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詩] 화요일 아침에 보내드리는 김현승 님의 가을 시 두편
9월이 시작되었습니다.
9월이 왔다는 것은 가을이 시작되었다는 말이지요.
아직은 여름의 열기가 남아있지만 마음은 벌써 청량한 가을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백로(白露)가 지나면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 공기에서 가을의 냄새가 풍길 텐데요.
구월의 첫 번째 화요일이자 시가 있는 화요일 아침 [책담詩], 가을 시인으로 불리는 김현승 시인의 ≪김현승 시전집≫(민음사, 2005)에 수록된 가을 시 두 편을 보내드립니다. 먼저 <가을의 기도>입니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 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 謙虛한 모국어 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 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울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 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계절의 풍요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과 현실 인식을 그려낸 작품으로, 이 계절이 주는 분위기를 이보다 더 잘 그려낸 작품은 없을 듯합니다.
다음은 추운 겨울을 맞이하기 전에 찾아오는 계절, 가을이 지닌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시 <가을 저녁>입니다.
가을 저녁
-김현승
긴 돌담 밑에
땅거미 지는 아스팔트 위에
그림자로 그리는 무거운 가을 저녁
짙은 크레파스의 가을 저녁
기적은 서울의 가장자리에서
멀리 기러기같이 울고
겹친 공휴일을 반기며
먼 곳 고향들을 찾아 가는
오랜 풍속의 가을 저녁
사는 것은 곧 즐거움인 가을 저녁
눈들은 보름달을 보듯 맑아 가고
말들은 꽃잎보다 무거운 열매를 다는
호올로 포키트에 손을 넣고 걸어가도
외로움조차 속내의처럼 따뜻해 오는
가을 저녁
술에 절반
무등차에 절반
취하여 달을 안고
돌아가는 가을 저녁
흔들리는 뻐스 안에서
그러나 가을은 여름보다 무겁다!
시간의 잎새들이 떨어지는
내 어깨의 제목 위에선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은 1934년 ≪동아일보≫에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1934)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등단 후, 일제 강점기 말 10년 동안은 절필하고 광복과 더불어 작품 활동을 재개했는데요.
현실에 대한 강한 인식과 낭만주의 감성이 돋보이는 시 세계로, 오랜 세월 사랑받고 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입니다.
구월의 첫 번째 화요일 아침에 보내드리는 [책담詩]는 가을 시인 김현승님의 시와 함께 했습니다. 모두 "말들은 꽃잎 보다 무거운 열매를 달고", "외로움조차 속내의처럼 따뜻해 오는" 가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커피향이 그리운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