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는 시월의 담백한 바람을 만나겠거니 기대했던 두브로브니크였으나 아드리 해의 진주는 뜨거웠다. 어디에나 파도소리를 만들어내는 젊음이 부딪치고 있었고, 장미넝쿨을 닮은 여름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무엇을 물어봐도 답을 가지고 있을 쨍한 확신이 드는 장소마다 머뭇거리는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은 곳에서 뭘 먹어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아무런 계획 없이 찾은 두브로였지만 누구여도 좋은 곳이 여기라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이내 풍경에 잠겨 들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와야 할 곳이라는 두브르에 왔다. 버나드 쇼도 두브로브니크를 보지 않고 천국을 논하지 말라, 했으니 천국에서는 누구나 천사일 터 가벼운 옷차림으로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참이다. 체스키의 동화 그림 같았던 붉은지붕과 오스트리아의 맑고 깨끗한 자연이 합쳐진 곳이 바로 여기 크로아티아, 유럽의 땅끝마을이다.
두브르 숙소는 햇빛 아래 만개한 꽃처럼 예쁜 집이다.
시내와 떨어진 외곽 산꼭대기에 얻은 숙소는 한달살이 정도는 하고싶을 만한 뷰가 옵션이다.아파트 입구 문을 열쇠로 여는데 삼십분쯤은 씨름해야 하고 산책을 나서려면 작정하고 나서야 할 만큼 많은 계단을 내려가야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적절한 파랑을 머리에 인 만개한 꽃 같은 색깔의 아파트인데 늘 적당한 바람이 아파트를 에워싸고 있어서 베란다에도 집안에도 빨래집게가 있다. 하루종일 햇빛놀이터가 되는 베란다에 빨래를 널어두고 산책 갔다가 돌아오면 바람에 팔랑이는 옷가지가 출연하는 그림자 극장이 상영되고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선물한다. 그래서 흔들리는 오후에 내가 지켜야 할 바람이 그곳에 있었다.
동유럽 여행을 하면서 딸과 정한 식당 찾기 철칙은 굳이 블로거 맛집을 찾지 않으며 필이 통하면 그냥 들어간다, 여서 산책 중 점심식사만 외식으로 아침과 저녁은 산꼭대기 플라워하우스에서 먹었다. 유럽요리는 대부분 소금레시피가 따로 있는 듯 지나치게 짜서 택한 선택이었으나 저녁엔 감정이 출렁이는 일몰운치만찬, 아침엔 상쾌 바람 셰프가 만들어주는 브런치가 펼쳐지는 플라워하우스는 어제 먹다 남은 피자도 대충 만든 스파게티도 미슐랭급 요리로 변신시키니 사실 우리 집이 최고였단 사실!
플라워하우스 베란다에서 황홀한 브런치
해질 무렵 바다 그득히 노을이 흔들린다. 먼 산 자락에까지 찾아든 노을 한 줌마다 그리움이 스며들더니 짐짓 내 술잔에 떨어진다. 그래서 내가 마시는 건 그리움일까, 노을일까?
한 잔은 떠나온 나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내 곁에 주저앉은 바람을 위하여!
노을 위로 생각이 지나갔다.
나는 지금 아드리아의 진주, 크로아티아를 걷고 있다. 결코 지울 수 없는 시월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