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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Sep 07. 2023

한쪽소설-'사회봉사 80시간'이지만 그녀가 이겼다.

유치원 선생의 아동 괴롭힘 소송 이야기

"엄마 그때 그 선생님들 어떻게 됐어?"
아이가 갑자기 2년 전 일을 물어봤다.
그녀는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아주 뿌듯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 선생들 엄마가 싹 다 혼내줬어.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만들었으니 걱정 안 해도 돼."
 
"진짜?
 그 선생님들이 나 막 쫓아와서 도망가다가 나 무릎 여기도 까졌었는데...
 나한테 왜 그랬나 몰라."
 
"그냥 그 선생들이 나빠서 그래.
 진짜 나쁜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다 벌 받았어."
 
"다행이다.
 엄마 멋지다!
 고마워! 사랑해!"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소송한다고 힘들었던 고생들을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달렸던 건가 싶었다.

유치원 원장이 부모들을 불러 동영상을 보여주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선생 몇 명이 아이들을 괴롭히고 놀리는 걸 찍은 것이었다.
아이에게 고추를 없애 버릴 거라며 떼가는 시늉으로 무섭게 하고, 스프레이 모기약으로 대머리로 만들 거라며 우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뿌리고, 아이가 넘어지는 걸 보고 너는 왜 그렇게 바보 같냐고 비웃는, 그런 동영상들이 그들의 단톡방에 잔뜩 올라와 있었다.
아이가 울고 그만하라고 비는 모습들이 너무 웃기다며 깔깔대고 웃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분노가 치솟았다.
원장은 자기도 저들이 저런 줄 몰랐다며 정말 죄송하다고 입으로만 내뱉는게 더 소름돋았다.

그때 같이 불려 갔던 다른 부모들은 처음엔 분노했지만 소송까진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제 유치원 졸업도 했고 지난 일인데 뭐 그렇게까지 해요",
"어차피 애들인데 금세 다 까먹을 겁니다.",
"이대로 그냥 조용히 지나가면 그런 일 있었는지도 모를 거예요."
다들 그 일을 그냥 잊고 넘어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자신을 기만한 그 인간들에게 잘못을 똑똑히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야 또 다른 희생양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자기 아이에 대한 증거만을 가지고 혼자서 소송을 진행해야만 했다.

 [사회봉사 80시간 처분 명령]
소송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가해자들은 아동학대처벌법상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자격증까지 회수된 건 아니었지만, 지역 원장들에게 소문이 돌아 취업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원장도 관리 감독 소홀로 같이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겼다.
소송 자료를 만드느라 아이가 당한 일을 몇 번이고 곱씹어야 했을 때는 정말 괴로웠다.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단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들어 포기해 버리고만 싶었다.
돈이나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처벌이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만약 다른 부모들도 같이 했다면 더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었을 터라 많이 아쉬웠다.

더 많은 증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이것만 내놓는 원장도 의심스러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경찰 측에서는 시간이 한참 지난 일이라는 이유로 증거를 잡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해주지 않았고 그녀 또한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는 사이 증거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가진 증거 만으로도 그녀가 옳았다는 것을 세상이 인정한다는 명백한 판결이였기에 억울함이 조금은 해소되었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왜 진작 선생님들이 너를 괴롭히는 걸 말하지 않았냐고, 왜 힘들다고 하지 않았냐고 묻는 그녀에게 아이는 말했다.


"엄마 일하고 피곤한데 걱정할까 봐 그랬지.
 엄마 힘든데 나까지 힘들게 하면 안 되잖아.      
 근데 엄마 이젠 선생님들이 잘해줘.
 그래서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이렇게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어떻게 그렇게 장난 삼아 괴롭히는 게 가능했을까.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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