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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Oct 22. 2023

완벽한 끝을 위하여

4. 나를 위하여

큰일 났다. 박수고 나발이고 나는 이대로 가다간 소박맞고 쫓겨나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직장에서 어느 정도 편안한 위치가 되면, 매너리즘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입사 초기처럼 굳이 작은 업무 하나하나 공들이지 않고 그저 관성으로 휘뚜루마뚜루 일을 처리해도 적당한 성과가 나오기 때문에 자꾸만 몸이 늘어진다. 일이란 것은 못해도 문제지만 잘해도 문제는 찾아온다.


마찰이 있었던 여직원과는 대면으로 세게 한 판 붙은 뒤 나쁘지 않게 오해를 풀었다. 그녀는 현재의 업무가 본인과 맞지 않는 것 같다며 데스크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업무를 바꿔달라고 했다.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했는데, 그녀까지 아르바이트생이 되면서 모든 매출과 관련된 중요 업무는 다시 혼자 맡게 되었다. 한 명이 한 센터의 매출을 담당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였지만 대표는 내게 뭐라도 더 챙겨줄 테니, 혼자서 책임지라고 했다.


이럴 때는 조금 비겁하지만 남 탓 원툴로 정신승리를 하는 것이 가장 간편하고 속 편한 해결책이다.

사람을 뽑아달라고 수 차례 이야기 해보았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나중에는 입아프기 싫어서 속으로 '엿 돼 봐라.' 생각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혼자이니까 일을 잘해도 일등이자 꼴찌, 못해도 일등이자 꼴찌가 되어서 점점 더 열정을 잃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했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센터를 떠나갔고, 예전처럼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물론 이 정도로 게을러졌어도 이미 나는 충분히 과다한 업무를 안고 있었고, 전처럼 그 이상의 짐을 안는다고 해서 이 조직이 내 충언을 듣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던 때였다.


새벽 시간대 아르바이트를 하는 선생님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분이었다.

관련 회사를 다녀도 보았지만, 본인에게 맞지 않는 조직이었고 지금은 이직 준비를 하며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얌전하고 생각이 깊어서 대답이 느린 그녀를 보며 혼란스러웠던 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20대의 그녀에게 꼰대처럼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뭐라도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해줄 자격이 없는 상태였다.


어떤 조직을 떠나야 할 때는 사람이나 체계가 싫을 때가 아니라, 그곳에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을 때이다.

원래의 계획은 남들이 뭐라고 할지언정 내가 나를 보았을 때, 굉장한 하드 워커라고 느껴진다면 그때 일을 그만두려고 했었다. 그냥 그렇게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야 비록 안 맞던 직장이었어도 떳떳할 수 있을 거 같아서.

하지만 퇴사의 기준을 한 번 더 고쳐 잡기로 했다.

어느새 나는 여기서 고이기 시작했고, 이곳에서의 내 능력의 최고지는 이미 찍은 후였다. 다시 열정을 되찾는다고 해도 내가 낼 수 있는 성과는 과거의 내가 낸 것만큼이 전부일 것이다. 더 이상 배우고자 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고, 나는 스스로만 몰랐지 이미 성장이 멈춘 상태였다.

그래도 한두 달 뒤면 업계 호황기여서 인센티브가 꽤나 높을 시기임을 알기에 마음이 며칠은 왔다 갔다 저울질을 해야 했다. 남편은 앞으로 2~3년 안으로 정육점을 차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때까지 둘이 힘을 합쳐 최대한 많은 돈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근 밤산책에 취미가 들려서 매일 같이 작은 산책로를 돌고 있었고, 그날도 익숙한 길을 걸으며 남편에게 물어봤다.

"나 요새 회사에서 박힌 돌이 된 기분이야. 예전에 센터 주인 바뀌기 전에 기억나?

그때처럼 매일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오는 내가 너무 싫어. 내가 뭘 원하는 걸까?"

그는 원래 대답이 빠른 편이다. 그렇게 하면 된다, 안 된다 식으로 해결부터 해주려는 보통의 남자와 같이.

그날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내 손을 더 꽉 잡고 말했다.


"최근에 오른발 통증이 다시 심해져서 네가 너무 아파했었잖아.

그게 걱정돼서 같이 일하는 사람한테 물어봤다?  몸이 약한 사람은 갑자기 운동을 하라고 하면 할 수가 없대.

그러니까 내가 같이 걸어주래. 처음에는 5분, 다음에는 10분, 그러다가 조금씩 시간이 늘어나면 같이 도시락 싸서 작은 산에도 오르고 하는 거래.

너는 지금도 정통법으로 틀린 것은 고치려고 하겠지만, 그냥 너에게 조금 더 편안한 선택을 해도 되지 않을까?“

그는 나의 신중함을 잘 알고 있다며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면, 그만하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았다.

거칠고 불안정했던 인생 1막을 겨우 끝내고 어떻게 찾은 안정감인데 또다시 모호한 상황에 나를 내던질 자신이 없었다. 겨우 찾은 안정감을 놓지 않기 위해 꿈꾸는 법도 잊어버린 게 슬프기도 했지만, 말이 꿈이지 결국에는 돈이 되는 스킬이 필요한 것 아니겠나.

이런 부분에선 자기 검열을 아주 잘하는 편이라 주제를 꿈으로 해서는 부정적인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얼른 고민할 주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10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를 떠올렸을 때 후회가 된다면, 무엇을 후회할까?

그때 더 받지 못한 인센티브? 조금 더 아껴 쓰지 않았던 용돈? 아님 용기가 없어서 도전하지 않았던 완전히 다른 분야들?


언젠가 한 배우가 티브이에 나와서 "글을 쓸 때는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걸 본 적 있다. 지금은 생각나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봐야 한다. 바로 노트를 펼쳤다.

그렇게 해서 적힌 몇 줄의 문장은 너무 멋없고 소박했지만 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래. 그렇게 나를 채우는 거야. 지금 이 순간은 평생 돌아오지 않아. 일하는 나 말고, 원래의 나를 돌보고 싶어.


[ 퇴사 후, 나를 위해 해주고 싶었던 것들 : 베란다 청소, 창틀 닦기, 소송 및 법원 업무 정리하기, 혼자 미술관 다녀오기, 산으로 드라이브 가서 차 한잔 마시고 오기, 나를 위한 요리 해 먹기, 걷기 2주 챌린지, 모든 배움을 기록하기 ]



나는 오전 일찍 대표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요새 유독 내 눈치를 살살 보고 있었다. 나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고, 대표는 알겠다고 했다.

다른 직원들이 퇴사할 때처럼 이유를 캐묻고 저주를 하든, 충고를 하든 무슨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내게는 이유를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

"너 말 함부로 안 하는 거 알아. 이렇게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확신이 들었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해봤자 안 들릴 거고. 그렇게 해."


나는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한 날로부터 마지막 출근 날까지 퇴사자에게 얼마나 껄끄럽고 기분 상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지 알고 있다. 사회 경험이 조금만 쌓여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나의 퇴사 같은 경우 아주 정 반대였다. 대표에게 퇴사를 말하고 나니, 모든 것을 해탈한 사람처럼 마음 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적어도 내 퇴사의 귀책이 내게 있지 않다는 것에서 나오는 안도의 감정이었다.

얼마 전까지 죽을상을 하던 애가 갑자기 샤랄랄라 자비로운 미소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다니자 대표는 안절부절 참지 못해 결국 내게 회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물어보았고, 나는 담담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때론 너무 미웠고, 여전히 그를 불신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한때 애정을 쏟았던 자리가 앞으로도 빛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도 용기를 낸 것이다.

 

대표는 모든 문제가 본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따가운 말을 하필 내게서 들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속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대표는 다른 직원들보다 나를 조금은 더 믿고 있었다.

당장은 가슴 아픈 말이었겠지만, 말을 험하게 해서 괜한 미움을 사는 그가 직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는 상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미운 정은 생각보다 강하다. 어쩌면 미워하게 되는 것도 무언가 따뜻함을 기대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며칠 동안 그는 하루에 몇 시간씩, 내가 퇴근 후에는 전화로도 나를 붙잡았다. 말도 안 되게 높은 연봉과 인센을 제시했고 이 업계를 잘 모르지만 전국 어디에도 없을 조건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내게 들은 모든 고쳐야 할 점을 계약서에 명시할거고, 절대 내 일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맹세도 수 차례 해왔다.


완벽주의는 일을 완벽하게 한다는 좋은 뜻이 아니다. 모든 기준이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라 언제나 스스로를 '기준미달'로 느끼게 하는 강박일 뿐이다.

나는 융통성이 없어서 옳은 것 또는 맞는 것을 추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미운 오리가 되는 이유는 내가 '노력 부족형 인간'이라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저 높이 달린 '기준통과'가 쓰인 깃발을 바라보며 나를 더욱 몰아세웠고 결국 얼마못가 지치면 흰 수건을 던지며 끝까지 싸워보지도 않고 링 안에서 빠져나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나의 마지막 회사생활을 돌이켜 보면 나는 너무나 부족했다. 조금만 더 했으면, 조금만 더 생각을 고쳐먹었으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랬었다면.


마지막 출근을 한 날, 대표는 내게 앞으로 운동을 하러 오라고 했다. 센터 전 직원이 나를 운동시켜 보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나는 신념이 강한 종이인형이라는 것을 대표는 알고 있었다. 그냥 보고 싶을 것 같으니까 평생 무료 이용권 줄 테니까 오라고. 그러다 심심하면 다시 일하라고 했다.

회원님들께도 작별인사를 하자 뛰어나가 음식을 사 오시고, 용돈을 쥐어주시는가 하면 많은 분들이 나를 꼭 안아주셨다. 내 웃는 얼굴이 정말 하루의 힐링이었다며 머리와 볼을 쓰다듬어 주셨다.

다툼이 있었던 여직원은 나로 인해 세상에는 다양한 섬세함이 있다는 걸 배웠다며 고맙다고 했고 모두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뜨겁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 퇴근길에 마음에 담아온 그들의 눈빛이 너무 무거워서 걸음이 느릿느릿 느려졌다.

나 생각보다 많은 박수를 받고 있었구나. 나 잘했구나.



날이 조금씩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가을은 미완의 계절이라 했던가.

남편과 하루는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여러 주제를 겉돌다 완전히 멈춘 지점은

무엇이든 시작하기 전에 굉장히 망설이는 편인 내가 예전에 접었던 꿈을 다시 도전하려 한다는 주제였다.

나는 마냥 해맑고 현실성 떨어지는 조언을 싫어하는 사람이란 걸 남편은 잘 알기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스트레스받을 거야. 기약이 없는 일이기도 하고 너 성격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이네. 내가 옆에서 많이 응원하고 밀어줄게.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대답했다.

"당장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아. 그 결과가 그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일 거야.

마법이 있어서 시간을 되돌린다거나, 시간을 남들보다 더 준다 해도 결과는 비슷할 거고. 최선이라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봐. 나 이제 한 시간씩 걸어도 발 안 아파.

전에는 5분 10분이 내 최선이었다면, 지금 내 최선은 1시간도 넘어.

그렇게 살 거야. 앞으로."


나는 믿음과 사랑을 먹고 자라 그의 요람 안에서 빠져나왔다. 이제는 많이 커버린 나에게 아이를 위한 이불은 너무 작아진 것이다.

그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감격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제야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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