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詩]화요일 아침에 보내드리는 정한모 님의 가을 시 두편
달에는 계수나무와 토끼가
살고 있다는 아름다운 진리가 영원하기를.
달에는 계수나무 한 그루와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어린 시절. 그때 그 시절 아름다운 동심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삶의 이정표가 되기를 꿈꾸는, 정한모 시인의 詩 <가을에>입니다.
가을에
-정한모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 微笑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오늘이
마침내 전설 傳說 속에 묻혀버리는
해저 海低 같은 그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 眞理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가던
그토록 아득하던 추락 墜落과
그 속력 速力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 恐怖의 기억 記憶이 진리 眞理라는
이 무서운 진리 眞理로부터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주십시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정한모 시인은 1945년 ≪백맥≫에 시 <귀향시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는데요.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멸입(滅入)>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습니다.
정한모 시인은 인간의 순수성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작품 활동을 펼쳤습니다. 미루나무를 소재로 가을의 정서를 담아낸 <멸입(滅入)>입니다.
멸입(滅入)
-정한모
한 개 돌 속에
하루가 소리 없이 저물어 가듯이
그렇게 옮기어 가는
정연(整然)한 움직임 속에서
소조(蕭條)한 시야(視野)에 들어오는
미루나무의 나상(裸像)
모여드는 원경(遠景)을 흔들어 줄
바람도 없이
이루어 온 밝은 빛깔과 보람과
모두 다 가라앉은 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면
끝 가지 아슬히 사라져
하늘이 된다.
구월 들어 두 번째 맞는 화요일 아침, 오늘 [책담詩]는 휴머니즘을 노래한 시인 정한모님의 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이 추석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올 해는 날이 좋아서 둥근 보름달에 소원도 빌고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