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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Feb 01. 2024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

마거릿 렌클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를 일고, 책 서평


그 애가 그렇게 일찍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단다. 우리는 어머니가 통조림을 만들려고 복숭아 껍질을 벗기는 걸 보고 있었어.”(p.11,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을유문화사, 2024) 


마거릿 렌클의 첫 작품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에 나오는 첫 문장입니다. 작가의 어머니 올리비아가 태어나던 날을 묘사한 부분으로, 이로써 방대한 그녀의 가족 관계와 광활한 자연에서 펼쳐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그녀의 관찰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Margaret Renkl)은 대가족의 사랑받는 딸이자 앨라배마주의 자연을 놓치지 않는 탐험가입니다. 그곳에서 보낸 자신의 시간을 유의미한 일상으로 담아낸, 이 책은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렌클을 사랑받는 작가의 반열에 들게 만든 작품입니다. 


<A Natural History of Love and Loss>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작가의 관찰과 동생 빌리 렌클의 그림을 통해, 작가의 가계도와 자연의 초상화를 기록하고 그려낸 자연주의 에세이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평범함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독자들은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에 대한 달콤하고 씁쓸한 순간들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디펜던트 북 리뷰>처럼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 속에서 사는 경험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잠시 멈춰서 다시 살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테니까요.  




“자연에서 유혈극이 번번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과 그 유혈극을 몸소 겪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p.16)  


파랑새와 뱀, 그리고 집굴뚝새와 박새. 자연에서 본능대로 살아가는 야생 새들을 위해 먹이와 거주 공간을 마련해 주던 렌클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위한다고 하는 일에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의 그늘진 면은 늘 상실이고, 비통함은 사랑 자체의 쌍둥이일 뿐이다."(p.20)

(The shadow side of love is always loss, and grief is only love's own twin.)


증조할머니 마마 앨리스가 떠나고 한 달 남짓 지나고, 증조할아버지 파파 독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때 열두 살이었던 렌클의 어머니는 파파 독이 보여준 행동을 통해,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상실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죽어 가요.”(p.110) 


작가의 부모님이 춤을 추기 위해 틀어 놓은 엘라 피츠제럴드의 음악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아주 익숙한 스텝으로 작업화를 신은 아버지와 맨발의 어머니, 단 1cm의 거리도 두지 않은 그들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춤을 춥니다. 그들의 딸 렌클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 한 장면에 담겨 있는 두 사람의 배려와 사랑 그리고 딸의 눈에 비친 삶의 경이로움, 원제의 ≪Late Migration≫을 한국어판에서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로 정한 이유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것은 새로운 생물이다. 심지어 그것은 다시 시작하기 전에 다시 시작한다.”(p.259) 


독성이 있는 아스클레피아스 잎사귀 위에서만 사는 제왕나비 애벌레를 나비로 탄생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드는 비용에 대해 작가는 초연합니다. 렌클이 바라는 것은 오직 자신의 정원 절반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제왕나비 애벌레의 생존뿐입니다. 


뒷부분에 끈적거리는 필름 같은 검은색 방울이 달린 채, 17시간 동안 꿈쩍도 하지 않는 애벌레에 온 신경이 쏠려있습니다. 마침내 애벌레가 움직이고, 렌클은 마침내 깨닫습니다. 




“이것은 죽음이 아니라 웃자란 피부를 찢고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으로부터 기어서 달아나는, 삶의 다음 단계에 도달하기 전의 휴지 상태일 뿐임을.”(p.259)


오늘도 어제와 같이 대체할 수 없는 생명이 빛을 잃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아메리카 제왕나비가 몇 세대를 거쳐 조상들이 떠나온 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세상은 오늘도 여전히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갑니다.


사랑과 상실을 바탕으로 한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존엄성, 다정한 시선으로 사라져 가는 순간들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깨달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긴 이 책을 통해 마거릿 렌클이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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