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반에는 특별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고기능 자폐를 가지고 있는 A라는 친구입니다. 고기능 자폐는 일반적으로 자폐 증상을 보이는 친구들의 행동을 보이나 그 정도가 경하고 지적장애를 동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A는 완전 통합반인 저희 반에서만 생활을 합니다. 싫고 좋음이 분명하고 솔직한 A는 저를 무척 좋아합니다. 저도 그런 A의 천진난만함이 예뻐 A만 보면 웃음이 나는데 자기도 그걸 아는가 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제 맘 같지 않았습니다. 1학기까지만 해도 영어와 체육시간은 저에게 고역이었습니다. 영어시간에 모둠별로 역할극을 하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인물에 뽑히지 않으면 A가 울면서 화를 내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영어시간만 끝나면 아이들이 '선생님 오늘 A가 영어시간에 울었어요.' 혹은 'A가 영어 시간에 머리 때리고 화냈어요.'라며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체육시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팀이 안되거나 공 던지는 기회가 다른 친구에게 가면 속상한 마음에 또 울고 머리를 때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A가 영어시간이나 체육시간에 울지 않으면 아이들은 '선생님!!! 오늘 A 수업시간에 진짜 잘했어요!!!!!'라며 앞다투어 칭찬을 하며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A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고 아주 잘합니다. 그래서 학년 초에는 수학 단원 평가에서 백점을 맞지 않으면 속상해서 머리를 때리면서 우는 일이 잦았습니다. 지금도 시험 점수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약간 눈물이 고이고 자기를 비하하는 말을 하곤 하지만 신체적으로 격한 행동을 하는 건 현저히 줄었습니다.
그리고 A는 자기가 좋아하는 동요에 맞춰 친구들 앞에서 춤추는 걸 좋아합니다. 또 마리오 게임을 특히 좋아해서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이름과 게임 상황을 줄줄 외우고 있습니다. 어쩔 때는 자기가 메인빌런인 쿠파가 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주인공 마리오가 되기도 합니다. 간혹 친구들이 마음에 안 들 때면 마리오 게임에 대입시켜 자기 마음속에 정해둔 친구들의 코인을 뺏거나 함정에 빠뜨려서 속상한 감정을 풉니다.
이것 때문에 처음에는 아이들이 A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참 많이 기분 나빠하고 저에게 와서 이르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A가 자기한테 무언가를 던진다고 했다, 함정에 빠뜨린다고 했다, 자기한테 이상한 말을 한다고 말입니다. A와 짝꿍이 된 한 친구는 너무 걱정이 됐는지 그날 그 친구의 부모님께 염려의 문자를 받기도 했습니다. A도 친구들이 자기를 약간 경계하는 느낌을 받았는지 쉬는 시간마다 다른 반을 기웃거려 다른 반 친구들에게 A가 교실에 찾아오지 못하게 해 달라는 민원도 받았었습니다.
아이들이 A 때문에 놀라고 예민해질 때마다 저는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습니다. A가 하는 행동은 본인도 자기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 하는 나름의 노력이다. 그리고 너희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A가 자기 머릿속에 있는 세계에 너희를 대입해서 생각하는 것이니 너무 놀라고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A에게도 친구들의 마음을 대신해서 설명해 주고 가끔 친구들에게 지나치게 강요하는 말을 하거나 자기 신체를 심하게 대하면 따끔하게 혼도 냈습니다.
그렇게 A와 우리 반 친구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지낸 지 어느덧 10달이 지났습니다. 요즘은 A가 다른 교과 시간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거만 하겠다고 고집부리거나 속상해하지 않고 스스로 양보하며 즐겁게 활동하고 돌아옵니다. 이제 A는 우리 반의 마스코트나 다름이 없습니다. A는 친구들에게 스스럼없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친구들도 A에게 사랑고백을 하는데 거침이 없습니다. A에게 얘가 더 좋냐 내가 더 좋냐며 애정도 테스트를 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가끔 친구들의 한마디에 A가 속상해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친구들은 A에게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하고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 그러면 A도 금세 다시 오해를 풀고 원래의 천진난만한 아이로 돌아옵니다.
요새 저희 학교는 점심시간에 음악방송을 합니다. 그런데 A가 신청한 동요가 며칠째 선정이 되지 않아 A가 아쉬워하자 우리 반 아이들이 다 같이 그 노래를 신청해 주자며 자기들끼리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엊그제부터는 A가 본인 집에서 크리스마스 쿠키 만들기를 계획해 반 아이들을 초대하고 있는데 거의 저희 반 단체 파티가 될 상황입니다. 저희 반 아이들이 A네 어머니가 힘드시겠다며 걱정할 정도입니다. A네 어머니께서는 힘드시겠지만 아이들을 지켜보는 저는 그저 흐뭇합니다.
저희 반이 지금 이 모습이 되기까지 제가 무언가 많이 한 거 같지만 돌이켜 보면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아이들이 가진 사랑이 지금의 우리 반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우리 반 아이들이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 가며 함께 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