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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Feb 15. 2024

접붙인 나무에게 배우다

한백겸 <접목설(接木說)>

아, 한 그루 복숭아나무조차 땅을 바꾸어 심지도 않고, 다른 품종의 뿌리로 바꾸어 심지도 않았으며, 단지 한 줄기의 다른 나무를 접붙였을 뿐인데 가지가 자라고 꽃이 피어 모습이 갑자기 바뀌었다. 보는 사람이 눈을 비비게 만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길이 날 정도였다. 접붙이는 재주를 부리는 자는 아마도 조화의 묘리를 알 것이다. 참으로 기이하도다. 나는 여기에서 느낀 점이 있다. 변화하여 새로워지는 효과는 비단 풀과 나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보더라도 어찌 이와 멀다고 하겠는가.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과감히 제거하는 것은 오래된 가지를 베어내는 것과 같고, 선한 단서가 싹트면 이어 나가는 것은 새로운 가지를 접붙이는 것과 같다. 함양(涵養)은 뿌리를 북돋는 것과 같고, 궁리(窮理)와 격물(格物)은 가지를 자라게 하는 것과 같으니, 시골 사람이 성인으로 변하는 것도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어떤 사람은 자기가 늙었다고 과장하며 사지를 게을리하고 아무 데나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 사람이 이 복숭아나무를 본다면 기운을 내고 벌떡 일어날 것이다(주 1).


한백겸(1552~1615)은 선조 시대에 관직에 임명되었다가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면을 받았고, 다시 등용되어 안악 현감, 영월 군수, 호조 참의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한백겸 초상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접붙인 나무에서 가지가 자라고 꽃이 피고, 그 모습이 갑자기 바뀌는 것을 보면서, 그는 자신을 성찰합니다. 

'나 자신을 보더라도 어찌 이와 멀다고 하겠는가.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과감히 제거하는 것은 오래된 가지를 베어내는 것과 같고, 선한 단서가 싹트면 이어 나가는 것은 새로운 가지를 접붙이는 것과 같다.'

그러니 늙었다는 핑계를 대며 게을러서는 안 되고, 부지런히 나쁜 생각의 가지들을 잘라내어 성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땅을 바꾸지 않아도, 품종을 바꾸지 않아도 가지가 자라고 꽃이 피는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노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키케로의 『인생론』에는 대(大) 카토와 그를 찾아온 두 명의 청년이 나누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키피오와 라일리우스라는 두 청년이 카토를 찾아와, 노년을 그토록 편안하게 보내고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카토는 그들에게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살라미스 해전과 테미스토클레스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테미스토클레스가 세리포스 섬사람과 언쟁을 하게 되었는데, 그가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자기 자신이 아니라 조국의 영광 덕분에 명성을 얻었을 뿐'이라며 깎아내리고 비아냥거리는 겁니다. 이것을 보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맞는 말이오. 만일 내가 세리포스 사람이었다면 유명해질 수 없었겠지. 하지만 당신은 아테네 사람이었다 해도 유명해지는 것은 무리였을 거요(주 2)."


어떤 상황과 환경 덕분에 명성과 권세를 얻었을 뿐이라는 논리를 펴는 상대에게,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과 철학, 온갖 덕과 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그의 삶의 태도가 명성과 권세를 가져온 것이라고 반박하는 것입니다.

카토는 테미스토클레스가 한 말의 형식을 빌려 그들에게 노년에 대해 이렇게 말해줍니다.

"현자라 해도 극도의 결핍 속에서는 노년이 가벼울 수 없지만, 어리석은 자에게는 태산만 한 재산이 있어도 노년은 무거운 법이라네(주 3)."


카토는 테미스토클레스의 말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부와 재산, 명성과 같은 상황과 환경이 노년의 편안함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과 훌륭한 마음가짐, 덕을 닦고 실천해 온 그의 삶이 켜켜이 쌓여 노년의 편안함을 가져오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재산과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노년의 편안함을 누리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갈고닦아 온 생각과 철학, 덕과 마음가짐, 그리고 덕을 실천해 온 삶이 노년의 편안함과 사람들의 존경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부와 재산 또한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카토의 말처럼 빈곤은 노년을 무겁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자녀 세대에게도 부담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물질, 두 가지를 모두 균형 있게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몽테뉴도 『에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자기 도덕과 그의 능력으로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착하고 행세가 점잖아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중략) 노년이 되어 아무리 노쇠하고 썩은 냄새가 나더라도, 젊었을 때 영광을 받고 지낸 인물은 그 아이들에게 존경받지 않는 일이 없으며, 그는 그들의 마음을 이치에 맞게 의무를 지키도록 지도한 것이고, 궁하거나 필요에 못 이겨서, 또는 강제와 억압으로 존경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주 4).


한백겸이 접붙인 나무에서 얻은 깨달음은 키케로, 몽테뉴의 말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요즘은 '120세 시대'라고 합니다. 그만큼 노년이 길어지게 되는데, 노년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카토처럼 젊은이들이 지혜와 조언을 구하기 위해 찾아올 만한 사람이 되면 좋지 않을까요?




주 1) 조식 외, <한국 산문선 3>, 2017, 민음사

주 2, 3) M.아우렐리우스/키케로, <아우렐리우스 명상록/키케로인생론>, 2018, 동서문화사

주 4) 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2005,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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