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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속에도 남지 못 했던 나

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by 장원희

나는 내 일기장에도 솔직하지 못하다.

내 옛날 일기장을 돌아봤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에게 혼이 난 날 쓴 글이었다. 전 날 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잔 탓인지 종일 너무 피곤했다는 얘기만 가득했다. 분명 기억 속에 교무실까지 불려 가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날이 생생한데도, 뭐가 그리 창피했는지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은 이야기는 쏙 빠져 있었다.
그 날 뿐 아니다. 누군가 나를 보았을 때 실망할 것 같은 일들은 늘 내 머릿속에만 남은 채 어디에도 남아있지 못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말이다. 두꺼운 책에 감싼 채로 서랍 깊숙한 곳에 이중으로 숨겨 둔 일기장, 블로그의 비밀 글, 하다못해 내 핸드폰의 메모장에 적는 글 하나까지 꽤 엄격한 검열을 통과했다.

그렇게 하면 내 수치가 지워지는 것일까? 왜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나를 숨기기 급급했나.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내게 주어지는 기대를 하나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가장 두려운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누군가 내게 실망하는 때였다. 생각보다 성실하지 못한 애, 머리가 나쁜 애, 착하지 않은 애, 등 그래서 역시 너는 잘할 줄 알았어,라는 말이 달가우면서도 참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나에게 하던 검열은 스스로를 향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을까.

나는 내게 기대하는 게 없었다. 그냥 남들의 기대만큼 ‘잘’ 해야 했다. 나만은 알고 있었다. 가끔은 실제의 나라면 받을 수 없는 칭찬과 시선이 내게 향한다. 하지만 나는 내려놓을 수 없다. 그 기대가 깨지는 순간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두려웠다. 학원에서의 갑작스러운 테스트 시간, 초면인 사람을 만나 말 한마디를 조심하며 나를 쌓아야 하는 시간 등이 말이다.

어디에도 남겨놓고 싶지 않았다. 메모장 속 글조차도 그 글을 마주하는 순간 분에 맞지 않는 평가를 받으려 그토록 아등바등하던 내가 부끄럽고 날 들킨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랬기에 나는 계속 나를 숨겼다. 그건 숨기기보다는, 외면했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사실 돌아보면, 그 기대를 어기는 일은 아무런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기대한다. 그 기대는 이루어지기도 하고 깨지기도 한다. 다만 기대가 깨졌다고 실망한 적은 거의 없다. 고등학생이 밤을 새 게임하다가 수업시간에 졸아 선생님께 혼나는 일, 갑작스러운 영어 시험에 안 좋은 성적을 받는 일, 이제 와 생각하니 참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때의 나는 마치 그 하나하나가 여태껏 쌓아 온 나를 무너뜨릴 것처럼 과민한 삶을 살아왔다.

모두를 속인다는 마음이 들었을 거였다. 나만은 진짜 나를 알기에. 그래서였나 보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 날은 죽는 날로 남아 있었다. 모든 걸 들키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외롭기도 했다.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모두가 나를 알았다. 말투부터 선택 하나로 복잡하게 이루어진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얕은 거짓 하나로 숨겨지지 않았다. 그들도 나를 나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그토록 애쓰던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도 그렇구나, 하고 말았을 거였다. 그저 나를 더 잘 알았겠지. 그건 실망이 아닌 그냥 나의 한 요소를 새로이 깨닫는 과정이었다. 그곳에 좋고 나쁜 것은 없었다.

나는 이제는 숨기지 않는다. 지금도 종종 과한 기대를 받고는 하나, 그냥 한 두 번 어긋나는 걸 보면 나를 재정립하시겠거니 하고 만다. 이건 나를 나로 바라봐주었으면, 그리고 모두에게 떳떳하고 싶은 마음과도 같다.
학원에서 일하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럴 수 있지.”이다. 늘 잘 풀던 아이가 어느 날 많이 틀렸을 때에도, 당연히 알 거라 생각한 문제를 모를 때에도, 머뭇거리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그럴 수 있지,라고 웃으며 차근차근 함께하곤 한다. 잘할 줄 알았어, 웬 일로 이런 걸 틀렸네? 같은 말은 자꾸만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하지 못한다. 나는 모두를 지금의 너로 바라보고 있노라 알려주고 싶은 듯하다.

그날 일기장에 쓰지 못했던 문장을, 나는 지금에서야 쓴다. ‘나는 혼났고, 울었고, 속상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문장을 부끄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의 부끄러움도, 서툰 날들도, 지금의 나를 만든 조각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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