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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Sep 10. 2024

삶의 진리가 빛나는 계절, 가을시

[책담詩]화요일 아침에 보내드리는 정한모 님의 가을 시 두편 


달에는 계수나무와 토끼가

살고 있다는 아름다운 진리가 영원하기를.   


달에는 계수나무 한 그루와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어린 시절. 그때 그 시절 아름다운 동심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삶의 이정표가 되기를 꿈꾸는, 정한모 시인의 詩 <가을에>입니다. 



가을에 

-정한모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 微笑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오늘이

마침내 전설 傳說 속에 묻혀버리는

해저 海低 같은 그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 眞理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가던

그토록 아득하던 추락 墜落과 

그 속력 速力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 恐怖의 기억 記憶이 진리 眞理라는 

이 무서운 진리 眞理로부터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주십시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정한모 시인은 1945년 ≪백맥≫에 시 <귀향시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는데요.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멸입(滅入)>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습니다. 


정한모 시인은 인간의 순수성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작품 활동을 펼쳤습니다. 미루나무를 소재로 가을의 정서를 담아낸 <멸입(滅入)>입니다.



멸입(滅入)

-정한모


한 개 돌 속에 

하루가 소리 없이 저물어 가듯이

그렇게 옮기어 가는


정연(整然)한 움직임 속에서

소조(蕭條)한 시야(視野)에 들어오는

미루나무의 나상(裸像)


모여드는 원경(遠景)을 흔들어 줄

바람도 없이

이루어 온 밝은 빛깔과 보람과

모두 다 가라앉은 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면


끝 가지 아슬히 사라져

하늘이 된다.


구월 들어 두 번째 맞는 화요일 아침, 오늘 [책담詩]는 휴머니즘을 노래한 시인 정한모님의 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이 추석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올 해는 날이 좋아서 둥근 보름달에 소원도 빌고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by eunjoo [시가 있는 화요일 브런치 연재 [책담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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