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동행자 이야기 2 - 하준 아빠 이야기
마음을 크게 먹고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내일 잠깐 나갔다 올까?”
“어디? 호수공원?”
“아니, 주민센터.”
“서류 뗄 거 있어?”
“하준이 장애인 등록하려고……”
“……”
“……”
그렇게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나는 안다. 아내의 울음은 고마움의 눈물이고 안쓰러움의 눈물이다. 나의 눈물은 아내에게 미안함에 대한 눈물이고 아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다는 기쁨의 눈물이다. 그렇게 눈물, 콧물 쏟으며 한참을 울다가 서로의 비루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한껏 울고 웃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필요한 서류를 챙겨서 주민센터에 갔다. <장애인 등록 및 서비스 신청서>에는 온통 ‘장애’라는 용어가 가득했다. 원래 ‘할인’, ‘감면’이라는 글자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지던 나였지만 지금은 그냥 검은 글자에 불과했다. 나는 가벼운 설문지에 응답하듯 빈칸들을 무덤덤하게 채웠다. 참 오래 걸렸다. 주민센터까지 10분, 신청하는데 10분, 돌아오는데 10분, 고작 이 30분을 위해 참 힘겹게 돌아왔다. 장애 등록을 했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다. 그저 우리가 가는 길에 이정표를 확인한 것이다. 우린 그냥 지금처럼 아이가 자기 속도대로 자랄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정돈된 느낌이다.
집에 도착했다. 뒤늦게 들어온 아내가 웃으며 따뜻하게 안아줬다. 아내가 술상을 차리고 있었다.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장독대같이 깊고 넓은 이 여자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간장 종지 같다. 결혼하길 참 잘했다. 생각을 고쳐먹길 정말 잘했다. 내 마음 그릇이 밥그릇 정도로 커진 느낌이다.
나는 그동안 혼자서 묵묵히 모든 것을 잘하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 아들을 보면서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난 내 아들이 혼자 오롯이 독립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주변에 요청하고 도움받고 살아가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아이의 몫이고 삶이다. 지금처럼 도움을 받다 보면 도움이 있는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용기를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 용기를 발판 삼아서 나 자신을 ‘삶을 살아갈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인식한다면 이미 나보다 멋진 삶을 사는 아들이 되어있을 것이다.
철없던 내가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아들이 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우리 집의 첫째 아들이었을 것이다.
“아들아 세상에 정답은 없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각자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단다. 그러니 너는 너만의 길을 만들어가면 된다. 아빠가 응원할게! 그리고 정말 고맙다. 나를 아빠로 태어나게 해 줘서……”
그리고 나를 기다려준 아내에게……
“여보 하준이같이 멋지고 특별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던 건 당신과 내가 한 팀이 되었기에 가능했어요. 고맙고, 사랑해요.”
“그리고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