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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 Aug 21. 2024

7. 나는 나를 고용하기로 했습니다.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대표와 직원


소속감(sense of belonging) :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






소속감이란 어딘가에 속해 있음으로써 느끼는 안정을 나타내는 말인 것 같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의 의미 중 하나는 어딘가, 사회 일원으로 속해 있음으로써 편안함을 느끼는 존재라는 의미라고도 생각한다. 


대학교 졸업반 시절에 '소속감'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접했다. 미취업 상태로 졸업을 해버리면 더 이상 '대학생'일 수가 없고, 그 '학생'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심리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좋을 리가 없다며. 


'학교'와 같은 소속이 인간에게는 필요하고, 그 테두리가 사라지면 텅 빈 공간에 홀로 서있는 막연한 불안함이 덮칠 거라고 졸업을 유예한 선배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소속을 유지하고자 졸업을 미뤘고, 졸업을 미루기 위해 학교에 등록비를 지불했고, 나는 그러한 행위를 비효율이라 생각했다. 


익숙한 울타리 속에 머무르기 위한 그 행위가 시간낭비 같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해온 나는 그들과 다를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취업을 하지도 않은 채, 심지어 한 학기 조기졸업을 단행했다. 사회로 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고, 막연하지만 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불안함이 곧이어 나를 장악했다.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할 때, '어디 학교에 다니는 누구누구'라는 수식어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이라는 넓은 무대에 홀로 서게 되면서 당당함도 느낄 수 있었다. 뭐가 되었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고,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도 있었다. 두렵기는 했지만 졸업을 유예하지 않은 것에 후회는 없었다. 나는 생각보다 용기 있고, 스스로를 믿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호기롭던 시절이 있었다. 





 

퇴사를 앞두고 새로운 걱정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 소속감에 대한 불안함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속하게 되는 '조직'이 사라지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칠까? 퇴사에 대한 호기로움은 사라지고 불안감이 다시금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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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들여다봤다. 회색빛 얼굴에 흐릿한 눈빛을 가진 내가 서있었다. 표정은 굳어있었고, 하루종일 신경 쓴 탓에 머리는 지끈거렸다. 생기가 없었다. 이상했다. 분명 나에게 에너지가 남아있는데 겉으로 표출되는 내 눈빛은 흐리멍덩했다. 


순간 짧지만 강렬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지금 현실과 회사에 찌들었지만 사실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활력이 있어. 이런 나 너무 아깝잖아? 퇴사가 불안해? 소속감이 사라지는 게 두려워? 그럼 내가 나를 고용해야지.'  






그래. 나는 나 자신을 고용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대표가 되고, 그 대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직원이 되기로 결론 내렸다. 이로써 나의 소속은 '내'가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동료이자, 고용주가 되어 스스로를 이끌어가기로 했다. 이 결정은 단순히 '소속'을 바꾸는 것, 겉으로 보이는 '소속'을 만들어 낸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새로운 과정이라 느껴졌다. 


더 이상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서 해답을 찾아 나가보기로 했다.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대표와 직원이 되어 볼 예정이다. 

나는 나를 고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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