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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May 17. 2024

1막 24장. 스무 살에 처음 만난 나의 아빠(완결)

"엄마, 나 이대로는 이 집에서 계속 못살아... 엄마는 스스로 선택이라도 했지 난 더 이상 견디기 너무 힘들어.... 이제 나도 성인이니까 방학 동안 만이라도 나가 있을게.... 나 지금까지 반항 않고 잘 참고 살아왔고, 난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


"오데로 갈라꼬 그라노?"


"친구네 집도 가고, 이모네 기도원도 다녀오려고 ...."


"그래.... 알았다... 잘 갔다온나...."


나는 그 길로 서울을 떠나 몇몇 친구 집을 며칠씩 전전하지만 휑한 마음은 그대로다.

괜히 울 것 같은 먹먹한 마음은 좀처럼 가셔지지 않는다.


'그래... 가자... 가서 그를 만나야지......'


" 할렐루야!!!! 선미야!!! 엄마 손 잡고 갈 때만 해도 애기드만은 인자 진짜 아가씨가 돼서 왔네!!!"


"아이고!!! 우리 선미 왔나~!!!"


일곱 살 그날밤, 천막 기도원에 도착했던 그날처럼 할머니는 양손을 번쩍 들고 나를 맞이한다. 십수 년 전 그날처럼 나를 품에 안고 한 손을 머리 위에 얹은 채 팔순이 넘은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신다.


"인자 우리 선미도 아가씨가 됐는데 혼자 방을 써야 안 되겠나... 이 방에서 지내다 가라..."


이제 이곳에는 이집사님과 경옥이는 없다. 엄마가 안 오면 나를 키워주겠다던 정목사님도 교회를 개척하고 이곳을 떠난 지 오래다.

큰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하던 천막 예배당은 시멘트 건물로 변해 있었고 사택과 성도들을 위한 방도 여러 개 마련되었고 새로 지어져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전도사님인 엄마 친구는 몇 년 전 유방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이제 겨우 몸을 회복 중이라고 했다.

엄마와 학창 시절부터 정을 쌓으며 인생의 큰 변곡점의 기로에 설 때마다 이모는 엄마의 인생 곡선과 함께였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이 흘러 만나더라도 서로가 어색함이 없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거실에 앉았을 때 이모가 묻는다.


"선미야, 첫 여름방학인데 딴 데 놀러 안 가고 우짠다고 이 산골짜기에 왔노..."


"기도하고, 쉬러 왔죠... 이모랑 할머니도 뵙고..."


"사실대로 말해 봐라.... 니 황대령 보러 왔재???"


"................."


"기다리봐라... 이모가 이번에 아부지 만나그로 해 줄끼다... 니도 인자 아부지 만날 나이도 됐다 아이가...."


기차에 몸을 실은 채 빠르게 지나는 차창밖을 내다보면서도 나의 생부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했었다. 하지만 어엿한 가정이 있는 아버지를 혼외자인 내가 먼저 만나자 하기가 어려워 그저 생각만 빤할 뿐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던 참이었는데 이모는 내 마음을 어찌 알았을까? 내 얼굴에 쓰여 있나?

성인이 되면 제 뿌리를 찾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당연한 일일까?

엄마 없이 이곳저곳 떠돌던 내가 공허함 가득한 마음으로 이모 손을 잡고 이곳에 이끌려 왔던 십삼 년 전 겨울이 떠오른다.

그날은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러 이곳에 왔었는데 지금은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아빠를 기다리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인생이 참 얄궂기만 하다.

이모는 내가 서울에서 내려온 그날 이후로 여기저기 바쁘게 통화를 하는 듯 하지만 뭔가 일이 뜻대로 풀리는 것 같지 않다. 눈치를 보아하니 상대가 나를 만나기를 주저하는 듯했다. 그리곤 이모는 볼 일이 생겼다며 시내에 나간다고 했다.

나의 생부를 만나러 나가는 게 분명하다.


'그래..... 지난날 멀쩡한 가정을 뒤로한 채 결국 내가 태어나는 바람에 엄청난 인생의 수난을 겪었는데 이십 년 세월이 흘러 뜬금없이 만나자 하니 그 심정은 오죽할까....'


애써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해 봤지만 가슴 한편이 뻑지근하게 아파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누가 볼세라 얼른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입 밖으로 소리가 세어나가지 않도록 울음을 삼켜본다.


'좀 만나주면 어때서.... 어쨌든 나도 그의 생물학적인 자식인데 한 번 만나주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날 절대 낳아서는 안된다고 결사 반대를 하던 그에게 도움 따위는 전혀 바라지 않았기에 수없는 인생 역경을 꿋꿋하게 견디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내가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얼굴 한 번 보고 싶어 먼 길을 달려온 자식 한번 만나주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가슴 깊이 숨겨왔그리움은 간절함과 뒤범벅되어 원망의 감정으로 변환되는가 보다.

뭐라 설명하기도 힘든 원초적인 그리움이 심장을 뚫고 나올 만큼 가쁜 속도를 내며 쏟아져 나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져 결국 주먹으로 가슴을 때려가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원망은 어느새 간절한 기도로 변해갔다.


'하나님, 한 번만....

한 번만 나를 낳아준 아빠를 만나게 해 주세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딱 한 번만 만나보고 싶어요...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을게요...

한 번 더 만나게 해 달라는 부질없는 기도는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에게도 그런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저 '아빠'....라고 딱 한 번만 불러보고 싶어요....

제발 마음을 돌려 날 만나보겠다고 말하게 해 주 세요... 제발....'


그땐 왜 그렇게 간절했을까...

왜 그렇게도 나를 낳아준 아버지가 보고 싶어 안달이었을까...

자신의 태생에 대한 궁금증이 이토록 강한 본능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 해외입양된 자녀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이곳에 찾아와 만나지 않겠다는 자신의 부모를 그토록 애타게 찾게 되는 것인지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내에서 돌아온 이모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말을 던져본다.


"..... 아버지가 날 만나고 싶지 않대요.....???"


"아... 그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카드라...."


"그럴 수도 있겠죠... 너무 갑자기 만나자고 하니까....."


사실 이모에게 한 대답처럼 의연하지만은 않았다. 서운한 감정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키우지 않은 자식이지만 제 자식을 만나는 게 그렇게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걸까? 나는 한달음에 이렇게 달려왔는데 내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은 온도차가 참 크구나....'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는 마음의 결심이 섰던지 나를 만나보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나는 서울에 다시 올라갈 채비를 하던 참이어서 예매해 둔 기차가 떠나기 전, 기차역 광장의 한 카페에서 아버지를 잠깐 만나기로 했다.

일곱 살 때 탔던 지프차는 이제 봉고차로 바뀌었고, 지난 그날처럼 이모와 함께 차를 타고 우린 기차역으로 향한다.

차를 타서도 이모와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나를 있게 해 준 사람을 다 커서 처음 만나게 된다니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괜히 만나자고 했나....

어색하고도 떨리는 이 시간을 내가 잘 감당할 수가 있을까....

이런 감정 때문에 그리도 주저했던 걸까....

내가 너무 무모한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며 머릿속이 어지러운데 어느덧 우리는 기차 역 광장에 도착해 있다. 

이모는 나를 앞서 약속한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도 그 뒤를 따른다.

그와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색함과 떨림, 애틋함과  원망, 의문과 수긍  수 가지의 감정의 파동이 만들어진다.


드디어......

카페의 문을 지그시 쳐다보는 그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일흔의 나이지만 장교 출신답도록 흐트러짐 하나 없이 꼿꼿한 자세다.

다부진 몸과 절도 있는 얼굴 표정이 그대로인 채 나이만 더 해 진 듯했다.

그러나 그도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마주 앉은 내게 건네는 목소리가 울먹이는 듯도, 감격에 차 있는 듯도 하다.


"니가 선미가???"


"네........."


"이모, 이모는 잠시 자리를 좀 비켜주셔야겠습니더!!"


"아! 예예!!! 당연히 그래야지요.. 부녀끼리 대화 잘 나누고 나중에 연락하겠습니더!!"


이모가 자리를 비우자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


".................."


"정말 미안하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노... 입이 열 개라도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지금까지 죄책감이 너무 커서 내가 먼저 만나자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니한테는 죄인이 된 심정으로 이때까지 살아왔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


"처음에 절 안 만나려고 하시는 것 같아서 많이 서운했어요... 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미안해서 니 얼굴을 볼 용기가 안 나서.... 얼굴 보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까 싶어서 겁도 나고...."


"저는 이렇게 만나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고요"


"옴마는 건강하게 잘 있나? 인자 느그 옴마가 몇살이드노?"


"엄마도 이제 예순이 넘었어요.... 그 간 새아빠를 만나서 살고 있는데 참 힘들게 살았어요. 알코올중독이랑 가정 폭력있어서....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방학 동안 집을 나오게 되었어요"


"고생을 마이 했네... 어릴 때도 고생을 그래 마이 했는데.... 느그 옴마는 고마 혼자 살면서 니만 키우지 머할라고 그런 사람을 만났노... 대학은 입학했나? 느그 언니들이 머리가 참 좋아서 공부를 잘했는데 아마 니도 공부 잘하고 똑똑했을끼다... 전공이 머고?"


"저 신학생이에요... 선교학을 전공하고 있어서 졸업하고 해외에 선교하러 가려고 해요..."


"신학생?? 선교학이모 머를 배우는기고? 해외로 나간다고?... 그라모 지금 만나는 사람은 있나?"


"아니요..... 별로 만나고 싶지도 않아서요.... "


"그라모 결혼도 안 하고 그냥 해외로 간단 말이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도 낳고 그래야지....

안정된 가정을 가져야 나도 마음을 놓고......"


내게 안정된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자신의 죄책감이 조금 덜어진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세상에 나온 자식이지만 사귀는 사람이 없고, 결혼 생각도 없다는 것, 어쩌면 멀리 떠날지도 모른다는 말에 걱정이 많은 듯했다.

함께 앉은 자리지만 서로의 말보다는 각자 머릿 속 생각이 더 많은 듯 하다.


하지만..... 참 좋았다.

적어도 서울에 있는 알코올중독 아버지와는 달랐다.

다정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인 듯했고, 그의 행동에서 품위가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의 옳고 그름을 따질 그런 때가 아니었다. 내가 세상에 어떻게 태어났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금 내 앞에 앉은 그의 모습만 보고 싶을 뿐이다.

그래... 사람들은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나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 손가락질 하겠지만... 또한 그것이 틀린 사실은 아니겠지만 나의 뿌리는 지금 나와 마주 앉아 대화하는 사람이다.

그걸로 된 거다... 그럼 힘들고 아픈 지금의 현실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다.....

뭐라도 붙잡고 살아가야 할 끈이 절실히 필요했던 나는 아버지를 만나자 왠지 알코올중독자 아빠가 지금까지 저질러 온 수많은 잘못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슴 가득했던 응어리가 이토록 말랑해 지는 이런 기분은 생전 처음이라 이제 다시 새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대하면 전보다 더 잘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아빠, 아버지'라 부를 용기가 없어 가슴 속에 다시 묻어두었지만 헤어질 시간이 가까와질수록 수년을 함께 살아왔던 시간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너무도 진부한 표현을 몸소 깨닫는 시간이다.


한참의 대화가 끝나자 기차 시간이 다 되어 둘은 밖을 나왔다.

둘은 앞으로 언제 만나자는 약속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가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몰래'라는 단서가 붙어야만 한다.

나를 낳아준 그분에게 그런 부담을 지게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곧장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러나... 왠지 모를 뿌듯함과 왠지 모를 공허함이 어지럽게 뒤섞인 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괜한 길바닥에 서글픈 미련을 남긴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순간 내 몸이 뒤로 넘어갈 만큼 강한 힘이 나를 끌어안는다.

나와 반대로 아버지도 나처럼 도저히 그냥 발길을 돌릴 수 없었던가보다.


"미안하다.... 이래 이쁘게 커줘서..... 정말 고맙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 등뒤에서 수없이 미안하다 되뇌는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소리없는 내 눈물도 나를 안은 그의 손등 위로 한 두 방울 속절없이 떨어진다.

그리움 가득했던 모녀는 애틋한 연인처럼,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멈춰져 한 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아직은 작열하는 햇살이 따가운 여름 그날....

처음으로 현실적인 희망을 마주한 그녀는 앞으로 또 어떠한 삶을 경험하며 살게 될까?

어떤 발자욱을 남기며 남은 인생길을 걸어가게 될까....

그녀의 인생 1막이 끝나고 새로운 인생 2막이 곧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진 파편의 조각들이 내 속을 찔러대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날서린 그 인생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그것이 저에게는 글쓰기였습니다. 이 글은 사실 나 자신을 위한 위안의 글이며 치유의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또는 신기하게도 내 가슴속 상처의 크기가 참 많이도 줄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혹시라도 저와 비슷한 기억으로 아파하는 분들이 저의 글을 통해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또는 저와는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왔던 분들도 과거의 제 모습과 함께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1막을 애독해 주신 독자님들과 작가님들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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