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터진마돈나 Jun 01. 2023

모피코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암치료를 받으러 가다.

항암 하기 전에 필러 좀 맞고 올게.

우리는 언니의 암치료를 위해 상하이에 있는 중입자치료 센터를 고심 끝에 선택했다.

우리의 결정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 한국 병원의 교수들은 콧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선진의료 기술을 마다하고 일본도 독일도 아닌 중국 상해라니..

우리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온갖 안 좋은 얘기들 예를 들면 하반신 마비가 올 수도 있고 귀가 안 들릴 수도 있고 실명할 수도 있고.. 듣다 보니 "그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잖아"  겁 많고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언니에겐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치료계획이었다.

반면, 희귀 암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에 비해 환자수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아 치료 케이스가 많았던 중국에선 긍정적인 대답을 보내왔기에 두렵지만 미지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실,

언니가 암 선고를 받은 후에 내로라하는 교수들에게 받았던 거만하고 싸늘한 진료들을 되짚어 보면 나는 다시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된다.

tv에 나오는 슬기롭고 혜자스러운 의사 선생님은 적어도 암병동에서는 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교수님들께는 질문도 허락되지 않았고 5분 이상 우리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으니 죄인 아닌 죄인처럼 기죽어 다소곳이 앉아 있다 나오기 일쑤였고, 어느 여교수는 자신의 퇴근시간에 맞춰 의사가운을 벗어던지고 옷을 갈아입으며 "머리카락 싹 다 빠지니까 가발 준비하세요"라고 여자가 여자에게 더없이 건조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뱉어냈다.


그렇게 중국행을 결정하고 나는 언니의 의료기록들과 온갖 서류들 상해에서 한 달 동안 체류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챙기느라 분주했고 그에 반해 나의 철없는 언니는 항암을 하면 살이 빠질 것을 염려해 피부과에서 볼을 빵빵하게 만들어 한껏 어려진 얼굴로 돌아왔다.


아.. 이 여자.

아직 본인이 말기암 환자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건가?  해맑다 못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다.

그렇게 상해로 떠나는 날 언니는

언니가 가장 아끼던 모피코트를 두르고 에르메스 백을 들고 뾰족한 하이힐을 신었다.

그 누구도 언니가 말기암 환자임을 알 길이 없었고, 복시로 한쪽눈에 안대를 쓰고서도 선글라스 쇼핑에 정신이 없었다.

'누가 우리 언니 아니랄까 봐'

속도 없이 천진한 언니를 보며 그날 나는 얼마나 눈물을 참았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는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암환자임을 지우려 노력했던 게 아니었을까..

무서웠을 나에게 "걱정 마.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라고.

내가 열 살. 언니가 열두 살이었던 해. 시골 꼬마 둘이 이모집에 간다고 기차 타고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가 떠오른다. 청량리 맘모스백화점 앞에서 처음 본 고층빌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나를 자기는 서울 꼬마인 양 내 손을 꼭 쥐어잡으며 "바보같이 위에 쳐다보지 말고 내 손 꼭 잡고 따라와. 여기서 내 손 놓치면 큰일 나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라고 말해주던 든든한 언니의 모습으로.

언니에게도 처음이었던 낯설었을 그 길을 어른이 되어 더 단단하고 커진 그 손으로 나를 잡아주었다.

그렇게 언니는

또각또각..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빵빵하게 차오른 아이 같은 얼굴을 한 채, 언니 앞에 펼쳐질 것들에 대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

이전 02화 꽃은 아름답게 지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