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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강 Nov 07. 2024

운이 좋았던 해외생활

번외 2. 텃세

 인니어도 어눌하고 건설업도 모르는 핏덩이 어린애의 말을 들어주는 현장 사람은 없다. 고육지책으로 돈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커피도 사고 음료수도 산다. 고향에 간다는 직원에게 오토바이 기름값이나 하라며 한 두푼 보태준다. 하지만 돈으로 산 환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처음엔 고마워하던 이들은 나중엔 당연하다는 듯 더 큰 돈을 요구한다. 돈을 빌린적이 없는데 채무자가 됐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 고민 끝에 돈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살 생각을 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현장 사람들한테 돈으로 환심을 사면서 사람들하고 안면은 텃다는 점이다.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말도 조금씩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특히나 친해진 녀석들은 내게 한가지 조언을 해줬다.     


"Mr. 강은 얼굴이 너무 하얗고 어려보인다.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다. 당신이 보스(상급자)로 느껴지지 않는다."     


 마초남을 사랑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카리스마는 리더쉽의 가장 큰 자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 말을 들은 직후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소장님이 쓸데 없는 짓거리말고 수염이나 깍으로 하신다. 어쩔수 없이 수염을 깍은 후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란 속담처럼 염치없이 소장님께 현장을 휘어잡을 방법을 물어본다.     


"카리스마고 지랄이고 여기는 돈이 최고야. 너 경리하지?"     


 소장님은 은근히 해답을 던져주시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소주만 마신다. 생각해보니 카리스마가 리더쉽의 자질 중 하나라면, 돈은 리더의 필요충분조건과도 같다. 돈과 관련된 유명한 말이 있다.


No Money, No Honey. 돈 없으면 여자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저 단어를 현장에 적용할 것이다.

No Respect, No Money, 나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당신들은 청구한 비용을 돌려 받지 못할것이다.     


 현장에는 짜잘한 영수증이 많이 돌아다닌다.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현장에서 선 구매 후 나중에 비용처리를 한다든지, 현장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사용되는 비용 중 개인 비용인지 숙소비용인지 애매한 비용을 영수증 처리한다든지 말이다. 이때, 경리가 만만하면 직원들입장에서 모든 일이 일사천리지만, 나처럼 마음속 한구석이 삐뚤어져 있는 경리를 만나면 이들에겐 재앙이다.     


 자재운반 트럭에 기름 넣으며 자신의 오토바이에 넣을 기름을 뺴돌린 사람. 주유소에 버려진 3만원짜리 영수증을 주워와 경비 청구하는 이들. 숙소에서 필요한 세제같은 걸 살 때 담배 몇갑 가격을 세제나 물값에 녹여서 만든 조작된 영수증을 제출하는 이들 등 각양각생의 횡령이 눈에 보인다. 국방부에서 봤다면 생계형 횡령이라며 봐주겠지만, 현장에서는 어렵다. 문제가 조금이라도 있는 비용에는 지급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사람들의 항의가 거세진다.     


 나 하고는 말이 안 통하고 소장님은 무섭다. 현장 사람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본사에 있는 박이사, 심지어는 사장님한테까지 연락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문제가 있는 영수증을 처리해 줘라는 말을 할 순 없었다. 그저 살살 하라는 말뿐이었다. 최후의 수단도 통하지 않자 그들은 결국 굴복했다. 텃세는 끝이 났다.     


 물론 텃세가 끝이 났다는 말이 저들이 말 잘듣는 개가 되어 나를 따른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말을 걸면 대꾸는 해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더는 대놓고 내게 돈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인도네시아에 취업한지 두달이 돼서야 현지인들 사이에 비좁고 들어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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