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다가가 위한 한 걸음.
사람들은 고민거리가 많다.
혼자서 고군분투를 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내는 지인들.
자식에 대해 하는 말은 늘 조심스러운 것 같다. 소문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심리상담 센터에 아이를 데리고 다닌 지 11년 차. 대기실에서 무수한 엄마들을 많이 만났다.
많은 사람들 만큼 다양한 취향과 성격들. 많은 정보들을 주고받기도 했다.
재활 수업이 끝나면 10분 정도 피드백을 한다. 끝날 무렵 나는 늘 아이를 위해 노력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으레 모두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6년을 같이 했던 선생님께서 자리를 옮긴다고 했을 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이
"oo 이는 하나도 걱정되지 않아요. 좋은 엄마가 옆에서 있어서 잘하실 거라고 믿어요.
지금 해 오신 데로 계속하신다면 문제가 없을 거예요. oo 이는 사랑 많이 받은 티가 나요.
다 어머님 덕분이죠. 참 감사합니다."
나의 노력을 알아주셔서 뭉클하고 감동이었다.
아이들은 나에게는 선물이었다.
이기적이고 나 밖에 몰랐던 나를 변화하게 했다. 힘들일은 누구에게나 일어 난다.
그 힘듬은 크고 작은 것으로 나 눌 수가 없다. 나에게 닥치면 모두 큰 시련 같이 느껴지니까.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지 원망하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나도 성장하고 있었다.
모두가 처음인 엄마의 삶은 배울 것이 너무도 많았다. 울고 웃는 날의 연속이었던 나날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목표를 하나 정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서로에게서 졸업을 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삶을 서로가 응원하고 책임지는 것. 서로에게서의 독립.
그것을 위해서 지금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끔 만나는 지인들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답답하다.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자식에게 대입해서 어떤 학교를 가야 하고, 뭘 배워야 하고
그 걸 위해서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그게 정말 자식을 위하는 것이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인 중 한 분이 내게 말했다.
"너는 자식을 위해서 나처럼 많이 공부했던 것 같은데 왜 나랑 많이 다른 것 같지?
어떻게 자식을 그렇게 놓아 버릴 수가 있는 거야?"
자식을 놓아 버린다.. 부모로서 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세상에 자기 자식을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화가 났지만 웃으면서 말했다.
"언니. 나는 우리 애들이 행복하게 살 았으면 좋겠어. 공부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하는 건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세상 살아가기가 쉽지 않잖아. 하고 싶은 일이나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더 잘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줄 수 있지만 그 모든 건 아이의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때 내가 읽었던 책 들은 정서발달, 인지 발달, 놀이책, 어떤 음식이 몸에 나쁜가?, 어떻게 놀아 줘야 하는가? 이런 책들이 있었다. 자기 계발서적을 좋아하기는 했어도 그건 내가 성장하고 싶어서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드라마 슈롭 대사 중
"아이의 생사 여탈권이 부모에게 있다는 그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았으니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안 들으면 네가 누리는 것들을 못 하게 하겠다거나, 재산을 주지 않겠다는 협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식이 위험한 길로 가지 않는지 살피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이네. 나 또한 그 자리가 제일 어렵네
그러니 부모는 앞서 걷는 이가 아니라 먼저 가본 길을 알려주는 이라 하지 않던가. 그럼 적도 자식이 위험한 길을 가지 않게 해야지."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부모는 인생의 선배로서 이야기를 해 줄 수는 있지만 강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 나답게 살기로 정한 만큼 뭔가 하나를 해보고 싶었는데. 경상대학 중앙도서관에서 주체하는 지역민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Book 메이드 바이 미'라는 책 만들기에 신청했다.
선착순 30명 안에 들어갔다. 9시에 오픈되어 10분만 만에 마감이 되었단다.
4월 28일에 시작해서 6월 2일에 끝난다. 5번만 출석하면 된다. 저녁 시간 때라 아이들 픽업을 남편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내 꿈은 체험 농장을 만드는 것이다. 씨앗부터 키워온 열대 과일나무들을 이용해서 작은 식물원도
만들고 그림 전시관, 작은 도서관, 체험장, 카페까지 만드는 게 나의 큰 인생 프로젝트다.
그 꿈에 가까워지고 싶어서 나무들을 열심히 키우고 특성들을 공부하고 있다.
향수로 유명한 일랑일랑의 꽃이 언제 피어줄까? 꽃을 기다리는 중이다. 티갈로그어로 "야생"이라는 뜻을 가진 일랑일랑 생화는 어떤 향이 날까 궁금하다.
우연한 기회에 어린 모종을 하나 구하게 되었다. 6년을 넘게 키우고 있는 중인데 야속하게도 꽃은 아직이다.
식물들을 하나하나 모으고 아이들과 함께 물 주고 가지치고 키우다 보니 치유 농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25년 치유농업사 2급 양성과정에 도전을 한다.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으로 자기소개를 썼다.
자기소개서도 트렌드가 있는 것 같아서 찾아봤더니 돈 주고 써준다는 광고만이 무수히 많았다.
쳇지피티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작성을 하고 마감 날 메일로 보냈다.
개인정보 동의서, 신청서, 자기소개서, 자격증, 농업 경영체 등을 첨부해야 했다.
나는 자격증이 없다. 농업관력 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사회복지 관련 자격증도 없었다.
가산 점은 없다는 말이다. 귀농 10년 차 농부로 현업에서 뛰고 있다고 해도 도움이 안 되었다.
1차 서류심사에서 합격하여 2차 면접을 보러 갔다. 5명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블라인드 면접이라고
했다. 자기소개서에 작성된 것으로 질문을 할 것이라고 대실에 앉아 있을 때 들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질문은 지원동기, 치유농업이 나라에 끼치는 영향, 각 자기소개서에 작성된 궁금한 부분을 질문받았다.
한 면접관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제일 절실해 보인데 이력이 너무 없네요."
"네. 알고 있습니다. 관련 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자격증이 없지만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전문적인 지식은
배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부족해도 너무 부족합니다. 이력을 좀 더 갖추고 다시 도전하셨으면 좋겠어요."
"네. 자격증 준비도 하고 있고 여기서 떨어진다고 해도 제가 준비한 체험 농장은 꼭 할 겁니다."
로 마무리를 하려던 찰나 마지막 면접관님께서
"오랜 앉아 있어야 하는데 가능합니까?"
기술센터 교육을 많이 받은지라 148시간 수료는 기본은 이고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서
"네. 자신 있습니다."
면접이 끝났는데 뭔가 아쉬웠다. 말실수도 한 것 같고. 열대 과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두 번째 면접관은 대 놓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떨어지면 자격 좀 갖추고 2년 뒤 다시 도전할 계획이었다.
예상 대로 2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치유 농업사 2급 양성과정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득이하게 불합격하셨습니다.'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뭔가 섭섭하다. 기대를 한 것도 아닌데. 남편은 괜찮다며 우리가 준비해 가는 것은 그것이 없어도
할 거잖아라고 했다.
마음을 비우고 시간이 나서 4월 글쓰기 모임 숙제를 하기로 했다. 세월호에 관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도 같았고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는 중에 전화가 왔다.
보통은 모르는 전화를 안 받는데 얼떨결에 받았다.
진지하게 글을 써 내려가다가 2년 뒤로 밀루어 둔 계획이 앞 당겨진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슬퍼서 울다가 갑자기 웃을 일이 생긴 기분이다.
"임업 기술교육 센터입니다. 등록 취소하신 분이 계셔서 혹시 하시겠습니까?"
라고 해서 얼른 한다고 했다.
몇 분 후 축한다면서 합격했다는 문자가 왔다. 등록금 고지서와 함께.
1,300,000원 적은 돈은 아니다. 농업, 임업 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도 면접을 봤던 것 같다.
경남에서 40명 모집이라고 해서 많이 몰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었던 모양이다.
작년에는 2:1이었다고 했다. 개강 시작을 위해서 단톡방과 밴드 초대를 받아서 가입했다.
일정 변동 사항 전달과 자료 공유를 위한 것이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합격했다는 것이다. 25일부터 매주 금, 토 10시부터 6시까지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를 할 예정이다. 대통령령에 의해 만들어진 국자자격증 치유농업사.
열심히 해서 한 번 만에 붙어야지 하는 마음 가짐을 가져 본다. 나의 꿈에 한발 더 다가가 위한
또 한 발 자국을 내딛는다.
이 번 연도에 행운을 모두 끌어 쓴 기분이 든다. 가끔 로또 파는 곳 앞을 지나가면 사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올 해의 운을 몽땅 끌어 썼으니 로또는 꽝 일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사지 않기로 했다.
사춘기 청소년, 번 아웃이 온 사람들, 휴식이 필요 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무얼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어하는 부모들을 만나게 되면 내가 어떻게 아이를 키워내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고 싶지만 아무런 자격이 없어서 선 듯 나서질 못 했다.
가끔은 내가 너무 잘 난척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을 아끼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 꿈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나를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