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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Jan 29. 2024

빌린 것은 빌린 것일 뿐, 내 것이 아니다!

이곡 <차마설(借馬說)>

그렇지만 사람이 소유한 것이 무엇인들 빌린 것이 아니겠는가? 임금은 백성에게 힘을 빌려 존귀하고 부유해지며, 신하는 임금에게 권세를 빌려 총애를 받고 귀해지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노비가 주인에게도 마찬가지니, 그 빌린 것이 몹시도 많다. 그런데도 대부분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길 뿐 끝내 깨닫지 못한다. 어찌 어리석지 않겠는가! 만약 별안간 빌린 것을 돌려주어야 한다면 큰 나라를 소유한 임금도 일개 평범한 사내가 되고, 큰 집안을 소유한 대부도 그저 외로운 신하가 된다. 하물며 미천한 사람은 어떠하겠는가(주 1)!


이 문장은 고려 말 문신이었던 이곡의 <차마설(借馬說)>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해석하자면, '빌린 말에 대하여 논하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이곡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목은 이색의 부친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 글에서 남에게 빌린 말을 자기 것인 양 함부로 다루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깊이 통감하고, 임금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국책』에 '수레를 빌린 사람은 마구 달리고 옷을 빌린 사람은 함부로 입는다.(주 2)'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남의 물건을 빌렸으면 귀히 여기고 조심히 써야 하는데, 사람은 그것을 금세 잊어버리고 제 것인양 함부로 사용하는 습성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위로는 권력자로부터 아래로는 평범한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마음은 모두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권력자들이 그것을 모르고 제 것인 줄 알고 쓰다가, 초라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라의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도, 비록 작은 직위지만 국가의 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도, 국가뿐 아니라 기업이나 기타 공동체의 리더 역시 구성원들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제 것으로 여기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마치 수레를 빌리고도 제 수레인 것처럼, 옷을 빌리고도 제 옷인 것처럼 함부로 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그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들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곡은 말합니다.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길 뿐 끝내 깨닫지 못한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있지만, 그들 중에는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예계의 생태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렇게 사라지는 사람들 중에는, 능력보다는 인격과 행동이 문제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함입니다. 연예인들은 팬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직업인 만큼, 그들이 누리는 모든 혜택이 그들로부터 빌린 것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하는데, 그것을 마치 본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끝내 깨닫지 못하다가 그런 결말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어찌 국가의 공인이나 연예인과 같은 사람들만 그렇겠습니까? 평범하게 사는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진 몸도 내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더 넓고 깊게 보면 우주라는 거대한 실체 속의 한 조각으로, 수 없이 많은 원자들이 모여 나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나의 정신과 영혼 또한 내 것이 아니라 더 큰 무엇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이 또한 내가 빌려 사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나의 능력과 재능 또한 나에게 맞게 주어진 것이니, 다만 제 역할을 하도록 올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몸이 내 것이라고, 정신과 영혼이, 능력과 재능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사용하고 낭비하고 심지어 욕하고 저주한다면, 남의 수레와 옷을 빌려놓고도 제 것처럼 함부로 사용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끝내 깨닫지 못한다면, 그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내 몸(신체)을 사랑하여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들고,

내 정신을 소중하게 여겨 좋은 것으로 채워 강인하게 만들고,

내 영혼을 귀하게 여겨 깨끗하고 선한 것으로 채워 숭고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빌린 것이 몹시도 많다. 그런데도 대부분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길 뿐 끝내 깨닫지 못한다. 어찌 어리석지 않겠는가!'




주 1, 2) 이규보 외, <한국 산문선 1>, 2018,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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