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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범사랑북극곰 Jul 25. 2023

2번째 5일간

6일째부터 10일째까지

6일째사춘기


퍽이나 보기 좋게 시험이 망했다! 예상을 안 한건 아니라서 딱히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래서 맘 편히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크로플을 만든다고 두고 보라고 해서 두고 봤다. 

와플기계에 작은 냉동 크루아상을 넣고 구운 후 기계를 열었는데!!! 

까맣게 초콜릿처럼 탄 크로플의 모습을 보고 엄마는 마치 ‘원피스의 루피’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크게 놀랐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에 더 놀랐고, 엄마와 나는 서로 마주보고 한참을 웃었다. 

이 일을 아빠랑 오빠한테도 얘기해줘야지. 분명 기분 좋게 웃어줄 것이다. 





6일째갱년기


막내가 말해준 자기 엄마의 일화 때문에 하루 중 처음으로 웃었다. 

이 녀석이 말을 재미있게 하는 것인지 내가 웃고 싶은 것인지는 몰라도 막내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게다가 내 아내이자 자기 엄마와 함께 했을 행동과 말이 연상이 되어 더 웃겼다. 

그래 이게 삶의 낙이지. 뭐 특별할 것이 있겠어?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 

세상에 왔다가 가는 흔적이 크게 남지 않을 사람이라면 이렇게 소소하게 즐기고 행복감을 느끼다 평범하게 가는 것도 그리 나쁜 인생은 아닐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놈은 시험을 완전히 쫄망했다고 말하던데 진짜 망했나? 설마 0점은 아니겠지? 

아니 내가 너무 헐렁헐렁하게 대해주나? 어떻게 시험 망쳤다는 말을 저렇게 여유롭게 쉽게 하지? 하하! 

하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나도 그냥 대충 넘기고 말았는데... 

아이 인생을 위해 공부에 대해서는 엄격한 아빠가 되어야할까? 그런데 공부가 너무 싫다고 자기는 못하겠다고 하는 애를 욕하고 때려서까지 책상에 앉혀놓은 들 과연 공부를 할까? 옛 성현의 말대로 소를 물가로 끌고 갈수는 있지만 먹는 것은 소 마음인데... 

주위 사람들은 내 사고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강제로 시키는 공부는 아닌 것 같다. 

공부할 놈 같으면 언제라도 하지 않을까? 그럼 대학은 어떻게 하지? 참 어려운 문제다.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는... 

잘 모르겠다. 에잉~ 흘러가다보면 뭔가 답이 나오겠지! 무책임한 아빠인가보다! 하하하하하    




7일째사춘기


와! 오늘은 진짜 너무너무 졸렸다. 

힘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미칠 듯이 졸려서 학교에서 시험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번개처럼 돌아와서 죽는 것처럼 자버렸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는데 아직도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부스스 일어나 얼굴을 조금 더 꼼꼼하게 씻었다. 로션을 바르고 있을 때 엄마가 문 여는 소리가 들려 비몽사몽 엄마를 맞이했고, 그렇게 엄마랑 또 떠들다가 엄마가 갑자기 자야겠다고 해서 같이 침대에 누워 조잘조잘 떠들다가 둘 다 잠들었다. 

1시쯤 자서 5시에 깼는데 뭔가 짧은 듯 길게 꿈을 꿨다. 꿈에서 내가 온갖 식물을 키우고 있었다. 

조금 더워보였지만 무척이나 행복해보였는데 꿈인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포근하고 좋았다. 

이렇게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는데 오빠가 날 깨우는 바람에... 

그래서 대신 오빠를 좀 씹었다. 잘근잘근~ 

오빠를 한참 괴롭히고 일어나서 밀렸던 국어 문제를 전부 풀었다. 시험을 잘 볼지 못 볼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계획한 것을 다 한 것이 중요하지. 

공부하는 것보다 운동장 1000바퀴 도는 것이 덜 힘들 것 같다. 공부는 힘들다고 늘 생각한다. 

뭐~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미친 듯이 한 것은 아니니까... 무의미한 소리다.      




7일째갱년기


공부도 더럽게 안 해놓고! 그래도 시험이랍시고 비몽사몽하는 막둥이 모습이 안쓰럽다. 

그래~ 아빠가 널 가엽게 생각하지 않으면 누가 널 그렇게 생각해주겠니? 파이팅이다! 


요사이 나라가 참 엉망진창이다. 

서민들은 살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국가를 잘 이끌어가야 할 사람들은 서로 잘났다고 상대방을 비방하고 공격하기 바쁘다. 뉴스나 인터넷 댓글을 보면 자기들만 옳다고 상대는 인정하지 않고 헐뜯기 일쑤던데 솔직히 냉정하게 보면 그놈이 그놈이다. 누구 하나 마음에 드는 놈들이 없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해도 기능은 오히려 강화될 것이라고 모순되게 역설하는 정부나 대안도 되지 못하면서 일말의 협조 없이 비난만 일삼는 야당이나 어차피 국민들에게 도움 되지 않는 것은 매일반이다.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도 이런 빌어먹을 인간들과 함께 살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암담하다. 

제발 정신들 차리고 정말 국민들을 위한 위정자들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물론 이룰 수 없는 꿈이겠지? ㅠㅠ 

왜 경제나 교육 수준은 높은데...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은 이따위 일까? 

나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8일째사춘기


국어학원에 갔다. 국어학원에서 친구가 옆에 앉는 바람에 서로 장난치다가도 금방 집중해 필기하는 내 모습에 좀 뿌듯했다. 학원에 올 때는 엄마가 데려다 줬는데 엄마는 거실 정리로 바빠서 곧 혼자 집에 돌아가셨다. 

학원이 끝나고 어째 심심한 느낌이 들어 혼자 걸어서 집까지 갔다. 4.55km를 걸었는데 아빠가 늘 운동 다니던 길이라고 하면서 꽤 힘들었을 텐데 대단하다며 칭찬해주었다. 

역시 난 운동체질(하고 칭찬받는)체질인거 같다. 오늘도 즐거움 하나 추가!^^     




8일째갱년기


막내가 시험을 보고 학원을 갔다가 집까지 제법 긴 거리를 심심하다고 그냥 걸어왔다는데 그 코스는 내가 몇 년째 운동 삼아 만보걷기를 취미로 하고 있어 잘 알지만 아무리 젊은 애들이라도 후딱 걸어올 길은 아니다. 

확실히 막내는 아내를 닮아 운동 체질인가보다. 대단하다. 


막내가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아 괴롭히거나 괴롭힘을 당할 수 없어 심심했었는데 그 빈자리를 아내가 채워줬다. 갑자기 아침부터 집안 전부를 들어내는 대대적인 정리를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자율적으로(?)전기 배선과 정리, 구조물 해체와 조립, 대형폐기물 배출까지 내가 다 했다. ㅠㅠ 

다 하고 나니 완전히 다른 집처럼 변신해서 뿌듯하다. 

물론 죽도록 몇 시간을 고생했음에도 저녁에 고기반찬은 나오지 않았다. 고기는 안했느냐고 투덜거렸더니 혈당 수치도 높은 사람이 무슨 고기 타령이냐며 오히려 잔뜩 핀잔만 먹었다.


잠자기 전에 유튜브의 인공지능이 왜 인지는 모르지만 일명 ‘먹방’을 메인 화면에 띄워져서 잠깐 봤는데, 대체 자기가 음식 먹는 것을 왜 올리는 거며, 그걸 왜 보면서 좋아하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많이 먹는다고 자랑하는 건가? 게걸스럽고 더럽기만 하던데... 

물론 내가 꼰대라 그런 거겠지? 캬캬!     



                        

9일째사춘기


오늘은 엄마 아빠와 함께! 시험 아직 안 끝났는데 마치 시험 끝난 것처럼! 같이 안마의자를 보러갔다. 

비가 살살 뿌리는 날에 어째 몸은 가벼워 즐거이 따라나섰다. 당연히 내가 안마의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ㅋ 

이런저런 모델들을 구경하다보니 구석에 있는 하늘색 안마의자가 SF영화에서 냉동인간이 실려 있을 법한 비주얼이 썩 맘에 들었다. 그래서 그걸 테스트 삼아 체험해보았는데... 

테스트용 안마의자가 창가 쪽에 있어 큰 길이 있는 바깥에서 내가... 안마를 받고 있는 내 모습이 다 보여 수치사할 뻔했다.�ㅋㅋㅋ 그래도 엄마와 아빠랑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값지고 너무 신났다. 

사실 더 좋았던 것은 공부 안하고 밖에 나와 있었다는 거...   



  

9일째갱년기


미루고 미루던 안마의자를 하나 구입하려고 아내와 시험공부에 지친(?) 막내를 이끌고 매장을 찾았다. 

유명 브랜드 2곳의 오프매장을 찾아서 막둥이를 실험대상으로 모델 몇 개를 테스트 해봤다. 

애초에 안마의자를 사려고 한 목적이 자기 이모집에 가면 하루 종일 안마의자에만 앉아있을 만큼 막내가 좋아해서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매장을 나와 집으로 오면서 평소에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는 막내가 자기가 직접 이용해본 안마의자에 대한 평을 쫙 풀어놓는데 내용을 참조해서 잠정적으로 모델을 하나 선택하였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뭐 가족들이 좋다면 그 정도 금액은 기꺼이 쓸 수 있다. 


구매를 마음먹고, 집에 돌아와 선택한 모델을 인터넷 서핑으로 평을 찾아보다가 아파트에서 안마의자를 쓸 경우, 자칫 층간소음으로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시 글을 보았다. 그래서 보다 정밀하게 찾아보니 의외로 안마의자 층간소음으로 일어난 분쟁과 관련된 사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민이 된다. 괜히 몇 백만 원짜리 옷걸이를 살까봐 말이다. 신중히 판단해봐야겠다. 

나 좋자고 남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리고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까지 벌어지는 세상이다. 

괜한 일 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10일째사춘기


내일은 과학 시험을 본다. 

아빠는 저번보다 시험점수가 떨어지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만, 사실 이미 바닥을 치는 처지라 더 이상 떨어질 점수가 남아 있지 않다. ㅋ 오히려 맨 밑바닥이기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다!(?) 난 그렇게 믿는다. 아무도 뭐라고 못한다. 그래도 오빠가 찍어준 것들이 나오면 꼭 다 맞춰야지, 아니면 오빠가 날 지구 밖으로 날릴지도 모른다. 최근 오빠가 잔소리가 심하다. 역시 어른이 되면 다 같아지는 것인가? 엄마도 안하는 공부 잔소리를 오빠한테 들으니 세삼 오빠가 나이든 게 느껴진다. 

어쩐지 세상 제일 철부지 같던 나와 합이 잘 맞던 유일한 사람이 철부지 세상을 떠난 거 같아 좀 울적하다.  

   



10일째갱년기


오늘도 어이 상실 ㅋㅋ 

막내가 내일 과학 과목 시험을 본다고 하기에 1점이라도 좋으니 저번 시험보다 올라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아빠~ 난 지금 맨 밑바닥이라 더 떨어질 점수가 없어”라고 자신 있게 댓거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너 잘났다! 어쩜 이리 공부하기를 싫어할까? 차라리 머리가 나쁘면 안타깝지 라도 않을 텐데... 

이런 말을 하면 분명히 “원래 모든 공부 못하는 부모들이 자식들을 평할 때,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라는 말을 하며 나를 팔불출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들처럼 자식에게 냉정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다. 막내가 지금까지 받아온 점수를 보면 지가 싫다고 아예 책도 안 봤다고 밝힌 수학이나 사회, 역사 같은 과목만 점수가 형편없을 뿐 국어나 영어 같은 과목은 90점을 넘게 받아왔다. 즉, 지가 맘 잡고 공부를 한 과목은 상위권 점수를 받는 것이다. 

대학 강단에 14년 동안 섰던 내 경험 상 요령을 피워 D를 받을 수준이 C는 받을 수 있지만 A는 절대 받지 못한다. 내가 막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본 역량은 되는데 자기가 거부해서 안하는 것이기 때문에 때가 되고 필요하다면 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뭐 설령 내 믿음이 틀렸더라도 어쩔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본인이 안하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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