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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Dec 28. 2023

한쪽소설-나는야 부동산 전문가

부동산 투자자로 거듭나고파하는 사람 이야기

어스름한 저녁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하도 자주 와서 그런지 낯익은 경비아저씨가 눈인사를 한다.

생애 첫 집을 살 때보다 더 많이 방문했다.

부동산 책과 강의에서 집은 여러 번 볼수록 좋다고 했다.

오전과 오후가 다르고, 새벽과 저녁이 또 다르고, 평일과 주말에 주는 느낌이 또 다르며, 해가 좋을 때와 비가 올 때 또 다르다고 했다.

몇만 원짜리 옷 하나 살 때도 이것저것 비교하고 입어보고 고민하고 사는데, 하물며 몇억짜리 집을 사는 건데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하고 따지는 건 당연하다.

이런 나보고 유난이라고 혀를 내두르는 남편이 이상한 거다.


우리가 살 첫 집을 살 때도 남편은 탐탁지 않아 했다.

회사에서 공짜로 관사를 제공해 주는데 왜 굳이 집을 사야 하냐며 투덜댔다.

그도 그럴 것이 관사는 남편 회사 바로 옆에 있어 출퇴근이 편했는데, 사려는 집은 시내에 있어 훨씬 멀기 때문에 짜증이 날만 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산 집에 이사해서 살아보니 남편은 상당히 만족스러워했다.

비록 4억짜리 집에 대출이 2.5억이나 됐지만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뿌듯함과 새 아파트에서 좋은 커뮤니티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만족감으로 행복해했다.

물론 우리가 사자마자 한 달 만에 집값이 5천만 원이나 오른 것도 남편이 행복해하는데 한몫하긴 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집값이 4억에서 5억이 되었는데, 이제 남편은 회사에서 부동산 전문가 행세를 하고 다닌다.

자기가 처음 집 사는 걸 반대한 것은 까맣게 잊은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첫 집으로 부동산에 재미를 보니 관심이 계속 생겼다.

그러다 깨달은 건 집 한 채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부동산 강의를 듣고 스터디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니 2채는 기본이고 최소 3채는 되어야 다주택자 소리를 들었다.


나도 못할 것 없다는 생각에 집을 한 채 더 사려고 열심히 물색 중이었다.

아직은 우리 아이들이 어리지만 나중에 크면 우리가 들어가서 살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해 우리 도시에서 제일 학군이 좋다는 동네로 정했다.

그 근방 아파트 단지들을 다 돌아보다가 1980년대에 지어진 5층짜리 아파트 단지를 찜했다.

부동산에서는 곧 재건축이 될 것이며 대지지분이 많아서 넓은 평수를 공짜로 받게 될 것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물론 인터넷으로 사전조사를 다 마치고 부동산에 방문한 거라 이미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전문가에게 들으니 신뢰가 더해서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또 단지 곳곳에 조합 설립 인가니 안전 진단 통과니 하는 대문짝만 하게 붙여있는 플래카드들이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렇게 우리 예산으로 살 수 있는 제일 작은 평수 18평짜리 매물들을 모두 둘러보고 리모델링이 안되어 가장 싸게 나온 집을 1순위 후보로 정했다.

그리고 나는 그 집을 지금까지 2주 동안 수도 없이 보고 있었다.

요즘은 추워서 그런지 부동산 정책 때문인지 집을 사려는 사람이 전혀 없어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그래서 부동산에서도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도와주었다.


여러 번 집을 본 결과, 큰 흠이 없다.

집을 사기로 결심하고 가격 협상에 들어간다.

3억에 나온 매물이었는데 리모델링도 해야 하니 2.8억까지 해줄 수 있겠냐고 부동산에 말을 꺼내본다.

가격을 맞춰주면 바로 사겠다는 신호를 확실히 보내면서.

부동산은 내가 드디어 집을 살 것 같자 화색을 띠며 적극적이다.

이 매매를 성사시키면 바로 전세입자도 구해야 하니 부동산에서는 내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이런 비수기에 매매 중개 수수료에 전세 중개 수수료까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역시나 부동산에서 현란한 말솜씨로 집주인을 설득한다.

지금은 집값 하락기이며 이 매수자에게 못 팔면 언제 또 매수자가 나올지 모르니 기회 왔을 때 잡아야 한다며 전화로 한참 이야기한다.

결국 집주인이 부동산에 설득되어 계좌를 알려주자마자 나는 바로 가계약금 500만 원을 쏜다.

혹시라도 집주인이 마음을 바꾸지 않도록 쐐기를 박아야 한다.

가장 빠른 날로 계약서 작성일을 잡는다.


부동산에서 나오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그 집 샀어. 오늘 가계약금 보냈거든? 계약서는 이번주 주말에 작성하기로 했고, 잔금은 일단 두 달 후로 정하려고. 그 안에 전세입자 구해지면 치르게."

"뭐? 결국 그걸 샀다고? 제정신이야? 진짜 왜 그래. 우리가 돈이 어딨 어서 사냐. 그렇게 돌아다니더니 결국 일을 쳐?"

"다 계산 나오니까 산 거지! 내가 몇 번이나 설명해 줬잖아! 1천만 원으로 간단히 욕실이랑 주방만 수리하면 2억에 전세 금방 맞출 수 있다니까? 여기 낡았어도 입지 좋아서 전세가 비싸다고. 그러면 집값이 2.8억이니 9천만 원만 있으면 된다고. 그거 여보랑 나랑 신용대출하면 바로 나와! 안되면 지금 집 추가담보대출하면 그만이고. 내가 다 알아봤어? 걱정 마."

"아니~ 요즘 금리도 높아서 집값도 떨어지는 추세더만 왜 그러냐. 진짜. 그 다 낡은 집이 어떻게 오르냐고. 말이 되냐? 누가 거기 들어가 살아!"

"이래서 부동산 모르는 사람이랑은 대화가 안돼요. 두고 봐. 여기 곧 재건축돼서 금방 오를 거라니까. 여기 사람들이 엄청 열정적이야! 분위기 바뀌면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를걸?"

"어휴... 아 몰라 몰라. 이거 떨어지면 다 니 책임이다! 니 알아서 해!"


투덜대는 남편의 전화를 끊고 집으로 향한다.

회사에서는 부동산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정작 나랑은 대화가 하나도 안 통한다.

대출 잘 나오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남편이 없으면 이 거래는 불가능하기에 잘 달랠 수밖에 없다.

오늘 저녁은 남편이 좋아하는 소갈비를 해야겠다.

이제 진짜 부동산 투자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발걸음이 가볍다.

나도 곧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세입자 구하기도 집수리도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잔금까지 무사히 치르고 마음 편히 지내던 어느 날,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홍노노 봤어? 집값 떨어졌잖아! 어떻게 할 거야! 진짜 이러기야?"

"무슨 소리하는 거야. 집값이 왜 떨어져. 흥분하지 말고 말해봐."

"아니~ 오늘 실거래가가 떴는데 집값 떨어졌다고! 우리보다 2천만 원이나 싸게 산 사람이 있다고! 2.6억에 실거래가 올라왔단 말이야!"

"뭐? 말도 안 돼! 누가 그 가격에 팔아! 내가 제일 싸게 산거라고 부동산에서 그랬다고!"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하겠냐고. 빨리 확인해 봐! 내가 그러게 사지 말라고 했잖아! 지 맘대로 사더니만은. 쯧쯧"

얼른 전화를 끊고 어플을 확인해 보니 남편 말이 진짜다.

나보다 더 싸게 거래가 되었다.

이럴 수가!


부동산에 당장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0동 00호 산 사람인데요. 그때 전한테 분명 제가 제일 싸게 샀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앞으로 저보다 더 싸게 살 사람 절대 없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오늘 보니까 저한테 거짓말하셨네요!"

"네네 기억하죠~ 그런데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왜 그러시는 걸까요."

"오늘 실거래가 뜬 거 보니까 2.6억에 거래가 됐잖아요.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하하하, 아~ 그래서 전화하셨구나. 그거 지인 간 거래예요. 이모가 조카한테 싸게 넘긴 거예요. 솔직히 누가 그 가격에 팔겠어요. 난 또 무슨 소린가 했네요. 그런 거 있으면 무조건 제가 샀죠! 요새 분위기 다시 좋아지고 있는데요! 근데 이런 거에 너무 일희일비하시면 안돼요. 아파트 가격이 뭐 주식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차피 등기도 치셨으니 마음 푹 놓고 기다리셔요~ 결국 다~ 올라요. 그러니 마음 편히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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