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탈리아에 도착하는 순간까지의 기억이 삭제되었다.
이탈리아에는 밤에 도착하였는데, 숙소로 가려면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지하철 역에서 내려 다시 지하철을 타야 했다. 한국애서 다져진 대중교통 실력으로 나름 순조롭게 길을 나섰다.
기차 표도 제대로 끊어 도장까지 찍고 지하철도 제대로 탔다. 기차는 쾌적하고 편안하니 좋았는데, 지하철은 밤이라 그런 건지 만원인 데다가 사람들도 거칠고 시설 관리도 잘 안되어있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지하철에서 내린 후였다. 유럽 여행을 오며 30일짜리 해외 유심을 샀는데, 실제 우리가 유럽에서 지내는 기간은 한 달이 넘었다. 그래서 남편이 먼저 유심을 시작하고 나는 이후에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믿거라 하고 있었으나, 알고 보니 이탈리아 밤에 도착하다 보니 하루가 유심 사용 기간에서 깎이는 게 아까웠던 남편 또한 유심을 끼지 않았던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금방 숙소를 찾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길은 생각보다 어두웠고, 상가는 대부분 닫혀있었으며 안내 표지판도 찾기 힘들었다. 비행 후 피곤에 절어있었는 데다가 낯선 환경이다 보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매다 남편은 결국 초기하고 유심을 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심을 끼지 않은 것에 답답했었지만 이미 고생은 고생대로 한 것이 억울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고 설득했다. 남편은 지은 죄(?)가 있으니 결국 나의 의견을 따랐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 손짓 발짓을 동원해 가며 겨우 겨우 대답을 얻어냈다. 한참을 알려준 길로 따라가며 이게 맞나, 의문이 들던 찰나, 눈앞에 광장이 펼쳐졌다. 작은 분수와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아까 보던 뒷골목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호텔로 보이는 건물이 없어 젤라토 가게에 들어가 물어보니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역시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였다. 호텔 건물도 예사롭지 않고 고풍스러웠다.
호텔에 체크인을 한 후, 방 문을 열자 드디어 고대하던 침대와 상봉할 수 있었다. 창 밖에 예쁘게 반짝이는 불빛들을 보며 유럽에 왔음을 조금이나마 실감했다. 무사히 도착했음에 안도하며 따듯한 샤워로 피곤한 몸을 녹였다. 포근한 이불속에 눕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까무러쳤다. 내일이 기대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