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부록(6) #오스트리아 ‘일부’ 카페
지나치게 직관적이다.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카페 이름 얘기다.
이 카페, 주변에 박물관이 많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유로 이름도 박물관이라 지었다. 카페 뮤지엄(CAFÉ MUSEUM) 얘기다.
어찌 보면 직관적, 무성의라는 단어는 카페의 이름보다 공간에 더 마침맞음 같다. 화려하게 꾸민 주변의 건물들과 달리 밋밋하기 그지없다.
처음 카페 문을 열었을 당시엔 밋밋하다는 이유만으로 ‘카페 니힐리즘(카페 허무주의, Café Nihilism)’이란 조롱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늘 그렇듯 생긴 것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을 구성하고 메뉴를 제공하는 데 들인 공은 직관적이지도, 성의 없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이해하려면 ‘경험’해야 한다”는 커피하우스에 대한 오스트리아 관광청의 자신 있는 제안은 어쩌면 카페 뮤지엄을 두고 한 말일 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컨셉으로 여행 일정을 짜면서 7개 나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오스트리아, 그중에서도 비엔나 커피로 대변되는 빈이다. 커피의 역사가 깊고 이야기가 많은 만큼 가야 할 카페도 많아서다. 그 많은 카페들 중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으로 꼽은 게 카페 뮤지엄이다.
처음부터 이 카페를 알았던 건 아니다. 제안은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다. 바리스타도 로스터리도 아닌 건축가의 제안이라니.
건축과 커피의 유사성을 질문하니 승효상 대표는 “카페라는 공간에서 혼자건 여럿이건 커피를 마시는 풍경 자체가 문화가 되며 건축은 그런 풍경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답을 건넨 뒤 카페 뮤지엄을 이야기했다.
“단순한 내부 공간에서 굴곡진 테이블과 천정은 비좁은 공간임에도 서로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풍경을 만든, 그 카페를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을 듯했다. 그렇게 오스트리아 커피 여행은 시작됐다.
카페 뮤지엄은 커피와 디저트, 공간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하다. 아래 홈페이지에 올린 설명만 봐도 알 수 있다.
“빈의 카페 뮤지엄은 모든 감각을 만족시키는 현대적인 걸작입니다. 비엔나 커피하우스 문화를 만나 보라. 매력적인 페이스트리가 진열된 곳 바로 옆에는 페라리 레드 침발리 커피 머신이 설득력 있는 분위기를 더해준다.
커피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지고, 숟가락이 덜거덕 거리며 우아한 웨이터가 맛있는 마이늘(Meinl) 커피를 서빙한다.”
두꺼운 메뉴판에는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마셔보면 좋을 듯한 커피 메뉴를 소개한다.
메뉴판은 “비엔나 커피하우스의 커피는 단순한 커피가 아니다. 무엇보다 카페 뮤지엄은 다양한 종류의 커피가 있고 우수한 로스팅 사이클을 통해 특별하게 준비되고 있다”면서 빈의 전통이 된 비엔나 멜랑즈(Wiener Melange)를 추천한다.
비엔나 멜랑즈는 커피와 우유를 섞은 멜랑즈에 우유 거품을 곁들인 커피다.
그리고 특선 커피라며 특별한 메뉴도 알려준다. 돌진한 노이만(Rushed Neumann)이라는 뜻의 우베르스튀르츠터 노이만(Überstürzter Neumann)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블랙커피 위에 휘핑크림을 얹은 아인슈패너(Einspänner)의 제조 순서를 반대로 한 커피로 보면 된다. 그래서 아인슈패너의 독특한 형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커피는 1914년 세워져 문학가들의 카페로 불리다가 2006년 문을 닫은 카페 헤렌호프(Café Herrenhof)의 단골 손님이 개발했다. 성격이 급한 미스터 뉴먼이 커피를 빨리 마시기 위해 제안한 방식이다.
지금도 빈에는 우베르스튀르츠터 노이만을 주문하면 휘핑 크림을 넣은 컵과 에스프레소 더블을 뜻하는 더블 모카를 따로 담아 테이블로 가져다주는 커피하우스가 있다. 그러면 손님이 테이블에서 직접 휘핑 크림이 든 커피 컵에 더블 모카를 부어 마신다.
아인슈패너와의 차이점은 섬세하게 나타난다.
카페 뮤지엄은 “노이만 커피는 커피를 부을 때 크림과 커피가 천천히 섞이지만 아인슈패너의 커피는 섞이지 않고 검은색을 유지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미세한 차이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부연하면서 이런 말도 덧붙인다.
“원하는 곳에 앉아서 원하는 만큼 오래 머무르십시오. 고독하고 편안하게 방문을 즐겨보세요. 비엔나 커피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페 뮤지엄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커피 맛에만 있는 게 아니다. 또 다른 이유는 공간이다.
카페 뮤지엄은 1899년 오페른가세(Operngasse7)와 프리드리히슈트라세(friedrichstraße6) 도로가 엇갈리는 길 위 모퉁이 건물에서 문을 열었다.
이 곳은 황금 양배추라는 귀여운 애칭이 돋보이는 빈 분리파(Wiener Secession)의 제체시온 전시관,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이라 불리는 비엔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 극장. 야수파 인상파 제체시온 등 다양한 학파에 속하는 작가 샤갈 피카소 세잔 뭉크 칸딘스키 미로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알베르티나 박물관 및 모던과 인접해 있다.
카페 뮤지엄은 홈페이지에 위치를 설명하면서 카페의 문을 연 당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주변엔 제체시온 전시관과 함께 비엔나 슈타츠오퍼 대신 비엔나궁정오페라(K. und K. Hofoper), 알베르티나 박물관 대신 퀸스틀러하우스(Künstlerhaus)가 있다고.
카페의 입구는 두 개의 도로가 만나는 꼭짓점에 있다. 들어가면 디저트가 전시된 쇼케이스와 커피 머신이 보이고 L자형으로 길이 나뉜다.
처음 카페의 내부 인테리어를 맡은 건 근대 합리주의에 입각한 건축물을 만든 아돌프 로스였다.
당시 로스에게 내부 건축을 맡긴 건 모험에 가까웠을 듯싶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예술계를 이끈 건 제체시온이었다. 건축계도 마찬가지였다. 예술과 건축을 결부시킨 건축물들이 속속 세워졌다.
로스는 이 같은 흐름이 불편했고 기사 등에 자신의 의견을 담은 글을 실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의자의 경우 예술가들이 만들면 형태는 독창적이고 아름답지만, 앉기에는 불편하다. 로스는 의자의 본래 목적을 고민해야 하며 인간이 자연스럽게 앉는 방식에 따라 형태를 결정해야 한다고 봤다.
의자뿐 아니라 주택에 대한 정의도 다르지 않았다. 주택의 내부를 결정하는 건 거주자여야 하고 오브제들의 형태와 배치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봤다. 거주자가 아닌 건축가가 디자인한다면, 그 내부는 건축가의 정체성을 드러낼 뿐이라는 게 로스의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1908년 논문 ‘Ornament und Verbrechen(장식과 죄)’(1908)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냈다. 화려한 장식을 강조하는 아르누보와 제체시온과는 정반대로 '장식은 죄'로 봤다. 그 신념이 내포된 게 바로 카페 뮤지엄이다.
둥그렇게 구부린 나무 의자는 독일 출신인 오스트리아의 목재 기술자인 미하엘 토네트(Michael Thonet)가 디자인했다.
토네트의 의자 등 단순한 가구는 당시 관습처럼 자리한 고급 가구와는 완전히 모순된 형태를 띠며 대리석 테이블과 함께 설치됐다. 카페 뮤지엄은 “커피하우스 디자인에 진정한 혁명을 일으켰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모순된 형태에 시대는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스캔들’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정도로 예술가들이 무리 지어 몰려왔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로스가 불편함을 드러내던 제체시온 작가들이 카페 뮤지엄의 공간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승효상 대표는 “그동안 건축의 중심은 형태나 장식이었는데, 그는 공간을 중심으로 건축했다. 카페뮤지엄에 가면 커피를 위한 공간을 만들려고 한 로스의 건축 양식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카페 뮤지엄 속 로스의 인테리어는 변화를 거듭했다. 1911년 유겐트 슈틸(젊은 양식)'의 지도자인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의 제자이자 남부 티롤의 젊은 건축가인 요제프 조티(Josef Zotti)가 카페 뮤지엄의 도로 위 테이블인 샤니가르텐을 디자인했다. 구스타브 클림트, 에곤 쉴레, 로베르트 무질 등 화가 작가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샤니가르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시간이 흐르고 내부 구조물이 마모의 흔적을 보이면서 1931년 조티는 로스가 만든 내부 인테리어에도 변화를 줬다. 토네의 의자와 함께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둥그런 인조가죽 의자와 은구 모양의 조명을 갖추게 됐다. 이 인테리어는 70년 넘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2003년 로스의 초기 디자인을 재현하며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변화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가져왔다. 오랜 세월 조티의 인테리어에 익숙해진 단골은 카페 뮤지엄을 떠났고 경제위기까지 찾아왔다.
2009년 카페 뮤지엄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폐쇄의 위기를 맞게 됐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됐다. 새로운 운영자가 오게 되면서 조티가 디자인했던 은구 모양의 조명과 의자 등을 부활시켰다. 2010년 10월 재개장하면서 갈 곳을 잃었던 단골들이 돌아왔다.
카페 뮤지엄은 홈페이지를 통해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나 디저트 식사 외에도 새로운 경험을 더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준다.
정기적으로 작가들을 초대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회를 갖는다. 입장료는 무료다.
고전부터 최근 나온 신작까지 서적의 선택도 다양하다. 이를 위해 카페 내부엔 책 테이블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며 책에 사인도 받을 수 있다.
카페 뮤지엄은 만일의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 독서회에 참여하고 싶다면 사전에 예약하는 게 좋다고 제안한다. 뉴스레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카페 뮤지엄의 독서회 일정 등 정보도 받을 수 있다.
여름에는 샤니가르텐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는 것도 추천했다.
카페 뮤지엄은 "카를성당(Karlskirche)과 제체시온 전시관의 황금 돔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도시형 정원에 있는 듯한 경쾌한 경험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구스타브 클림트, 로베르토 무질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