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이프라인 Jul 22. 2023

서이초 초등 교사는 왜 죽었나.

어휴, 이 불쌍한 사람들.

 "선생님 교회 다니죠?"


 "왜 그렇게 생각해?"


 "점심 먹을 때 기도해서요."


 급식 먹을 때 학생들이 안 먹고 떠들지는 않나, 밥 흘리지 않고 제대로 먹고 있나, 밥 먹는 친구에게 장난 걸진 않나 보고 있었는데 정작 몇 명의 학생은 밥 먹는 나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하나님 안 믿어. 기도를 신에게 하는 게 아니야. 이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노력하시고 수고하신 분들에게 감사 기도하는 거지."


 "......"


 아마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 같다.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내 눈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자기 할 일을 하러 가버렸다.


 그래. 너희들에게는 당연한 거지. 당연히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실로 가고, 식판을 들고, 밥을 받고, 그 밥을 먹는 것, 그건 너희에게 당연한 거야. 그러니 감사할 일이 없는 거지. 모르니까 당연한 거야. 언젠가 너희들도 알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거야.




 2021년 7월 3일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는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이는 UNCTAD 설립 이래 처음 있는 일로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가 세계 어디에서도 개발도상국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한때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폐허가 된 변방의 거지국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삶으로 후원을 받아야만 살 수 있었던 나라에서 이제 우리나라는 당당히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리고 많은 분야에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다. 한때 일본, 미국을 우러러보았던 대중문화는 이제 한류를 넘어 세계 속에서 인정받고 있고 우리나라의 제품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판매를 하고 있으며 자신의 꿈을 국내로 한정 짓지 않고 세계로 펼쳐가는 청년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순위는 10위권. 예전의 그 가난했던 나라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보다 못한 다른 나라를 불쌍히 여기고 다른 나라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힘을 갖게 되었다.


 자원도 없고 뛰어난 과학기술이나 지식도 없이 지금까지 이렇게 발전한 것은 오로지 우리의 노력 때문이다.


 맞나?


 지금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쟁취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아버지가, 그의 아버지가, 또 그의 아버지가 노력해서 일군 결과의 산물은 아닌가?


 우리는 이를 우리 자신이 열심히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을 넘어선 나의 노력이, 나의 공부가 이 모든 것을 얻어낸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신이 태어난 것은 당신이 원해서가 아니다. 당신의 부모가 신이어서 당신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다.


 이것은 오직 운이다.


 당신은 내가 방금 손으로 때려잡은 날파리일 수도, 오늘 아침 내가 먹은 달걀프라이일 수도 있었다. 당신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남들보다 더 앉아서, 남들보다 더 안 자고, 남들은 생각지도 못할 땀방울을 흘렸는데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살기 힘든 나라에서 전쟁 중에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자마자 부모와 함께 포탄에 맞아 생명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우리 지금의 모습을 우리가 노력해서라고 착각하지 말자. 내가 노력했기에 나는 누릴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안타깝게도 당신의 노력은 태어날 때부터 당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고작 계산으로 몰아넣었을 뿐이다. 이게 나에게 이득이 될까, 손해가 될까. 이 말은 남에게 인기를 얻을까, 남들을 떠나가게 할까. 이 행동은 남에게 선망을 받을까, 우스갯거리가 될까. 이것은 표가 될까, 표가 되지 않을까.


 이로 인해 슬퍼하지 못하는 자들이여. 당신은 얼마나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옮음과 그름 사이에서 고뇌하는 자들이여. 짧은 인생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울 것인가.


 슬픔보다 더 큰, 눈먼 생각들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23살 젊은이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지 못하는 슬픈 사람들이여, 당신들이 내세울 수 있는 건 고작 운으로 얻어진 그깟 것들 뿐이다.


 젊은 교사의 눈에 우리는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까. 당신의 거만함 속에 가려진 초라함이 얼마나 눈뜨고 보기에 안타까웠을까.


 우리를 위한 젊은 교사의 희생을 다시 한번 추모한다.




 누구 때문에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낯설지가 않네요. 서로를 탓하고, 책임을 논하고, 미워하고...


 또 누가 죽어야 그깟 행동이 사라질까요.


 그냥 슬퍼하면 안 됩니까?


 나보다 어린 사람이 이 세상이 혐오스럽다고 등을 돌렸는데.

 



 오늘 서이초를 다녀왔습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그런데 소식을 듣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온 사람들만 왔네요? 안 오면 욕먹는 사람만 왔다 갔습니다.


 거리에 자기 PR 하는 현수막은 그리 많은데.


 분노의 힘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

이전 24화 초등학교가 끝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