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메리 Sep 04. 2023

한쪽소설-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

첫번째

엄마가 오빠와 또 싸웠는지 혼자 집에서 울고 있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과 도시락을 들고 집에 도착한 나를 보더니 엄마는 고개를 떨구고 더 흐느낀다. 지긋지긋하다. 들고 온 비닐봉지를 식탁 위에 두고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하아... 언제쯤 끝날까... 가방을 던져놓고 방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에 그대로 누워 눈을 감는다.

“민경아... 민경아...”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아빠...?”
놀란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았다.
“그래, 민경아, 잘 지냈니?”
아빠는 말끔한 모습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니 갑자기 짜증이 치밀었다. 나도 모르게 경멸의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민경아... 미안해...”
아빠는 정말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진짜 그랬어요?”
아빠는 순식간에 싸늘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맥이 빠졌다. 정적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아빠는 입을 열었다.
“민경아... 그래도 아빠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단 걸 기억해줘. 너희가 아빠 없이도 잘 살았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표정을 하며 말하는 아빠를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차라리 아니라고 자기는 결백하다고 아빠를 믿어달라고 말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똑똑... 똑똑... 조심스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조용하지만 끈질긴 그 소리에 눈을 뜬다. 내 방 천장이다. 꿈이었나?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연다. 엄마다.


“민경아... 혹시 알바비 받은 것 좀 있니? 오늘까지 내야 되는 대출이자가 있는데 돈이 좀 부족하네...”


퉁퉁 부운 눈을 하고 미안해하는 엄마 모습에 방금 봤던 아빠 모습이 겹쳐 더 짜증이 났지만 꾹 참고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찾아 돈을 이체해준다. 한숨을 몰아쉬며 문을 닫고 내 방을 돌아보니 아까 던저놓은 가방에서 흘러나온 작고 허름한 마법상자가 보인다.


아... 저거 때문이었나... 편의점 앞에서 구걸하던 아이에게 폐기 음식들을 나눠 주었더니 고맙다며 준 마법상자였다. 그 아이는 마법상자를 주며 “누나가 궁금해하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 든 것이었다.


꿈이 진짜라고 생각되니 더 허탈하다. 아빠가 그 여자한테... 정말로 그랬구나. 성추행을... 했었구나. 엄마는 절대 아빠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동네 사람들도 우리 아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실상은 그 여자가 신고한 내용이 진실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혼자 목을 매달았던 거였다. 자신이 결백해서 자살한 게 아니었다.


장례식장에 온 그 여자가 생각난다. 온화하던 엄마가 정신이 나가 그 여자에게 너 같이 걸레 같은 년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온갖 욕을 해댔는데, 그 여자는 그때 무슨 심정이었을까. 자기는 경찰에 신고했을 뿐인데, 가해자가 자살할 줄 알았을까. 우리에게 미안했을까. 아니지. 그 여자가 왜 우리에게 미안해하나, 가해자는 아빠였는데... 그럼 우리가 미웠을까. 우리를 원망하고 있을까.


그래도 억울한 마음이 든다. 사고는 아빠가 쳤는데 왜 우리가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할까. 왜 우리가 그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그 일에 전혀 관계가 없었는데,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걸까. 그 여자도 나처럼 힘이 들까. 죽은 아빠는 참 멀쩡해 보이던데... 차라리 진실을 몰랐던 때가 나았다. 아빠는 영원히 나를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아빠였던 때가 나았다.

이전 03화 한쪽소설-분노의 질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