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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범사랑북극곰 Jul 25. 2023

4번째 5일간

16일째부터 20일째까지

16일째사춘기


오늘은 나의 오랜 소꿉친구를 만났다.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이... 예전에 머리를 치렁치렁 길게 길렀던 녀석이 맞나 싶어 낯설었지만 예전과 같은 성격에 그저 웃고 넘겼다 ㅋㅋ 

이 친구의 생일이 나의 시험기간이라 선물을 챙겨주지 못해서 뒤늦게 밥이라도 사주려고 만났기 때문에 밥을 사주는 목적부터 달성했다. 그리곤 같이 코노도 가고, ‘인생네컷’도 찍으면서 그 많은 추억 중에 또 다른 새로운 추억을 차곡차곡 쌓은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오빠와의 마지막 휴식시간을 보냈다. 오빠와 함께 예전부터 함께 좋아해왔던 영화를 보며 재밌고 소소한 일상의 시간을 즐겼다. 오빠의 노력하는 모습과 성장해가는 모습이 늘 존경스럽고 멋지지만, 어째 마음이 안쓰럽고, 씁쓸한 건 아마 우리 가족 전체가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다.     




16일째갱년기


오늘까지는 꼭 오빠랑 놀게 해달라고 막내가 협박 같은 애원을 해대서 그러라고 승낙했다. 

뭔 일인지 자기 옛날 친구 만난 이야기를 하더니 예전이랑 좀 달라져서 처음에 낯설었다는 딸내미의 말에 시간이라는 것이 앞으로 너희를 더 많이 다르게 변화시키고 어쩌면 서로 인연이 끊어지는 결과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서로의 인연 유효기간이 끝난 것일 뿐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응~ 아빠 이미 다 알아! 떠날 사람은 떠나는 거지 뭐~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아”라고 내 말이 아주 시답잖다는 듯 대꾸하였다. 하하

가끔 이 녀석이 얼마나 말빨이 센지 까먹을 때가 있다. 5살 때였나? 내게 걸려온 광고 전화를 옆에서 듣더니 누구냐고 물어 보기에 이런저런 설명하기 귀찮아서 “응! 그냥 친구야”라는 내 말에 “여자가 왜 아빠 친구야? 엄마가 있는데 왜 여자가 아빠 친구가 돼?”라고 되물었지. 헐~ 아내에게도 안 들어봤던 바가지를 5살짜리 딸내미에게 들었었지. 

그때 깨달았다. 얘한테는 말조심해야겠다고... 

허허! 방금 일기를 덮고 자려고 했는데 내일까지 보내줘야 할 평가서의 내용이 먹통이 되어 있는 다음 메일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젠장... 



             

17일째사춘기


오늘은 수련회를 왔다. 

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경험하는 수련회라 설렜지만 마냥 설렐 수만은 없었다.(코로나! 코로나!) 

내가 버스를 비롯해 자동차를 타면 언제부터인가 심하게 멀미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다행히도 미리 먹은 멀미약이 효과가 좋아 멀미를 하진 않았지만 너무 졸려서 하마터면 휴게실에서 화장실을 못 갈 뻔했다. ㅋㅋ

그렇게 수련회 장소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기쁜 마음보다 고생길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애써 무시하고 즐기기로 맘먹었는데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도착 후 바쁘게 실시한 여러 활동 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외줄 타기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겐 너무나도 무거운 극형 같은 느낌이었다. 안전 줄이 매달려 있었지만 그 줄조차 내가 옮기면서 이동해야하는... 

정말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하늘을 찔렀다.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다리가 후덜덜 떨렸고, 밑에서 바라보는 친구가 걱정하는 모습이 너무 선히 보여, 그저 ‘난 하늘에 떠있다’라고 생각하며 빠르게 지나가려고 노력했다. 


지옥의 활동이 끝나고, 고기 파티를 했는데 여자애들 6명이서 고기 3판을 먹었다.(한판에 5-6인분으로 추정된다.) ㅎ 또 레크레이션도 했는데 덕분에 목이 쉬어서 한동안 말을 못 할 정도였다. 

그렇게 즐겁게 즐기고 방애들과 함께 수련회 숙소에서 새벽 내내 여러 게임들을 하면서 추억을 쌓다가 다들 늦은 새벽에 잠에 들기 직전이다. 

쬐끔 피곤하다. 나도 그만 자야겠다.




17일째갱년기


막내가 오늘 학교에서 수련회를 갔다. 나는 오늘 아침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니 이것들이 나한테는 왜 이런 중차대한 일을 미리 말해주지를 않는 거야? 에잉! 

발발거리고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는 그 녀석이 없으면 이상하게 집이 휑하니 허전하단 말이다. 

심심하기도 하고! 미리 알려줘야 대체재를 찾을 것 아니야! 내일까지 어떻게 버티지?


MLB 포스트시즌에서 내가 응원하는 LA 다저스가 슈퍼 스쿼드를 갖고도 디비전 시리즈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더 이상 올해 야구를 볼 일이 없어졌다. 역시 집단의 유형과 무관하게 리더가 무능력하고 전략이 개떡 같으면 결과는 똥과 같을 수밖에 없다. 

너무나 흔한 교훈인데 의외로 잘 깨달아지지 않는 교훈이기도 하다.   



                                               

18일째사춘기


한 시간 밖에 못 자고 기상했다. 너무 졸리다. 

어제 밤 광란의 노가리 덕분이다. 아침에 수련회 장소를 둘러쌓고 있는 산은 어제만큼 예뻤지만 쏟아지는 잠에 그리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아침밥을 먹기 위해 모였던 강당에서 그냥 쭈그린 자세 그대로 잠에 들어버렸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기절하듯 잠들었지만 휴게소에서는 귀신같이 일어나 회오리감자와 구슬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무사히 집에 귀가해서도 나를 반겨주는 엄빠와 오빠의 호들갑을 뒤로 하고 계속해서 쿨쿨 잘 생각으로 잽싸게 씻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고 있다. 잔다.     




18일째갱년기


하루 만에 집이 사람 사는 집이 되었다. 

딱 하루 집에 없었는데 아내도, 아들도, 나도 마치 이산가족처럼 막내를 반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막내는 도도한 자태를 유지하며 욕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는 바로 침대행~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이나 들어야겠다.


카카오톡을 비롯한 다음 서비스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웃긴 것은 자기들 돈 되는 것은 잽싸게 먼저 복귀시켜놓고 이메일과 같은 돈 안 되는 일은 벌써 며칠째 먹통인 상태라는 것이다. 물론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메일이 열리지 않아 적지 않게 불편함을 느끼는데 정부에서는 핵무장과 관련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군 정보기관 소속으로 대통령 경호를 하며 군복무를 했던 나로서는 핵무장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핵발전소를 몇 개나 운영하는 우리나라가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핵무기 개발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핵무장을 하게 되면 NPT를 탈퇴해야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제재를 받을 텐데 수출입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까? 1주일만 되면 우리 식량 떨어지고 에너지 원료 다 떨어질 텐데... 

비현실적인 꿈일 수밖에 없다. 참 어렵다. 어려워~      

 


            

19일째사춘기


오늘 일기는 아침에 쓴다. 

어제 너무 일찍 자서 너무 일찍 일어났다. 온몸이 뻐근한 것이 오늘 제대로 움직이기는 그른 것 같다. 

아직도 팔에 근육이 잔뜩 뭉쳐있다. 오늘은 어차피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라 하루 종일 뒹굴 거리다 오후에 모교 방문이나 가려고 한다. 선생님께 학교 홍보 플랫폼을 나눠 드려야 한다. 그런 후에 난 다시 집에서 잘 거다. 이게 모두다 수련회 때문이다.     




19일째갱년기


에구~ 수련회인지 뭔지 하루 갔다 왔다고 애가 녹초가 되어서 흐리멍덩하네. 

운동신경도 있고 체력이 그렇게 약한 것 같지 않은데 희한하게 어디만 갔다 오면 애가 맥을 못 춘다. 

보약이라도 먹어야겠다고 설레발 쳤더니 아내가 눈치를 준다. 

아~ 내가 왜 이리 고양이 앞에 쥐가 되었나? 


쩝... 우울한 마음에 배달앱을 이용해 고등어회와 갈치회를 배달시켰다. 

혼자 맛있게 먹을 심산에 음흉한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배달이 도착하자마자 “와~ 이게 뭐야? 뭐 이런 걸 다 시켰데?”라며 아내가 인터셉트! 

나의 회를 아이들과 홀랑 다 먹어버렸다. ㅠㅠ 

애초에 몰래 나 혼자 먹겠다는 생각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짓이었지... 

어쩌랴 사랑하는 가족들이 맛있게 먹은 것을 ㅠㅠ




20일째사춘기


학교에서 연극을 봤는데, 자꾸 ‘나방, 나방’ 거려서 나도 모르게 사오정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지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재미있게 본 뒤 반 별로 배우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주연배우와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얼굴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고 작은 얼굴 크기와 예쁜 이목구비에 많이 놀랐다. 역시 배우는 배우인가보다. 

나중에 사진이 나왔을 때 내 얼굴에 놀라움이 담겨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표정은 꼴불견이지 않을까?     




20일째갱년기


먼 남도 지방으로 KTX를 타고 출장을 다녀왔다.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들어와서 애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가을을 제대로 타는지 여름내 그렇게 즐겁게 다니던 출장이 오늘은 지긋지긋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마다 짜증으로 보게 되었다. 용산역 꼭대기에 크게 매달려 있는 일본 완구 풍선도 그렇고, KTX 안에서 연신 기침을 해대는 사람들도 그러했다. 


특히 모 기업 생산 현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말려들어가 비참하고 안타깝게 사망한 노동자의 빈소에 기업 관계자가 자기들 회사 제품을 위문품으로 놓고 갔다는 기사를 보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아무리 사내 규정에 의해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물품이라지만 사안에 따라 가려서 처리해야지. 빵을 생산하다가 숨진 사람을 조문하러 간 자리에서 빵을 주면서 위로를 할 수 있지? 

대체 사람이 할 사고방식인가? 벌레대가리로 할 사고방식인가? 진짜 생각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 정말 개탄스럽다. 정말로 우리 아이들이 정의롭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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