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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Feb 22. 2024

정신의 이가 빠지지 않도록

김창흡 <낙치설(落齒說)>

무술년(1718)에 나는 예순여섯이 되었다. 앞니 하나가 까닭 없이 빠져 버렸다. 갑자기 입술이 일그러지고 말이 새며 얼굴도 비뚤어지는 것을 느꼈다. 거울을 들고 살펴보니 다른 사람 같아 깜짝 놀라 거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중략) 이제 한 차례 입을 벌리면 그 소리가 깨진 종과 같다. 빠르고 느림에 가락이 없고 맑고 탁함은 조화에 어긋나 칠음(七音)을 구분하지 못하고 팔풍(八風)을 알지 못한다. 처음엔 낭랑하게 하려 하다가도 나중에는 말을 더듬게 되니 이에 서글퍼져서 읽기를 그만두고 만다. (중략) 이제 느닷없이 형체가 일그러져서 추한 꼴이 드러났다. (중략) 이제부터 비로소 노인으로 자처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중략) 형체가 일그러지니 고요함에 나아갈 수가 있고 말이 헛 나오니 침묵을 지킬 수가 있다. 살코기를 잘 씹을 수 없으니 담백한 것을 먹을 수가 있고, 경전 외는 것이 매끄럽지 못하고 보니 마음을 살필 수가 있다. 담백한 것을 먹으면 복이 온전하고 마음을 살피면 도가 모인다. 그 손익을 따져 보면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지 않겠는가? 대개 늙음을 잊은 자는 망령되고 늙음을 탄식하는 자는 천하다. 망령되지도 천하지도 않아야 늙음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다. 편안히 여긴다는 말은 쉬면서 자적하는 것을 말한다. 기쁘게 화평함에 처하고 성대하게 조화를 올라타 형상의 밖에서 노닐며 요절과 장수를 마음으로 따지지 않으니 천리를 즐겨 근심하지 않는 사람에 가깝다 하겠다(주 1).


이 문장은 삼연 김창흡(1653~1722)의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김수항에게는 여섯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육창(六昌)이라 불리며 모두 학문과 문예에서 성취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형 김창협(농암)과 동생 김창흡(삼연)은 '농연(農淵)'으로 불리며 형제들 중에서도 특별히 탁월했다고 합니다(주 2).


삼연 김창흡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앞니 하나가 까닭 없이 빠져 버렸다.'


몸이 노쇠하여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는 노년의 쓸쓸함이 '까닭 없이' 빠져 버린 '이' 하나 속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는 아무런 연고도 없이 빠져버린 이를 보면서 무슨 감정을 느꼈을까요? 이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가 빠지니 입술이 일그러지고 말은 새고 얼굴의 모습도 비뚤어지는 연쇄작용을 일으킵니다.


저는 상상해 보았습니다. '늘 붙어있던' 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빠져나가더니, 입술이 일그러지고 얼굴이 비뚤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일지를. 뭔가 얼굴의 느낌이 이상해 거울을 들여다보았더니, 그 안에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 어떠할지. 아마도 같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릴 것만 같은 서글픈 마음. 그러나 어떻게 생각만으로 그 참담한 심정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제게 칼럼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글 한 편과 프로필 사진을 한 장 보내달라는데, 쓸만한 사진이 없었습니다. 저는 사진발을 잘 받지 않아서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한테 찍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고, 셀카를 잘 찍지도 않습니다. 어쩌다 서너 개 찍어놓은 게 있긴 하지만, 칼럼 프로필 사진으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거울을 들여다보니, 초췌해진 얼굴에 볼살이 빠져 참 볼품이 없는 겁니다. 왠지 모르게 주름도 더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볼을 좀 통통하게 만들고 찍어야겠다 생각하고, 일주일 정도 보류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다고 얼굴살이 더 붙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대로는 찍을 수가 없는 겁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뽀샵이라도 배워둘걸.'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볼살이 붙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얼굴에 생기가 더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허탈함도 느껴집니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몸이 하나둘 쇠약해지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일지 모르나,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마음과 정신이 쇠약해지는 일이라고 말이지요. 이가 빠지고 입술이 일그러지고 얼굴이 비뚤어지는 것은 슬퍼하면서, 마음과 정신이 일그러지고 비뚤어지는 것을 한탄하지 않는다면 두려운 일입니다.


김창흡은 형체가 일그러지는 아픔 속에서 오히려 내면을 고요하고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가 빠져 자꾸 말이 헛 나오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침묵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전 외는 것이 매끄럽지 않으니 책을 덮고 마음을 살필 기회로 삼았고,

그 결과 정신이 편안해지고 허물이 줄었다고 말합니다.

또 이가 빠져 질긴 것을 먹지 못하니 담백한 것을 먹고 몸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옛사람들의 유익은 미리 본을 보여 후세에 가르쳐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기쁘게 화평함에 처하고 성대하게 조화를 올라타 형상의 밖에서 노닐며 요절과 장수를 마음으로 따지지 않으니 천리를 즐겨 근심하지 않는 사람에 가깝다 하겠다




주 1, 2) 김창협 외, <한국 산문선5>, 2017, 민음사


⁕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거장에게 듣는 지혜>

⁕ 수, 일 - <사소한 일상은 인생의 최종손익결산>


월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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