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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히는 세상

by 희수공원 Feb 18. 2025

  '결국 볼 수 없게 되는 건가.'


   이미 한 달 전부터 세 곳의 병원을 다니며 혹시나 오진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랜 문진과 상담, 그리고 여러 복잡한 검사들에 더 지치는 것 같았다.

  

   일렁거리며 뿌연 눈앞이 약이나 수술로 깨끗이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요즘 의술이 얼마나 좋은가 그러면서 말이다. 의사는 사진 속 내 눈의 아주 작은 점을 가리키면서 시신경이 손상되고 있다고 했다. 눈에 뭔가 떠다니는 것은 없는지 물었을 때 나는 20대 초 대학교 때 생각이 났다.

  

   눈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던 때가 있었다.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던 중이었는데 한참 눈물을 흘린후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 이후 회색 얼룩 같은 것들이 눈앞에 떠다녔지만 눈은 잘 보여서 병원에 가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뿌옇게 왜곡되는 시야가 계속되어 병원에 가서 딱 한 번 레이저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사실 그게 무슨 치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의사는 그때부터 관리를 잘했었어야 했는데 하며 안타까워했다. 회색 얼룩이 떠다니는 것을 비문증이라 했다. 그런 증상 후에 망막이 찢어지거나 들뜨는 망막박리가 생긴 거라며 아마도 망막박리 증세 초기여서 레이저치료가 가능했을 거라는 얘기를 했다. 망막이 찢어지면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눈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후는 어땠었는지 문진 시간이 마치 최면을 걸어 특정 기억을 꺼내려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 이후엔... 눈이 뜨거워지면, 두통이 오고 구토가 날 때도 있고, 그리고 이 삼 일 후부터 편두통에 눈앞의 한 부분이 안보이기도 했었다는 말을 전하자 의사는 꽤 심각한 표정으로 그제야 정밀 검사를 하자고 했다.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수정체의 넓게 뿌연 부분을 가리키면서 신경이 죽으면서 서서히 시력을 잃을 수 있다며 정밀 검사를 다시 하자고 했다. 눈을 빛으로 뒤지고, 빛 반짝이는 만큼 집중해서 버튼을 누르는 검사를 하는데 현기증이 나면서 구토가 났다. 의사는 안압이 너무 높아 상태가 안 좋다면서 시신경은 복구가 불가능하니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전했다.

  

   '결국 실명하게 될 겁니다.'

  

   건조한 목소리의 의사는 그 결국이 언제쯤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로아의 해맑은 저 얼굴을 제대로 못 보면 어떡하지? 준하에게 아침의 첫 루틴인 모닝 에스프레쏘를 제대로 못 만들어주면 어떡하지? 안아주고 뽀뽀하고 재킷을 받아 옷걸이에 걸어 스타일러에 넣어 오른쪽에서 두 번째 버튼을 눌러 작동시키는 것 같은 정교한 일들, 눈앞이 둔하게 불투명이 될 때마다 일상의 잔잔한 기쁨을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슬픔과 공포를 준하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지속이 가능할까. 어떤 결단이 필요할까. 나 자신만 생각하며 살기에는 너무 큰 책임과 부담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할 수 있는 한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로아는 항상 밝다. 웃음을 참지 않고 눈물도 참지 않고 빽빽 시끄럽게 돌아다니며 블록 쌓기 놀이를 한다. 아무런 걱정도 없고 불안도 없는 저 순진무구함에 넋을 빼앗기고 있을 때 그 순간들의 기쁨을 누리며 애써 다독이며 살고 있었다.

  

   로아의 두 번째 돌이 다가올 무렵 로아에게 단호박 수프를 만들어주려고 호박을 썰다가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바로 급하게 주우려 하다가 손을 베었다. 나의 쓰라린 비명에 로아가 달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불안과 공포가 엄습했다. 저 떨어진 칼을 로아가 만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희서! 희서! 피! 피! 아야 해요! 아야..."

  

   로아가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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