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겨울, 일본.
이번 이야기는
<일본; 도쿄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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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
심야 버스를 타고 도착한 도쿄.
만원 버스 안에서 밤새 앉아서 졸다가 깼다가, 그래도 잘도 버텼습니다.
도쿄에 도착하니 해는 떴는데 몸은 아직 어제를 다 마무리하지 못한 기분이었습니다.
교토의 정취를 몸 안에 가득 담아 왔는데,
몸과 정신은 아직 교토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코인빨래방을 찾아 캐리어를 달달달 끌며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그새 쌓인 옷들을 빨래통에 맡겨 놓고, 빨래방에서 조금 졸았습니다. 눈이 알아서 감기더군요.
편의점에서 푸딩과 빵을 사 와, 빨래방 앞 작은 공원에서 간단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그러고는, 아침 일찍 문 연 스타벅스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정말, 정신없는 아침이었습니다.
아니, 아침이 맞는지 정신이 있는지 인지조차 힘들었습니다. 비몽사몽-
심야 버스는 신중히 고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여행을 이어가는 불굴의 한국인 둘.
지금 다시 저 날로 돌아간다면, 숙소에서 체크인 후 한숨 자며 하루를 보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오늘의 피곤은 물러가지만, 오늘의 도쿄는 다시 오지 않는다”라고 믿었습니다.
(결국 오늘의 피곤이 내일에도, 모레에도 물러가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호텔에 짐을 맡겨둔 후, 신주쿠 교엔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평화롭고 넓다, 라는 느낌은 들었는데 그것이 신주쿠 교엔에서 든 생각이었는지 요요기 공원에서 든 생각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합니다.
신주쿠 교엔, 요요기 공원.
이 두 곳이 헷갈립니다... 사진을 다시 보아도 방문한 시간으로 구분할 뿐, 그 내용과 느낌이 남아있지 않은 기분입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날 오후, 도쿄타워로 향하며 친구와 함께 버스에서 머리를 흔들면서 졸았던 기억이 납니다(ㅋㅋㅋ).
그럼에도 캄캄한 밤하늘 속에서 반짝이며 도쿄를 환히 지켜주던 도쿄타워는 잊지 못합니다.
해가 질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캄캄할수록 더욱 빛나는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습니다.
시부야구는 들었던 그대로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빨간불. 횡단보도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초록불. 물밀듯 몰려와 한 순간에 하나로 뭉쳐지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버스도, 사람도, 불빛도 바쁘고 분주하더군요.
서울의 홍대보다도 더 번잡한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처음 가는 곳이기에 더욱 예민한 감각으로 바라봤을지도요.
제가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다니는 이유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라고 하던가요.
그렇다면 그 여정에 있어, 여행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피곤한 여행도, 비가 쏟아지는 여행도,
활기찬 여행도, 해가 쨍쨍한 여행도,
모두 “나”를 알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섯째 날
도쿄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 가마쿠라에 간 날입니다.
가마쿠라시는 도쿄 근교에 있는 도시로, 슬램덩크에 나오는 배경지로 유명합니다.
에노덴 열차로 타고, 원하는 역에서 내려 관광할 수 있습니다. 셔틀트레인인 셈이죠.
맨 처음, 가마쿠라 역에 도착했습니다.
역 주변을 둘러보며, 양식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주변 분위기가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가마쿠라에서 시간을 보낸 후,
또다시 에노덴 열차를 타고 에노시마 역으로 향했습니다.
에노시마 역은 바다 근처에 위치해, 아름다운 바다를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에노덴 열차로 간 곳 중에 가장 예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제가 여행을 간 날은 2023년 2월입니다. 오사카와 교토, 도쿄에서는 코트를 입을 만큼의 날씨였으나, 가마쿠라로 향하던 이 날은 날씨가 풀려 카디건 하나면 충분한 날씨였습니다.
(살짝 추워, 에노시마 역 근처에서 목도리를 하나 사서 두르고 다녔습니다만...)
에노시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시고에(슬램덩크 배경지)’에서 일몰을 볼 예정이었기에, 그전에 서둘러 에노덴 열차의 종점을 찍고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종점은 후지사와 역입니다.
이곳은 내륙이었기에, 거주 공간과 마켓이 즐비한 하나의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걸어 다니며 만난 마켓에서 간단히 간식을 사 먹었습니다.
일몰 시간에 맞춰 고시고에 역에 잘 도착했습니다.
기차가 지나다니는 기찻길이 아름다운 핑크빛 노을을 배경 삼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바다, 노을, 기찻길.
이 셋이 함께 있는 곳, 고시고에입니다.
일곱째 날
도쿄 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일본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도쿄 시내입니다.
마지막 날은 도쿄 시내에서 눈알을 굴리며 많은 것들을 구경했습니다.
똑같은 건물이어도, 그 세월이 다르고
똑같은 불빛이어도, 그 정취가 다르고
똑같은 음식이어도, 그 향기가 다릅니다.
똑같고도 다른 곳. 일본입니다.
마무리하며,
이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
여행을 다녀온 지 2년 하고도 3개월이 더 지난 시점이네요.
사진과 기억을 따라가며 과거의 기억 조각들을 재조립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재미집니다.
기억이 선명하고 뚜렷해서 술술 기록되는 여행기보다,
시간이 지나 조금은 빛이 바랜 기억들의 먼지를 털어 가며 기록되는 여행기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의 기록은 해상도 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에도 기억되는 것들은 농도가 진한 짙은 기억들이기에,
더욱 성숙된 여행 기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만의 여행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연한 기억은 연한 대로, 짙은 기억은 짙은 대로,
추억은 추억으로, 기억은 기억으로.
기록하는 여정에 여러분과 함께여서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좋습니다.
NEXT_
다음 이야기는
<발리에서 생긴 일(1)>입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