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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Feb 01. 2024

평생 누릴 만한 즐거움

이색 <기증유사암시권서(寄贈柳思菴詩卷序)>

군자에게는 평생 누리는 즐거움이 있으니, 잠깐의 즐거움은 나의 즐거움으로 삼기 부족하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고집부리는 일도 없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고집도 없으며,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땅을 내려다보든 하늘을 올려다보든 조금도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른바 나의 즐거움이라는 것이 맑게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죽고 살고 장수하고 요절하고는 하늘의 뜻이며, 길하고 흉하거나 잘되고 못 되는 일은 남에게 달린 것이니, 이 모두 내가 어찌할 수 없다...벼슬은 나를 존귀하게 만들고 녹봉은 나를 부유하게 만든다.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나를 곤궁하게 할 수도 있고, 나를 존귀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나를 미천하게 할 수도 있다...그것이 내가 아니라 남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디 나의 소유가 아닌 것이 하루아침에 내 것이 된다면, 아무리 존귀하고 부유해진다 하더라도 나는 기뻐하지 않는다. 기뻐하는 것도 안 되거늘, 하물며 평생의 즐거움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주 1)!


어쩌다 보니, 글쟁이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재미라는 것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는, 누군가 글을 읽고 댓글을 달고 '라이킷'을 눌러줄 때입니다. 특히 거슬러 올라가며 지난 글까지 두루 찾아 읽고 '좋아요'를 연방 눌러줄 때면,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곤 합니다.

둘은, 역시나 구독자가 늘어날 때입니다.

셋은, 즐거움이 가장 덜한 것으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이 문장에 적용시켜 보면,

구독자가 늘어나고, 누군가 내 글에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생의 즐거움'으로 삼을 만한 것이 못 됩니다. 그렇다고 글쓴이의 노력이 헛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맥락이 다르다는 것쯤은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반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순수한 즐거움은 오로지 내게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글을 쓰면서 내면을 들여다보고, 생각이 정리되고, 치유를 경험하는 과정들은 '평생의 즐거움'으로 삼을 만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아직 얼치기에 불과한 저로서는 군자가 되려면 한참 멀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작가분들께 구독자 신경 쓰지 말고 순수한 목적으로만 글을 쓰라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문장은 목은 이색이 지은 것으로, 유숙(1324~1368)의 삶을 칭송하면서 지은 시집의 '서문'에 들어 있습니다. 유숙은 18세의 젊은 나이로 공민왕을 따라 연경에 갔다가 11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공민왕이 왕위에 오르자 14년 동안 국정에 관여했는데, 그 유명한 신돈이 정권을 장악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색은 벼슬에서 물러나는 그를 위해 시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유숙은 충직한 신하로 중용되어 여러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그의 성품을 두려워하던 신돈의 모함으로 시골로 낙향, 장을 맞고 유배지로 귀향을 갔다가 결국에는 신돈이 보낸 자객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주 2). 충직한 신하들의 서글픈 운명이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가 봅니다.


이 문장의 요는, 남에게 달려있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지 말고, 내게 달려있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가변'적인 것에서 참된 즐거움을 찾지 말고, 변하지 않는 '불변'에서 찾으라는 말입니다.

좀 더 본의에 가깝게 말하자면, 세상의 부귀영화에서 즐거움을 찾지 말고, '도'를 추구하는 삶에서 참된 즐거움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이색은 사람이 관할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는, 죽고 살고 장수하고 요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오래 살든 적게 살든 그것에 인생의 참된 즐거움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둘은, 길하고 흉하거나 잘되고 못 되는 일입니다. 길하면 좋고 흉하면 안 좋고, 우리는 누구나 그러게 마련이지만, 길하고 흉한 것은 사람의 관할 밖의 일이니, 그 또한 사람이 참된 즐거움을 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셋은, 벼슬과 녹봉입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면, 내 능력으로 얻은 지위와 수입이지만, 언제든 잃을 수 있다는 것 또한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흔한 일들이지만, 사람으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고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니, 그곳에 참된 즐거움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에 즐거움을 두라는 말인가요? 이색의 말을 빌리자면,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땅을 내려다보든 하늘을 올려다보든 조금도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에 즐거움을 두라고 합니다. 사람으로서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 그것은 밖이 아닌 자기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유숙이 14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누렸던 부귀영화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 본디 내 것이 아닌 것이라면, 신하로서 가졌던 충직한 마음과 절개는, 내게 달려있는 것, 신하로서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색은 낙심해 있을 유숙에게, 그곳에 평생의 즐거움을 두었으니 '참 잘했다' 말하는 것입니다.


평생 누리는 즐거움으로 삼을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내 영역 밖의 일, 본디 내 것이 아닌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그러므로 본디 나의 소유가 아닌 것이 하루아침에 내 것이 된다면, 아무리 존귀하고 부유해진다 하더라도 나는 기뻐하지 않는다.'




주 1) 이규보 외, <한국 산문선 1>, 2018, 민음사

주 2)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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