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나는 흔히 정상이라 일컫는 예전의 삶으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 나아지고 있다. 어떤 날은 주춤하여 어제의 결심을 잊고 흐트러지기도 하지만, 그 긴 일련의 시간 속에서 나는 좋아지고 있다.
목표를 정한 후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만이 최초의 성공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체중 감량이 그 예이다. ‘한 달 안에 10kg을 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대다수가 불가능하다는 답을 돌려줄 것이다. 보통은 이에 아예 포기해버리고 만다. 나는 이러한 질문을 볼 때마다 늘 생각했다. 목표가 어디든, 계속하여 노력하고 시도한다면, 목표와는 별개로 매일이 나아지는 것이 아닌가? 목표가 10kg 감량이든, 5kg 감량이든, 그 성취의 발판이 되는 것은 목표의 위치가 아닌 지금 나의 과정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말이다.
10kg을 감량하고 싶었던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한 명은 9kg을, 다른 한 명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둘의 현재는 분명히 다르다. 나는 이렇게 목표의 성취 즉, 완전한 회복보다는 그것으로 나아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굉장히 의미 있다고 본다.
처음, 난 회복을 포기했었다. 그때 내가 그리던 일상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한 꿈처럼 느껴지며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을 내일 죽어도 상관없을 사람처럼 지냈다. 그 속에서도 아마 가장 깊은 내면의 나는 그곳에서 회복하여, 다시 나를 되찾고 싶었던 것 같다.
문득 지겨워졌다. 늘 비일상적인 하루를 보내는 것도, 주위의 눈치를 보는 것도, 그 안에서 계속하여 나를 숨기는 것도 말이다. 그냥, 지금보다만 나아지자고 생각했다. 그 시절 가장 문제였던 건 충동이었다.
참는 건 초인적인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또한 충동의 관리에도 무작정적인 인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그즈음부터 내 충동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나는 그 대상을 과도하게 절제해 왔다. 이 충동은 분명 그 반작용이었으리라 생각했다. 굳이 순간의 충동이 아니어도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조금은 더 내게 너그러워져야 했다.
말처럼 쉽지 않다. 나는 그것을 강박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의 회복을 향한 발걸음에는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마음이 가장 강했다. 그 강박이 잘못됐음을, 생각을 바꾸어야 함의 필요성은 사실 진작 알고 있었다. 다만 내 욕망이 그와 달랐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나의 모습이, 내가 꿈꾸는 나의 이미지가, 그걸 내려놓고는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 믿음의 변화를 갖고 나아졌다기보다는, 그냥 그러고 사는 것이 너무 지쳐서 어떤 인식의 변화 없이 우선 지금보다만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그건 무척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주변의 격려와 수렁에서 스스로 조금이나마 빠져나왔다는 감각은 내게 또 다른 동기를 만들어 주었다.
또한, 강박적 이상에서 조금 멀어졌음에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외부의 시선과, 더불어 오히려 전보다 좋아 보인다는 평가는 내 믿음에도 무언가 균열을 내었다.
그러니 나를 움직이게 만든 건 그 작은 발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지는 동안에도 주춤하고, 다시 나빠지는 많은 순간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 아무리 예전처럼 돌아가더라도 가장 나아졌던 순간까지는 다시금 쉽게 내딛을 수 있었다.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한 번의 성공이 중요한 것과 같았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 상상도 못 했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직 분명히 내 삶은 많은 강박으로 덮여있지만, 이제는 내게 허용하는 부분이 날 제한하는 부분보다 크다. 전이었다면 잠도 못 자고 어떤 다른 생각도 못 할 만큼 집착했을 대상이, 이제는, ‘이미 끝난 일, 어쩔 수 없으니 내일은 더 잘하자.’가 되고 만다.
장장 6년이었다. 그러나 그중 4년은 거의 제자리였을 것이다. 달라진 건 조금의 시도를 한 후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시작이 어려운 거였다.
이제는 나아지는 힘을 믿는다. 지금은 어려운 시도도 언젠가의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무리해서 지금 나를 타박할 필요는 없었다. 필요한 것은 처음의 시작과, 많은 성찰이다.
나를 알아야 한다. 나를 마주 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바라는지 느껴야 한다. 이 글쓰기도 그의 일환이다.
완전한 회복은 오지 않았다. 어쩌면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아는 나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멀리 와 있다.
오늘도 다시 살아가본다. 작은 행동에도 나를 돌아보며.
아직 많은 문제를 헤쳐 나가야 하지만 괜찮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를 이해하며 나아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