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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경 Nov 10. 2024

삶을 바꾼 심장병 진단의 순간과 두 번의 수술

진단명은 완전방실차단, 7살과 13살 때의 수술.

나는 우연히 후천성 심장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살쯤 감기 증상이 있어서 개인병원에 갔는데 거기에 계신 선생님께서

출처: Unsplash
아기 심장 소리가 안 좋은데 큰 병원에 가보세요

라는 말을 하셨고 2차 병원에 가서 약 6년간 2~3개월마다 심장 검사를 받았다. 5살이 되던 즈음 나의 심장박동수는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인공심장박동기(pacemaker)를 이식해야 하는데, 부모님은 반대를 했다. 너무 어린 나이이기도 하고 이식한다고 해도 배터리가 짧으면 5년에서 길면 15년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는데 맑고 예쁜 시기에 가슴에 큰 흉터를 남기긴 싫었기 때문이다. 내 상태를 파악해서 의료진 분들도 박동기 수술은 미루자고 하셨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검사만 하러 다니다 7살에 24시간 심전도검사(홀터검사)를 받았는데 내가 잠을 잘 때, 맥박 수가 40까지 떨어지는 걸 발견했고 의사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급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지방에는 소아에게 인공심장박동기를 이식해 본 경험이 있는 의사가 없었다. 그러다 아빠의 숙모 분이 대학병원의 간호부장이어서 도움을 받아 서울로 가게 되었다.

지방 쪽에서 소아 심박동기를 이식할 수 있는 사람이 없던 이유는 성인과 아이의 삽입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성인일 경우(오른손잡이 기준) 왼쪽 쇄골뼈 밑에 이식을 하는데, 7살인 나는 혈관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흉부를 열어 왼쪽 가슴 및 복부에 심박동기를 이식하고 선을 심장과 연결하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

쉽게 이미지로 설명하면, 이런 형태로 박동기가 삽입된다.

성인과 달리 소아에서는 체중이 적으며, 복잡한 선천성 심장병에 동반된 서맥의 경우가 많아 정맥을 통해서 전극선을 위치시키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 심외막에 전극선을 심는 방법을 택하고, 이 경우 인공 심박동기는 수술을 통해 심는다. 심박동기의 전기 자극은 매우 작아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전기자극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 출처: 삼성서울병원 소아 및 심장병센터




11년이 지난 지금, 7살 때 겪은 일 중에서 6가지는 정말 생생하게 기억난다.


첫 번째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나의 눈엔 눈물이 고였고, 두려운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나 생각보다 씩씩한 모습을 보여서 부모님은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고 한다. 수면제 비슷한 물약을 먹고 잠에 딱 들려고 했는데 어떤 남자분이 나를 안고 들어서 수술실에 들어가던 장면이 기억난다.


두 번째는 수술하고 나와서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다.

입에 어떤 걸 물고 있었고 (아마 기도삽관을 해서 연결해 둔 호흡기가 아닐까 싶다) 팔은 사용할 수 없도록 묶어두었다. 움직이거나 수술 부위를 건드려서 감염되거나 염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곳에서 2~3일 정도 있었는데 첫날엔 물을 못 마셔서 거즈에 물을 묻혀서 간호사분께서 입에 물려주신 기억이 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TV에선 코코몽이 나오고 있었다. 중환자실 특성상 엄마랑 아빠와는 정해진 시간에 짧게만 볼 수 있었는데, 간호사 선생님께서 나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조금은 덜 외롭고 덜 아프게 수술 이후의 시간을 보냈다.


세 번째는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에 있었을 때다.

수술부위를 드레싱 하는데 내가 엄청나게 발버둥을 친 것이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담당 교수님이었을 거다. 그분이 나에게 드레싱을 해주셨는데 엄청나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서 아빠에게 물어보니 내가 아빠에게 "가슴이 타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술 후, 통증을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꽤나 어려울 거다.


네 번째는 경초라는 친구와 시크릿 쥬쥬를 본 것이다.

(그 시절 우리의 티니핑...ㅋㅋㅋㅋㅋ)

경초는 나와 동갑이었고 신장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그 친구는 이번에 하는 수술이 마지막이었고 나는 첫 번째로 하는 수술이었다. 경초는 어릴 때부터 수술을 많이 했었고 무척 철이 든 친구였다. 사교성도 좋았고 아픈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밝은 친구였다. 나랑 병원 베프가 되어 함께 병원의자에 폰을 두고 시크릿 쥬쥬를 보며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 한두 살 어린 동생이랑도 함께 셋이서 놀았다고 하는데, 그 동생의 이름과 얼굴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ㅜㅜ)

이건 경초가 알려준 백조 그리는 방법이었다. 생애 첫 백조를 그려본 순간이다. (귀엽다ㅋㅋㅋ)

글을 쓰다 보니 경초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ㅎㅎ


다섯 번째는 얼음공주이다.

나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보호자 분들께 얼음공주라고 불렸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다.ㅋㅋ 나는 7살 때 정말 내성적이고 겁 많은 쫄보(?)였다. 그래서 나는 퇴원 후 미술심리치료도 다녔을 정도로 모르는 타인과의 대화는 일절 하지 않았다. 얼마나 내성적이었냐면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돌 때 "밥 먹었어?" 나 간단한 일상적인 질문을 할 때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엄마는 의사표현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서 (특히나 통증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아서)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뭐 저 정도는 낯설어서 그럴 수 있지만 진찰을 할 때 아프냐고 물어봤을 때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경초랑 있을 때는 굉장히 밝았고 엄마나 아빠 앞에선 애교 많은 귀염둥이였다. 그냥 얼음공주가 아니라 선택적(?) 얼음공주였지만, 그때의 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여섯 번째는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원래 심장박동기를 이식하면 2주일 정도면 퇴원할 수 있지만 나는 수술부위에 염증이 생겨서 수액 맞고 약 먹으며 총 3~4주 정도 병원에 있었다. 그 후 퇴원하고 외래를 갔는데 이것저것 말씀하시다가 내 수술부위를 보시곤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이건 어른도 못 참고 우는 주사라며 진짜 아플 거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간호사분들께서 아예 못 움직이게 내 몸을 잡으셨고 수술한 부위에 주삿바늘을 찌르고 약을 넣는데 '와...' 그때의 통증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근데 나는 얼음공주라는 별명답게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그걸 참아냈다.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건 정말 고생이다... 그때의 나는 꽤나 대단했던 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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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술을 경험한 뒤에, 다시 유치원도 다니고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이 “하경아, 보고 싶었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초등학교도 입학을 잘했고, 약 3개월 간격으로 박동기 점검도 받았다. 그 이후엔 박동기 덕분에 심장박동이 정상화되어서 1년 간격으로 병원을 다녔다.




그 후, 5년 뒤.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13살, 나는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평소처럼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박동기 검사해 주시는 선생님의 표정이 안 좋았고

약 20분 뒤, 주치의 선생님께서

이건 수술해야 돼!!

라는 폭. 탄. 선. 언을 하셨다.

키가 크면서 심장과 심박동기가 연결되어 있던 선이 늘어나게 되어 불안정한 상태였기에 재삽입술을 해야 했고, 난 다시 위급한 환자가 되었다.

'아~~ 근데ㅠㅠ 제가 방학숙제가 밀려서요~~"라는

말도 안 되는 짱구를 굴리며 상황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건 병동에서 해도 돼~~~"였다...

(사실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ㅠㅠ)

다다음날 오전, 새로운 인공심장박동기를 몸에 넣게 됐다.

몸이 성장해서 이번엔 좌측 쇄골 안에 삽입을 했다. (성인과 동일한 방법의 시술이다.)

이떈 나름 한 번 해봤다고 셀카 찍을 여유도 있었나보다ㅋㅋㅋ

이 시술은 2시간 만에 끝나기 때문에 수면마취로 진행되었다.

의식이 반쯤 깬 채로 엑스레이를 찍고 온몸에 연결된 기계를 주렁주렁 달고 누워서 병실로 이동했다.

제대로 정신을 차려보니 내 왼쪽 쇄골에 모래주머니가 놓여있었다. (심장박동기 수술 후에 모래주머니가 놓여 있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수술 부위의 출혈을 방지할 수 있다. 심장박동기 수술은 대개 가슴에 작은 절개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술 후 초기 몇 시간 동안은 압박을 가하거나, 부종을 줄이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놓는다.)


그렇게 내 몸엔 인공 심장 박동기 2개가 생겼다.

(첫 수술했던 박동기를 빼면 큰 수술이 됐기에 일단 전원을 꺼두고 그대로 두는 방법을 택했다. 몸에 이물질이 생긴 셈이다. 난 언젠가 이 녀석을 빼기 위해 또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 24. 11. 18에 수술한다. 10일을 기준으로 입원까지 5일이 남았는데, 전신마취 수술이라서 더 떨리기도 하고, 11년 만에 첫 번째 박동기와의 작별이라니. 조금은 후련한 기분도 든다.)


(이 당시엔 SNOW으로 사진 찍는 게 유행이었다..)

+ 교수님께서 회진 돌면서 물어봤던 말이

"방학 숙제는 많이 했어~??"였다ㅋㅋㅋ

"ㅎㅎ.. 아직요..ㅎㅎㅎ"라는 말을 남기며, 내가 졌다는(?) 씁쓸한 감정과 함께 나름 행복한 병동 생활을 한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였을까? 심장내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앞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건 차차 풀어보도록 하겠다. 이렇게 나는 두 차례 수술을 받았고, 진단을 받은 뒤 삶이 많이 변했다. 그리고 몇 년 뒤, 나의 주치의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실제 인물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낭만닥터 김사부


P.S. 글은 토, 일 연재.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그리고 과거의 일이다 보니 편의를 위해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기 전(23. 6. 28 이전)인 나이로 7살, 13살, 현재는 18살(고2, 07년생)로 글을 써 내려갈 예정입니다.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늘 하루도 안온하시길 바랍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정말 기뻤는데, 조금은 긴장되고 고심한 채로 올린 프롤로그 글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앞으로 글을 쓸 제게 큰 힘이 됐어요. 선물 같은 하루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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