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있습니다. 같은 반에 '다른 아이'를 좋아하는 그 아이는 늘 따라 했습니다.
- 선생님, 이 보드게임 할래요.
- 저도 할래요, 선생님.
- 저 그럼 안 할래요.
- 그럼 나도 안 할래요.
아이의 무엇이 좋은지 그 아이만 그렇게 따라 하는지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아이는 말을 잘했습니다. 딱 부러지고, 다른 아이를 배려하면서 함께 놀았습니다. 생각보다 섬세해서 종이접기를 잘했습니다. 종이에 그림 그리기도 잘하고 캐릭터를 찾아서 그림을 잘 따라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 아이가 오는 걸 싫어했습니다. 함께 연계형 돌봄에 오면 하고 싶은걸 하지 않고 교실을 마구 돌아다니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빨리 가고 싶어 했습니다.
한 아이는 무언가 어설펐습니다.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엉성하고 딱 부러지지 못하고 덤벙대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색칠하겠다고 해서 주면 이쁘게 색칠하는 것 같다가, 금방 지쳐하기 싫어서 검은색으로 나머지를 칠해버리고 완성했다고 합니다. 노란 오리 애착인형을 갖고 교실에 들어옵니다. 각자 다른 걸 하라고 하면 어수선하게 행동하고 따로 활동이 거의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한 아이는 다른 아이가 오지 않았을 때 훨씬 차분하고 조용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서로 방해받지 않으면 알아서 잘하는데 함께 있는 순간 엉망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좀 떨어져 지내는 게 필요해 보이는 이 아이들이 한 달 후 방학이 되면 좀 나아질까요.
아이들이 아직 유아의 모습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기 같고 아직 초등학생 같지 않고, 애착인형까지 들고 다니며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이 마냥 아기 같습니다. 코로나로 3년을 잃어버린 후유증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걸까요. 저는 늘 저희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육아의 최종목표는 독립이라는 오은영 선생님의 말처럼 부모는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