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문 흔적, 벽시계 뒤에 남은 삶의 색깔
2011년, 오랜 꿈이던 단독주택을 완공했습니다.
설계부터 인테리어까지 하나하나 직접 고민하며
"가족이 편안하게 머무는 공간,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입주 후, 부모님과 친척,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하였고 지인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곡선이 아름다운 엔틱 목재 벽시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시계를 거실 한 부분의 위쪽에, 집 안 어디서도 잘 보이는 자리에 걸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시계는 그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하루를 기록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건전지를 교체하려고 시계를 떼어보니
벽에는 뚜렷한 그림자가 남아 있었습니다.
집을 지을 때 건강과 환경을 생각해, 바닥과 벽은 황토로 미장하였고, 천정과 벽은 목재로 마감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목재는 점점 짙은 색으로 변했지만, 시계가 걸려 있던 자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계가 가리고 있던 부분만, 세월의 흔적을 비껴간 듯 처음 그대로의 색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시계가 고장 나거나 이사를 가게 되어 시계를 떼어낸다면, 그 자리는 한눈에 띄는 부조화로 남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갑니다.
가족과 친구, 이웃, 동료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색을 조금씩 덧칠해 갑니다.
어떤 사람은 주위와 잘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색이 강해 주변과 다른 빛으로 남습니다.
말 한마디, 작은 행동, 미소 하나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색깔처럼 남습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때, 우리가 있던 자리에 남은 흔적이 밝고 따뜻한 색일 수도, 어둡고 부조화로운 색일 수도 있습니다.
벽시계를 바라볼 때마다, 오래된 목재에 남겨진 흔적처럼 그 자리의 그림자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바라건대,
나의 흔적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빛으로 남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