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부록(13)#오스트리아 ‘일부’ 카페
'시간과 공간을 소비하지만, 계산서에는 커피만 기재되는 곳’.
2011년 유네스코가 오스트리아 빈의 커피하우스를 ‘도시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적은 글이다.
커피하우스는 커피만 마시려고 가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스트리아 관광청은 유네스코의 설명에 다른 설명을 추가하면서, 빈의 카페 또는 커피하우스를 세분했다.
구분의 키워드는 ’커피하우스 문화’와 ‘커피 문화’.
여기에 덧붙인 설명은,
“커피하우스엔 커피만 마시려고 가는 게 아니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 자체가 카페를 방문하는 이유가 되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이끄는 게 현대적인 카페다.”
그러면서 현대적인 카페를 ‘제3의 물결’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커피하우스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빈의 도심을 걷던 중, 제3의 물결을 우연히 마주했다. 지금도 마차가 다니는 길, 슈테판 대성당 옆에서.
그저 신기해 들어섰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동안 커피하우스를 찾으며 그 문화에 익숙해 진지 닷새째 되던 때였다. 오랜만에 현대적 감각을 입힌 카페를 만나니 생경하게 느껴졌다.
생경함에 위치도 한 몫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시작된 케른트너 거리(Kärntner Straße)를 따라 도착한 슈테판 대성당 옆 골목, 마차가 보이고 1800년대 세운 카페들이 즐비한 곳에 있다.
들어서는 순간, 잠시 잊고 있던 익숙한 카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 음악이었다.
빈의 커피하우스는 테이블 간 거리도 가까운 데다 사람들의 목소리, 찻잔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할 뿐이었고 특정 시간에 열리는 음악회가 아니면 음악은 없었다.
우연히 만난 이 카페는 정반대였다. 음악이 흐르고 철제 테이블 간 거리는 멀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직원이 가져다준 메뉴판도 색달랐다. 큐브형 나무조각엔 QR코드가 각인돼 있다. 폰으로 QR코드를 인식하니 카페 이름과 메뉴 등이 뜬다. 커피하우스 메뉴와는 사뭇 달랐다. 커피하우스에선 커피 종류로 메뉴를 구분하는데, 이곳은 커피와 원두별 설명이 가득하니 선뜻 선택하기 어려웠다.
궁금하니 물어봐야 했다. 커피 바로 다가간 여행자에게 직원이 커피 취향을 물어보고는 스페셜티 원두의 종류를 설명했다.
그리고 바 위 소분해 놓은 원두 중 코스타리카산을 꺼내서 보여줬다. 20g씩 맞춰 소분해 놨다는 얘기와 함께.
이제 브루잉 방법을 선택할 시간이다. V60부터 케멕스, 에어로프레스까지 다양했다. 핸드드립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방식, V60를 선택했다.
잠시 뒤 소분한 원두를 분쇄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리스타의 손놀림이 분주해 보인다.
글라스 서버를 뜨거운 물로 한 번 데워준 뒤 드리퍼를 올린다. 거름종이를 걸치고 뜨거운 물을 부어 적시고는 분쇄된 커피 가루를 붓는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장면이다.
낯선 풍경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거름종이 안에 무언가를 넣고 원을 그리듯 한다. 그 무언가를 빼낸 뒤 또 다른 무언가를 집어 휘휘 젓는다.
바리스타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언가가 무엇이냐”는 질문.
“커피를 추출하는 데 적정한 온도와 양으로 물을 부어주는 기기다. 물을 고르게 분사한다”고 했다.
그리고 보여준 것. 가느다란 쇠가닥이 여러 개 달린 커피 분배기(Needle coffee distributor)다.
그는 “분쇄된 커피의 최상층을 고르게 분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덩어리 진 원두를 부수고 필터에 커피를 고르게 분배시키면서 균일하게 추출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한다.
온갖 신기한 걸 보고 나니 원목의 커피 바 위에 설치된 묵직한 철제 기구에도 눈길이 간다.
두툼한 배관 내지 수도꼭지처럼 보이는 것, 에스프레소 머신이다. 이 역시 기존에 보지 못한 형태다.
장비빨(?)을 보고 나니 왠지 이 카페의 커피, 믿고 마셔도 될 듯하다는 신뢰가 생긴다.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을 나도 모르게 꺼낸다. 커피하우스에선 하지 않던 행동이다.
잠시 후 바리스타가 들고 온 원목 쟁반엔 글라스 서버와 다기잔처럼 보이는 커피잔이 놓여 있다.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빛 커피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특별한 커피를 선사한 곳, 카페 카페인(Café Kaffein)이다.
카페 카페인의 본점은 스토스임힘멜(Stoß im Himmel)이라는 이름의 좁은 골목에 있다. 13세기에 지어진 건물에 있지만, 카페는 커피하우스와는 다른 커피 문화를 만들고 있다.
카페 카페인의 홈페이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2016년 12월, 우리는 잘츠부르크 어딘가의 작고 아늑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커피는 좋았지만 특별하지도 않았다… 당시 우리는 스페셜티 커피에 중독돼 있었고, 우리 중 누군가가 ‘비엔나에서 이런 일(카페)을 한다면, 정말 훌륭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시작이 됐다.”
이후 카페 바리스타들은 다양한 브루잉을 시도하고 수 천개의 샷을 내리면서 맛을 끌어올리는데 노력했다. 두 가지 운영 원칙도 세웠다.
‘가능한 최고의 품질을 위해 노력’하고, ‘인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는 것’이다.
카페 카페인의 매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2022년엔 2호점도 열었다. 슈테판 성당 옆, 방문한 바로 그곳이다. 두 번째 매장은 이름을 통해 카페 카페인의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시대정신(ZEITGEIST)이다.
1층에선 바리스타가 다양한 원두로 커피를 내리고 콜드브루잉을 하거나 원두를 볶는 과정을 볼 수 있도록 했다. 2층 넓은 공간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데서 나아가 다양한 커피 관련 상품과 장비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커피하우스의 도시 빈에서 그들이 내건 다짐, 2호점에서 만난 바리스타는 ‘시대정신’이란 이름에 걸맞게 말한다.
“사람들이 최고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려고 한다”.
직거래 원두와 에스프레소 머신, 손으로 추출하는 필터….
오스트리아 관광청이 제3의 물결을 이끄는 카페들의 특징으로 꼽은 요소다.
“스타일리시하게 포장된 직거래 커피원두 옆에 반짝이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고, (절대) 무작위로 선택되지 않는 필터커피가 컵에 들어가면 손으로만 추출되는 드립커피.”
이런 카페들이 커피를 대하는 태도도 설명했다. 플랫 화이트 등 새로운 종류의 커피를 개발하는가 하면 바리스타는 다도처럼 커피를 내린다고.
커피를 새롭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실천하는 카페들도 소개했다. 이들 카페는 오스트리아 관광청이 꼽은 제3의 물결을 이끄는 카페들의 특징을 관통하면서도 각자의 색깔을 입히고 있었다.
커피 농장과 직거래한 원두를 사용하고 최적의 환경에서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연구소라는 공간을 만들어 직접 로스팅이나 블랜딩을 했다. 그렇게 쌓은 노하우는 커피를 사랑하는 이들과 공유했다.
‘커피공장’이란 뜻을 가진 카페 커피파브리크(Café kaffeefabrik)는 다양한 커피 기호에 맞춰 다양한 커피 맛을 내려고 한다. 좌석수가 적은 게 아쉽지만 깔끔한 디자인에 끌려 많은 사람들이 카페를 찾고 있다. 이탈리아의 고급 에스프레소 머신인 라 마르조코(la marzocco)를 사용하는 것도 매력이다.
커피공장의 카페는 두 곳에 있다. 파보리텐스트라세(Favoritenstraße)에 있는 커피파브리크 위덴, 마리아힐퍼스트라세(mariahlfer straße)의 커피파브리크 마리아힐프다.
빈 7구 졸러가세(Zollergasse)의 카페 커피믹(Café Kaffemik)은 미니멀한 분위기도 매력이지만, 최고의 원두를 직접 볶아 사용한다.
카페 발타자르(Café Balthasar)는 독일의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에 있는 커피 로스터리인 와일드커피 로스터리(Wildkaffee Rösterei)의 원두를 사용하며 라 마르조코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제3의 물결을 이끈다고 실제 카페 나이가 젊다는 건 아니다. 카페 J.호니그(Café J. Hornig)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그라츠(Graz)의 향신료 전문점 직원이던 요하네스 호니그 1세(Johannes Hornig I)는 1912년 사장이 은퇴하면서 매장을 인수했다.
1년 뒤엔 대표 상품으로 커피를 낙점했다. 직접 로스팅 드럼에서 원두도 볶았다. 이후 대를 거듭하며 커피 사업의 다양성을 추구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최초로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했고(1967년) 그라츠시 쇠노우가세(Schönaugasse)에 600m² 규모로 문을 연 매장에선 최초의 전자 주문 시스템을 장착했다(1976년).
1991년 러시아 미르 우주정거장에서 ‘오스트로미르(Austromir)’ 프로젝트를 수행한 오스트리아 최초의 우주비행사는 동그란 모차르트쿠겔(Mozartkugel) 초콜릿과 함께 호니그 커피를 러시아 동료들에게 대접했다.
1994년부터 공정 무역 커피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2015년 스페셜티 라인 ‘조호스(JOHO's)'도 론칭했다.
빈에 카페를 연 건 2017년이다. 지금도 지벤스턴가세(Siebensterngasse)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콜드브루 시장에선 커피치(Kaffeetschi) 브랜드를 통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카페 쿠튀르(Café Couture)는 다양성과 복합성을 완벽한 균형과 조화로 표현해 원두 산지별 자연의 맛을 강조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로스팅은 강하지 않게 한다.
카페는 빈의 헤렌가세(Herrengasse)와 가니종가세(Garnisongasse) 두 곳에 있다. 만약 로스팅 과정을 보고 싶다면 가니종가세에 있는 카페를 찾는 게 좋다.
빈이 아닌 곳에서도 제3의 물결을 경험할 수 있다.
잘츠부르크의 카페 220그라드(Café 220 Grad)에선 갓 볶은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인스브루크의 카페 크레마(Café Crema)는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만든 최고급 커피와 집에서 구운 스콘 등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그라츠에 있는 카페 바리스타스(Café Barista’s)는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원두를 가져와 거래되는 다양한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한다. 로스팅한 원두는 COE(Cup of Excellence) 상을 받기도 했다.
커피를 마시는 데서 나아가 커피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카페들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카페 커피믹은 전문 바리스타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커피 맛을 보고 커핑(Cupping)법도 배우는 커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카페 커피파브리크도 2024학년도 커피학교를 시작했다.
커피 사업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바리스타 교육을 운영할 뿐 아니라 커피 초보자를 위한 라떼아트 방법, 가정에서 에스프레소와 필터 커피를 내리는 홈브루잉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커피학교의 인기가 많아 금방 예약이 마감되지만, 수요자들의 바람에 맞추기 위해 꾸준히 교육 일정을 추가하고 있다.
카페 발타자르도 바 모퉁이에 있는 발타자르 연구소(BALTHASAR LAB)에서 바리스타 워크숍을 진행한다. 4~6명의 소그룹 수업에 참여하면 커피 추출을 직접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맛보고 직접 커피를 내리는 경험도 할 수 있다.
계산서에 커피만 기재되던 그 시절 커피하우스가 지식인을 매료시킨 건 예술을 나누고 철학을 논하던 커피하우스 문화였다.
여전히 영수증에 커피만 찍히는 '제3의 물결'을 일으키는 현대적 카페. 이들이 커피애호가를 끌어들이는 건 커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도모하는 커피 문화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