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이 끝나갈 무렵 나는 무척 조급했다. 몇 번의 연애는 실패로 끝났다. 딱히 결혼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 시장의 시장 참여자가 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비유하곤 했던 여자 나이에 나도 모르게 세뇌가 되어 있었던 걸까. 그때 나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평생 못 만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요즘이야 십 년 전과는 결혼 세태가 많이 달라졌지만 결혼 적령기를 앞둔 남녀 모두 비슷한 불안감을 안고 있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두 사람은 사회적, 경제적, 정서적으로 연결된다.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 설계하고 나란히 걸어갈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것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너무너무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나의 불안감은 사뭇 더 절박한 재질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 마음속 구멍을 채우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진상을 부려도, 시험대에 올려도, 하늘이 그를 속일지라도!
내 편이 되어 줄 단 한 사람.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여정은 부모님이 나를 정서적으로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몸도 마음도 다 자라지 못한 미숙한 존재가 역시나 미숙한 대상들 속에서 꼭 맞는 영혼의 단짝을 찾으려고 했다. 마음의 구멍을 퍼즐처럼 맞추려고 해도 서로의 주파수는 항상 엇갈렸다.
나는 비틀린 방식으로 친구에게 애정을 구걸했다. 그가 나의 한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라듯이, 나 역시 그의 단 한 사람이 되길 바랐다. 애초에 성사될 수가 없는 거래였다. 가족을 대체할 사람이 필요한 건 나뿐이었다. 끝 모를 짝사랑을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나의 유치한 소유욕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그라들었다. 이제 진짜 성인이 되었으니 나도 연애란 것을 해 보자! 우정은 우정일뿐! 이제 사랑을 찾아가는 거야!
아.. 근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나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문제를 품고 있었다. 건강하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익힐 수도 없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고마워하기는커녕 화를 냈다.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없는데 멋대로 나를 좋아한 상대방에게 화가 났던 것이다.(과거의 나야, 반성하고 또 반성해라.)
위축된 마음과 오만한 태도는 매력을 갉아먹는다. 연애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였다. 관찰력이 좋은 대신 감정을 다스리며 상대방과 소통하는 데는 쥐약이었다. 갈등의 소지가 생기면회피하다가 어느 순간 그동안 애써 참아온 것까지 모아서 터뜨리는 식이었다. 도화선에 불이 붙은 시한폭탄 같은 나의 감정 그릇.
나의 전 남자친구들(현재 남편 포함)은 하나같이 내가 과하게 화를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참아온 것은 모르겠느냐, 이 어리석은 중생들아.'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내가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억울함을 쏟아 내며 나를 화나게 하는 상대방의 아둔함을 비난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좀처럼 수긍도, 동의도 하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그저 어안만 벙벙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