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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Feb 05. 2024

갈매기에게 배우다

정이오 <사백구문(謝白鷗文)>

새 가운데 갈매기가 있어 구름보다 흰데
드넓은 바다로 사라지니 길들이기 어렵네.
사람 낯빛을 보고 날아올라 주살을 멀리하니
나면서부터 기미를 아는 네가 신통하구나.
내 이제 부끄러워 탄환을 버리고
왕래를 끊고서 마음을 졸인다네.
세상 사람은 웃음 속에 칼을 품었으니
갈매기가 아니면 내 누구와 함께 다니리오.
더구나 파리 떼 같은 이들 천지에 가득하니
내 마음을 그 누가 알아주리오.
강과 바다를 자유롭게 떠돌며
마침내 너와 함께하길 맹세하노라(주 1).


이 문장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의 격동기를 살았던 문신 정이오의 것입니다.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로부터 학문을 전수받은 그는, 문장가로서 명성이 높았습니다. 이 문장은 '사백구문(謝白鷗文)'이라는 글 속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번역하면, '흰 갈매기에게 사례하는 글'이라는 뜻입니다.


한 번은 그가 군사들이 탄 누선을 타고 해안을 따라 내려가다가, 갈매기들을 자세히 관찰한 일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갈매기가 누선 가까이 오는 이유가 오직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더랍니다. 누선에 탄 군사들 중에는 고기를 잡는 사람도 있고 사냥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잡은 짐승과 물고기의 내장과 찌꺼기를 얻어먹으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문득 호기심이 동한 그는 군사들에게 탄환을 얻어 갈매기를 쏘는 시늉을 했습니다. 갈매기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탄환을 가진 뒤로는 갈매기가 감히 누선 가까이 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쏘지도 않고 총성도 들리지 않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갈매기는 진행되는 상황을 모두 감지하고 눈치를 챈 것입니다. 『논어』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낯빛을 보고 날아오르더니 빙빙 돌다가 내려앉네(주 2).' 새가 사람의 얼굴표정을 엿보고 날아올라 빙빙 돌며 자세히 살피다가 내려앉는다는 소리입니다.


갈매기의 '기심(機心)'은 『열자』「황제」에 나오는 고사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갈매기를 좋아해 매일 아침 바닷가로 나가 백여 마리의 갈매기와 어울려 놀았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갈매기 한 마리를 잡아 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그가 갈매기를 잡으려는 마음을 먹고 바닷가로 나갔더니, 한 마리도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기회를 보아 움직이려는 ‘기심’이 있다는 것을 갈매기들이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주 3).


갈매기의 이런 지혜로움을 깨닫고 지은 시가 바로 이 문장입니다.

사람의 낯빛을 보고서 기미를 눈치채고, 자리를 피해 사태를 관망한 후 행동을 취하는 지혜로움.

그는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갈매기와 함께 다녀야겠다고 합니다.

이익과 부귀를 쫓아 파리 떼 같이 몰려다니는 이들이 가득한 세상에는, 갈매기와 같이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갈매기라면 저 더럽고 위험이 가득한 곳을 보면서 낌새를 알아채고 가까이하지 않을 텐데'하고 말이지요.

그는 이익과 부귀를 탐내는 사람들이 형벌이 다가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 눈치 빠른 갈매기만도 못하다고 비꼬고 있습니다.


시대가 다르다 하더라도 사람이 사는 모양새는 지금이나 그때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이익을 쫓아다니는 사람들 또한 많습니다. 갈매기처럼 '기미'를 눈치채고, 사태를 정확하게 판단한 후 처신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120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했던 사람들마저 은퇴한 후 미래를 불안해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10년 후에, 은퇴한 후의 나의 인생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의 삶으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면, 갈매기처럼 미리 낌새를 알아채고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혹자는 이렇게 합리화할지 모른다. '지금 여기엔 낭떠러지가 없어. 근처에는 없어. 하나 있긴 한데, 앞으로 10년 동안 거기서 떨어질 일이 없을 만큼 먼 곳에 있어.' 하지만 우리의 정신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부분은 이렇게 반박한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10년은 꽤 긴 시간이라 예측이 틀릴 수 있지만, 그래도 현실이야. 10년 뒤에 재앙이 예상된다면 이제부터라도 그쪽으로 달려가지 않는 게 맞아(주 3).'




주 1, 2, 3) 이규보 외, <한국 산문선 1>, 2018, 민음사

주 3) JORDAN B. PETERSON , <질서너머>, 2023, 웅진 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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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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