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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ye Apr 14. 2024

45살에 워킹맘이 되다.

자의반 타의반 육아독립

 언니가 도와주면 되겠지. 어린이집도 있으니까.


돌이켜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무계획에 가까운 계획을 가지고 워킹맘 세계에 입성했다.


7개월 만에 복직을 하게 되었을 때도, 큰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출근길에 아이를 언니네 맡기고 퇴근길에 데리고 간다는 계획은 3일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

남편과 나 모두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고, 육체적으로도 녹초가 된 상태로 퇴근하기 일쑤였다.

자연스럽게 나와 아이는 주중엔 언니네서 생활하고 주말엔 집으로 가는 패턴이 되었다.

당시 회사의 살인적인 업무량과 소문난 호랑이 상사의 압박은 출산 후에는

더 큰 무게로 다가왔다.


대학교 입학해서 6년간 언니네서 살았고, 조카들과도 막역한 사이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의 집 생활이었다. 두 집 모두 티는 안 냈지만 서로의 불편함이 커져가던 때에

마침 시어머님이 합가를 하자고 먼저 제안해 주셨다.


시어머님은 한복일을 하셨고, 어느 정도 재택이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합가를 해서

아이를 나눠 보는 게 아이와 우리 부부한테도 모두 좋은 상황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합가를 추진했고 그렇게 약 8년간의 합가 생활이 시작되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시부모님과 살면서 크고 작은 갈등의 순간들은 꽤 많았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이 있는 성인 4명이 한 집에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어떨 땐 사소한 오해나 서운함도 큰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라는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은

어찌어찌 봉합되고 해결되며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며 분가 얘기가 잠시 나왔지만, 코로나 때 입학한 아이는 여전히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았고 시어머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분가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찾아왔다.

아이의 3학년이 끝나가는 겨울, 어머님은 갑자기 아가씨네로 가야 하겠다며 선언하셨다.

아가씨네 아이들을 봐줘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상황적으로 당연히 그래야 했기에 우리 부부도 바로 수용했다.


아이의 등하교부터, 학원, 집에서의 생활까지 이제 모두 온전히 부부의 몫이 되었다.

아이는 4학년이 되었지만, 모든 걸 혼자 하기엔 아직은 이른 나이었다.  


어머님이 우리에게 준 시간은 2~3주에 불과했고, 우리 부부는

사실상 아무 준비도 없이 겨울 방학을 맞아야 했다.


다행으로, 남편은 아이의 겨울 방학에 맞춰 1달짜리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다.

(그동안 남편이 회사에 갈아 넣은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아이가 11살이 되어서야 우리는 아이의 방학 계획과 등하교 동선

학원계획 등 아이의 하루를 계획했다.

이제야 온전한 부모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2023년 1월,  45살에 온전한 워킹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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