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동네에서 부잣집이 있었다.
그 집은 나와 같은 동창인 친구의 집이었다.
의리의리한 기와집이고 빙 둘러 벽돌담이 있었고 집안에 우물이 있었다.
밥을 해주는 도우미(식모)가 있었고 돼지 막사도 많았다.
곳간을 보관하는 창고도 집채만 하게 큰 부잣집이었다.
논도 많았고 밭도 그 부근의 밭은 거의 그 집 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친구 아버지는 이북에서 피난을 왔는데 무척 부지런하고 지독한 구두쇠였다.
대부분의 집들이 보릿고개에 쌀을 아끼느라 보리쌀밥을 먹었는데
그 집은 일 년 내내 흰쌀밥만 먹었다.
또 쌀을 쪄서 물감을 들여 먹는 쌀강정(옥고시)도 만들어 만들어 먹었다.
보통 집이라면 보리밥을 먹을 때이니 꿈같은 이야기였다.
친구 엄마가 내게 칭찬을 잘해줬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 집에 자주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먹었다.
뒤꼍에는 굵직한 포도나무가 있었는데 매년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다.
여로라는 드라마가 나올 때였는데 그 집에는 흑백 티브이가 있었다.
성처럼 큰. 그 집 모퉁이를 돌 때면 친구네 소유의 밭으로 빙 둘러싸였다.
그곳에는 가지밭이 있었는데 농사도 잘 돼 가지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밤이면 동네에서 아이들과 숨바꼭질할 때 자주 숨던 곳이 가지밭이었다.
우리 집 울안에 대추나무 아래 심은 가지가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친구네 밭에 있는 가지가 어스름 달빛에 반짝반짝 윤이 났는데 얄미웠다.
우리 집 가지는 예쁜데 친구네 밭에 심은 가지가 죄도 없는데 왜 미웠을까?
친정아버지가 양돈 사업을 시작할 때 친구 아버지에게 장려 쌀빚을 얻어 돈사를 지었다.
68년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어린 돼지를 키워 모돈으로 키워내고 새끼를 내서
모든을 늘려나가기도 하고 새끼들을 팔아서 사료를 사기도 했다.
그 무렵 미국산 흰 돼지가 토종 꺼먹돼지 시장에 들어왔다.
흰 돼지는 잘 자라고 무게가 나가서 양돈업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토종 꺼먹돼지는 키가 작고 잘 자라지 않은 편이라 흰 돼지와 비교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시대 흐름에 따라 꺼먹돼지를 흰 돼지 수컷과 교미시켜 종자를 개량해 갔다.
그런데 미국에서 수입하던 돼지 사료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사료값 파동은 그때뿐이 아니지만.. 그 당시 아버지에게 큰 타격이었다.
모돈이 새끼를 많이 낳아도 가격이 하락해서 비싼 사료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흰 돼지 수컷과 꺼먹돼지 사이에서 흰 돼지인데 어깨에 검정 띠를 두른 종이 탄생했다.
모돈이 새끼를 낳으면 흰 돼지와 검정되지, 어깨에 까만 띠를 두른 흰 돼지도 낳았다.
그러나 돼지값은 하락해서 천정부지로 오른 사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를 갚기도 버거웠다.
아버지가 빌린 돈은 장려쌀 빛이라 이자가 이자를 낳고 새끼 이자가 새끼를 쳤다.
그야말로 잠만 자고 일어나면 문어발처럼 이자가 이자를 낳고 그 새끼 이자가 또 새끼를
쳤으니 아버지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다고 하더니 흉년이 3년 내리 들어 아버지는 기사회생할 퇴로가 사라졌다.
요즘 같으면 개인 회생이나 파산을 하면 되는데 그땐 그런 제도가 없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친구 아버지에게 저녁을 먹고 우리 집으로 와서 돈을 달라고
보채고 다구 쳤다. 아버지는 꿀 먹은 강아지처럼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친구 아버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어린 내 눈에 무척이나 보기 싫었다.
우리 아버지를 죄인 잡듯 하는 친구 아버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그래서 그 앙갚음으로 그 집 밭에 있는 가지도 미운 거였다.
달빛을 받아 반질반질 윤이 나는 가지가 바람 그네를 타고 있으면 얄미웠다.
남의 것을 훔쳐 먹지 않는 성격이고 엄한 가르침을 배우고 자랐지만 가지 밭주인이
미우니 그 집 밭에 달린 가지도 미울 수밖에.
미운 가지를 집에 들어가는 길에 하나 따서 옷에 쓱쓱 닦아 가시 돋친 꼭지를 따고 먹었다.
친구네 밭에 있는 가지를 따먹고 나면 속이 시원했다. 그건 소리 없는 나의 항변이었다.
씨가 생기지 않는 작은 것을 주로 따 먹었는데 훔쳐먹는 가지가 맛은 있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친구 엄마는 친구 아버지와 건너 마을에 사는 혼자된
여자친구 엄마와 친하게 지낸다며, 어린 나에게 건너 마을 친구 집에 가서 친구엄마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보고 오라는 심부름을 툭하면 시켰다.
그거야말로 프락치가 아닌가? 정말로 가기 싫은 심부름이었다.
공연히 건너 마을 친하게 지내는 먼 친척 할머니 벌 친구에게 죄를 짓는 거 같았다.
친구 엄마와 아빠가 미우면 달밤에 일부러 나가 그 집 가지를 따 먹었다.
우리 집에도 가지가 있지만 친구네 가지를 따 먹으면 복잡하던 속이 후련했다.
친정엄마는 가지를 가마솥에 밥을 지을 때, 뜸을 들이기 전에 밥 위에 쪄서
수분을 짜내고 양념간장을 만들어 가지를 무쳤다. 참기름이 귀할 때라 들어가지 않았다.
농사지어 지은 들기름도 아끼느라 조금 넣고 국간장으로 무쳤는데 맛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가지나물이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지를 찜통에 쪄서 양념장을 넣고 무쳐도 맛있는데 찜통에 찌면 수분이 많아
부드럽긴 하지만 냉장고에 넣어도 잘 상한다.
식구가 적은 우리 집은 냉장고에 며칠을 두고 먹을 수 없다.
가지는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하니 자주 먹으려고 한다.
가지를 어떻게 해야 맛있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지 여러 방법으로 연구해 보았다.
그래서 간편하게 가지를 가로 세로로 잘라 비닐랩으로 씌워 전자레인지에 2분 쪄서
수분을 날리고 양념소스를 넣고 볶아 먹는데 그 방법이 우리 집 환경과 잘 맞았다.
<< 가지볶음 재료 >>
가지 3개, 들기름 2스푼, 참기름 1스푼, 진간장 3스푼, 참치액젓 1스푼
설탕 1/2 티스푼, 당근 조금, 대파 조금, 다진 마늘 1/2스푼, 참깨 2스푼
** 가지볶음 하는 순서 **
가지를 길게 4등분 또는 6등분으로 길게 쪼갠다
1. 가지의 꼭지를 제거하고 겉 표면을 세제로 잘 닦아낸다.
2. 가지를 가로로 반으로 길게 잘라 6 등분하고 세로로 4등분 한다.
3. 절단한 가지를 비닐랩에 싸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끝은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접어주고 넓게 펼친 후 2분 돌려 수분을 날려준다.
4. 진간장 3스푼, 참치액젓 1스푼, 들기름 2스푼, 다진 마늘 1/2스푼,
설탕 1/2 티스푼을 혼합. 소스를 만들어 찐 가지에 골고루 섞어준다.
5. 당근채를 썰어 넣고 가스불에 올려 4~5분 웍질을 하거나 볶아준다.
마지막 참깨를 뿌려 접시에 담아낸다.
6. 굴소스를 넣으려면 간장을 한 스푼만 넣고 굴소스 한 스푼 넣어주면 된다.
냉장고에 2~3일 보관하여 먹어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