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와이프와 함께 넷플릭스 영화를 함께 보았다. 6888 중앙우편대대라는 영화인데, 2차세계대전의 막바지에 편지를 받지 못해 사기가 많이 떨어진 군인들에게 그 동안의 밀린 우편을 알맞은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임무를 맡은 흑인여성부대의 이야기이다. 물론 이 편지를 받은 군인들의 사기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정도로 많이 올랐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렇듯 편지를 받는다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받는 사람의 기분을 고조시켜주고 존중받고 행복한 사람임을 증명해주는 수단이 된다. 하지만 가끔 이러한 편지에도 예외가 있는데. 그러한 편지는 받는 것, 그리고 뜯는 단계 하나하나마다 행복감과는 별개로 긴장되고 조마조마한 순간을 선사한다. 나에게 그러한 편지는 건강검진 결과편지이다.
20대까지만 해도 술을 멀리하고, 평균 이상의 운동량을 자랑하던 나였기에 2년에 한 번씩 받는 건강검진은 가벼운 이벤트정도였고 그 결과지를 받는 순간들도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나 스스로가 건강이 예전같지 않음을 느끼는 세월의 초입구간에선 이러한 건강검진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게 되었다. 30대 초반부터 콜레스테롤 이상(이상지질혈증)의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건강 하나만큼은 자부하던 나에게 건강검진 결과표에 적힌 '정상(경계)' 판정은 나의 삶을 천천히 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쳐야한다고 혼을 내는 담임선생님의 호통이었다.
그리고 작년, 나는 다시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검진을 두려워하지만 반드시 수치를 좋게 만들어야한다는 일념하에 이번에는 대장, 위 내시경, 복부초음파, 경동맥검사 등 다양한 검사셋트로 무장했다. 오전 내내 건강검진을 받고 2주 뒤. 드디어 편지를 받는 순간이 왔다. 우편함에 들어있기만 해도 떨리는 병원이름이 박힌 우편 봉투. 나는 이 신줏단지를 집으로 가져 들어왔다. 아니 고이 모셔왔다. 나의 경건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되면 결과지의 수치가 좋게 나오지 않을까하는 초등학생의 마음으로 돌아가 식탁위에서 천천히 뜯어보았다. 그 결과는...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가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물론 식단과 운동을 빡세게 한 건 아니지만 내 나이대에서는 평균 이상으로 조절하고 관리하였기 떄문에 이정도까지 오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슬펐고 두려웠다. 이제 곧 가장이 되는 나에게 이러한 건강 이상신호는 정말 받고 싶지 않은 편지였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유튜브에서 다양한 내용을 검색했고 나는 듣기 좋은 말들만 취하기로 마음 먹었다. 즉,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콜레스테롤 간(나쁜, 좋은, 중성)의 비율이 중요하다는 한 의사의 말만 믿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 스스로에게 계엄령을 내렸다. 지금의 나는 아침에 항상 귀리를 챙겨먹고, 점심 식사, 저녁 식사때마다 샐러드를 챙겨가서 본식을 하기 전 5분간 샐러드를 먹고 본식을 시작하는 습관도 들이고 있다. 또한 운동량도 예전보다 늘려서 일주일에 주 3회 이상의 근력 운동, 50km이상 런닝하기라는 소소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딱 1달만 노력해보고 피검사를 다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이러한 불편한 건강 관리 습관에 적응이 된건지, 아니면 달갑지 않은 편지를 또다시 받기가 두려운건지, 여전히 나는 검진을 받지 않고 있다. 노력한 기간이 긴 만큼 더 좋은 수치가 나오리라 핑계를 대며 우리 레몬이가 태어나기 전, 건강검진 수치가 좋아진 아빠의 모습으로 레몬이의 인생 첫페이지에 등장하도록 더 노력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