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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범사랑북극곰 Jul 25. 2023

6번째 5일간

26일째부터 30일째까지

26일째사춘기


친구들과 학교에서 정말 생각이 없는 상태로 하루를 지냈다. 늘 그래왔지만 오늘은 유독 더 정신이 없었던 거 같다. 학교 축제 이틀 전 날이라서 다들 좀 들떠 있는 상태인거 같다. 

동아리 시간조차 옥상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런 날 보고 같은 동아리 부원 친구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웃으면서 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해주다보니 종이 울렸고 친구는 곧 나를 떠났다. 

난 오늘따라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는 동아리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밖에서 계속 아무 생각 없이 숨만 쉬면서 오래간만에 여유를 즐겼다.     




26일째갱년기


무척 바빴던 

하루! 가장 먼저 절치부심, 절차탁마하다가 모 기관의 장으로 가게 된 선배님 한 분을 만나 뵈었다. 

넓은 사무실에서 열렬히 나를 반겨주는 선배님의 모습에서 기쁨이 느껴졌다. 선배님께서 입신양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인내해왔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심으로 함께 기뻐했다. 일부러 식사시간을 피해서 찾아뵈었는데 다음에는 꼭 식사시간에 맞춰서 한번 보자고 신신당부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로 복귀해서는 이 달 중으로 마쳐야 했던 8개나 되는 제안서와 보고서 작업을 모두 마쳤다. 

물론 이후로 일 진행에 맞춰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겠지만 어찌되었던 욕심을 부려 조금은 무리라고 생각했던 일을 끝내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시계를 보니 밤10시30분이었다. 

자식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일하는 부모들은 없겠지만 지네들을 위해 아빠가 고생하는구나 하는 생각은 잠깐이라도 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물론 물어볼 수도, 물어볼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하하! 

집에 도착하니 평소처럼 애들은 각자 방에 있다가 잠깐 나와서 마중 인사한 후 번개처럼 자기들 방으로 사라졌다. 

녀석들... 그 작은 방에 뭐 보물을 숨겨놨다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냐? 아빠랑 좀 놀아주지... 에잉~ 

그래도 이렇게라도 함께 있을 때가 좋을 때겠지. 

내가 강의할 때마다 빈둥지증후군 이야기가 나오면 뜨끔하더니 먼 미래의 내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27일째사춘기


드디어 축제가 내일이다. 

다들 내일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서로 들떠서 얘기하였다. 

나는 물론 평범하게 검정 슬렉스 바지와 하얀 티셔츠를 입고 워커를 신고 갈 것이다. 그리고 타투스티커도 할 것이다. ㅋ 

내가 꾸밀 때 좋아하는 타투스티커를 3장 챙겨서 친구들과 함께 나눠 쓰려고 한다. 또 다시 동아리 시간을 가지며 부스 운영을 하는 친구들은 서로 부스를 꾸미고 배치하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냈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ㅎㅎㅎ 

동아리에 속해놓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다 능력이다. ㅋ     




27일째갱년기


큰애를 위해 남영성지에서 미사를 드리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과감하게 오늘 하루 아내에게 봉사하기로 마음먹고 함께 운전을 해서 나들이 겸 화성으로 향했다. 

넓은 공간에 친환경적으로 꾸며진 남영성지는 발을 딛음과 동시에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었다. 한창 단풍이 들고 있는 산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성지 곳곳의 장소는 그야말로 기도하고 사색하기 좋은 곳으로 넘쳐났다. 

함께 같은 마음으로 큰애의 건승을 기도한 뒤, 귀가하던 도중에 남영성지에서 보이던 월**(Wal***t)(?)에 들렀다. “월**가 아직도 한국에 있어? 다 철수하지 않았나?”라는 의문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아내와 나는 동시에 실소를 짓고 말았다. 마트의 이름은 와**(Wa***t), 멀리서 보기에 건물의 규모가 제법 크고, 색깔이나 간판의 디자인이 영낙 없는 월마트였기 때문에 착각했던 것이다. 가볍게 웃고 와마트에서 음료수를 산 뒤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매사 그리 의욕이 넘쳐 보이지 않던 막내가 오늘은 왠지 들떠 보이기에 물었더니 내일이 축제라고 한다. 

아직도 축제라는 것을 하는구나. 나도 고등학교 때 축제로 인해 저렇게 들뜬 적이 있었던가? 

정말 추억이 없는 것인지, 내가 기억도 못할 만큼 세월이 흐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기억을 한참 더듬어봤지만 별 특별한 기억이 없다는 점이다. 

왠지 수많은 추억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분이 든다. 

급 우울한 마음이 들었는데 얼마 전 전문의인 친구에게서 급격한 감정 변화와 조울 증세는 갱년기 남성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벌써 갱년기 운운하는 중년이라니... 참 세월이...         




28일째사춘기


오늘은 학교의 축제날! 

어제부터 들떠있었지만 당장 당일이 되니 너무 들뜨고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신나기만 한 수준으로 감정을 조절하리라. 

어제 생각한대로 검정 통 슬렉스 바지에 위엔 와이셔츠를 입어서 멋쟁이로 변신했다. 

흠~ 내가 봐도 좀 멋졌다. 물론 아빠는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상관없지만 ㅋ 

축제 때 가장 기대했던 것은 바로! 팝콘이다. 

어이없다고? 상관 무! 나만 팝콘이 좋으면 그만! 

사전에 공지하기를 텀블러를 가져오면 거기에 팝콘을 담아준다고 했기 때문에 집에서 두개나 챙겨갔지만 결국 종이봉투에 담긴 팝콘이 내게 주어졌다. 

좀 빈정상했지만 할 거리가 많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었기 때문에 그냥 마음 풀고 축제를 즐겼다. 

어제 계획대로 타투 스티커도 붙였는데 너무 덕지덕지 붙여서 그런지 그리 예뻐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모르겠다. 하여튼 애들끼리 서로 웃고 돌아다니면서 행복하게 보낸 하루였다.  

   



28일째갱년기


아침에 축제를 즐기러 간다는 막내에게 또 퉁 놓는 소리를 했다. 

아니! 여자애가 맨날 톰보이처럼 바지에 와이셔츠만 입고 다니니 원... 

아빠가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명품으로 사줄 테니 성숙한 원피스나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극혐이라면서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동네 양아치들처럼 타투스티커는 왜 붙이는 거야? 대체? 일진 놀이를 하는 건가? 

자기는 예뻐서 붙이는 거라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하여튼 놀러 가는 애한테 계속 퉁퉁거려봤자 서로 기분만 상할 것 같아서 나가기 직전에 스타일이 멋지다고 칭찬해서 보내줬는데 이미 삐진 듯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사라졌다. 

에잉~ 정말 못마땅해서 원... 


SNS에는 불금이라는 둥 마지막 가을을 즐기겠다는 둥 여러 신난 글들이 올라오던데 나는 일찍 들어와서 쉴 수 있음에 기쁨을 느낀다. 

오늘은 일찍 자려고 한다. 불금이란 걸 느껴본 것이 벌써 몇 해는 전인 것 같다. 

나에게 금요일은 ‘잠금’이다. 잠자는 금요일 ㅋ              




29일째사춘기


토요일이라 일기를 일찍 쓰고 놀려고 한다. 

집에 아무도 없다. 후후! 온 식구들이 각자 스케줄 때문에 아침부터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내가 지금부터 뭘 할 건지 아는가? 

난 지금부터…! 뒹굴 거릴 것이다. 

몸도 찌뿌둥하니 딱 누워있기 좋은 날이다. 

혼자 집에 있으면 뒹굴 거릴 때 온 집안을 광범위하게 뒹굴 거릴 수 있어 아주 좋다. 아빠 방 가는 복도부터 데굴데굴 굴러 엄마가 앉아있는 소파까지 굴러갈 수 있다. 그렇게 구르고 구르다보면 오빠 방으로 간다. 내 방을 빼곤 우리 가족들 각자의 방은 다 재밌는 것 같다. 

혼자 냉장고 탐방도 하고 과자는 뭐가 있나 들춰보기도 하고 창문을 열어 우리 집 뒷산 공기도 마셔본다. 

물론 벌레가 들어 올까봐 잽싸게 닫았지만 말이다. ㅎㅎ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집에선 오히려 혼자 할 것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전!혀! 심심하지 않다. ㅎㅎ 


그래도 빨리 와~ 엄마아빠오빠ㅠ...     




29일째갱년기


토요일에 일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은 짜증난다. 

그것도 갑작스럽게 만나자고 청하는 사람은 무례해보이지만 그 사람이 갑이어서 아무 불평도 할 수 없으면 더 화가 난다. 토요일은 쉬자! 좀! 최대한 일을 빠르게 하지만 성실하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막내가 재미있는 것을 알려줘서 혼자 한참을 만지작거리고 놓았다. 

바로 AI를 활용한 그림그리기이다. 

외국의 AI 사이트에 가입한 뒤, 월정액을 결재하면 AI가 내 명령어를 접수해 그림을 그려주는 것인데... 

내 이름만 넣고 그림을 그릴 것을 지시하니~ 와! 마치 전설 속의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몽환적인 그림이 완성되었다. 세상에 하나 뿐인 그림이다. 

역시 나는 참 우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ㅎ 

그런데 AI의 이러한 능력을 보니 한 편으로는 앞으로의 세상이 궁금하기도 두렵기도 하였다. 

지금도 이 정도 능력을 발휘하는 AI가 시간이 흘러 더 고도화되었을 때는 어떠한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지금을 사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가 되면 인간의 생활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형태를 가지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살아있는 동안 터미네이터는 없겠지만...  




30일째사춘기


반지를 샀다. 어디서 샀는지는 안 알랴줄거다! 

여기 반지는 매우 비싼데 그 중에서도 특히 맘에 드는 걸 골랐더니... 

아니?! 웬걸! 반지가 생각보다 싼 편이 아닌가? 

냉큼 질러버렸다 ㅎㅎ 

예쁘기도 예쁘지만 디자인이 특이하다. 

세 개의 반지가 교차되어 하나로 끼는 반지인데 도르륵 굴러다닐 것 같아 호기심에 휩싸여서 구매하였다. 

그래서 통장에 바람이 스칠락 말락 한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사고 싶었던 것을 사게 되어서 기쁘다. 배송이 오면 당장 일기에 자랑해주겠다!     




30일째갱년기


어제 밤사이에 난리가 났다. 역대급 참사가 비극적으로 발생했다.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할로윈 축제를 즐기던 평범한 시민 100여명이 압사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아침에 어머니를 포함해 혹시 이태원에 우리 애들이 놀러가지 않았냐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뉴스마다 대서특필을 하고 온갖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으며, 여러 포털을 비롯해 벌써 여기저기서 누구의 탓이냐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누구 탓하기 이전에 그냥 정신이 멍하고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안타깝고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러면서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일이 없는 것이 기쁘기만 하니 참으로 인간 마음이 간사하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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