 때문에 외롭고, 불행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외로움이란 건 관계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속성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내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너를 만나 함께 일상을 이어가는 과정이 결혼이다. 누군가로 인해 행복해지기를 기대한다면 아마도 그로 인해 가장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다.


갈등이 없는 관계는 없다. 완벽하지 않은 내가 완벽하지 않은 타인과 사는 일은 서로를 위한 배려와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되도록이면 서로의 존재가 덜 다치고, 덜 아프게 지켜주면서 함께 다듬어져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은 평생 계속되고, 그렇게 조금씩 깊어지고 넓어지면 결혼도 안정 궤도에 도착하게 된다.

3. 그 후의 일상
신데렐라와 왕자님은 그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증오의 감정과 분노가 널을 뛰다가도 어떤 날은 서로가 안쓰럽기도 하고 그렇게 롤러코스터처럼, 바이오리듬처럼, 오르락 내리락을 무한 반복하는 과정을 거쳐... 이하 생략.) 살았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사랑을 사랑답게, 결혼을 결혼답게 맞이할 수 있다.

사랑은 한 번도 영원하고 완벽한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 결혼은 불완전한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때론 넘어지고, 때론 미워하고, 고맙고, 미안하고, 눈물도 차올랐다가, 행복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 무수히 많은 마음들을 켜켜이 쌓아는 일상이다. 그 일상을 함께 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서로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신뢰하려는 의지이고, 사랑은 이러한 의지가 지켜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때 설렘이 주는 달콤함이 사랑의 전부라 생각했다.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아팠다. 하지만 이제 사랑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안다.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세계가 함께 물들어가기 위한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만도, 내내 행복하지만도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을 모두 잘 이수하고 나면 나만이 부를 수 있는 '사랑'의 의미를 찾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말라는 거냐고, 묻는 너에게 나는 "좋은 사람 있으면 꼭 해야지"라고 답했다.
친구야, 잘 들어야 돼.
"좋. 은. 사. 람" 여기가 포인트라고.

p.s. 사랑에 대해 쓰려다 결혼에 대해 각을 잡고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제가 결혼 10년 차라 차오르는 말이 많아서는 결코 아닙니다.


이전 03화 다정한 안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