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을묘사직소>
그리고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글렀으며,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했습니다. 하늘의 뜻은 이미 떠났고 백성의 마음은 이미 흩어졌습니다. 비유하자면 큰 나무를 백 년 동안 벌레가 파먹어 진액이 다 말라 버렸는데 거센 비바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른 지 오래입니다. 조정에 있는 사람 중에 충성스럽고 뜻있는 신하와 밤낮으로 부지런한 선비가 없지 않으나, 이미 형세가 극에 달하여 지탱할 수 없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손쓸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낮은 관원들은 아래에서 시시덕거리며 주색을 즐기고, 높은 관원들은 위에서 데면데면하게 재물만 늘리고 있습니다. 물고기의 배가 썩고 있는 지경인데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조정에 있는 신하는 용이 연못에 도사리듯 도와줄 당파를 끌어 모으고, 지방에 있는 신하는 이리가 들판을 마음대로 누비듯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데, 가죽이 없어지면 털이 붙을 곳이 없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전(임금의 어머니)께서는 생각이 깊으시나 깊은 궁중의 한낱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께서는 어리시니 선왕께서 남기신 일개 고아일 뿐입니다... 평소 조정에서 재물로 사람을 등용하므로 재물은 모였지만 백성은 흩어졌습니다... 마음속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온갖 잡념을 제거하는 계기는 나에게 달려 있을 따름인데, 전하께서 종사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루아침에 퍼뜩 깨달아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신다면 홀연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를 터득할 것입니다... 훗날 전하께서 왕도 정치의 교화를 이루신다면 신은 하인들 사이에서 채찍을 잡고 마음과 힘을 다해 신하의 직분을 다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바로잡아 백성을 새롭게 하는 주안점으로 삼으시고... 임금이 임금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않으니...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옵니다(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