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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코칭과 멘토링이 잔소리처럼 들릴 때

by 만숑의 직장생활

“그게 왜 그렇다고 생각해? 그 일이 왜 어려운 걸까? 한 번 고민해 보고, 고민한 거 가지고 내일 다시 얘기해 보자.”

일하다가 난관에 부딪히면 가끔 김 상무한테 물어보곤 했는데, 돌아오는 답은 늘 비슷하다. 질문은 내가 했는데, 다시 질문이 돌아오고 결국 답은 내가 찾아서 보고해야 한다. 어쩐지 묘하게 어려운 피드백 방식이다.

반대로, 이 상무는 어떤 질문이든 본인의 옛날 얘기로 시작한다.
“그런 건 말이야, 내가 예전에 A팀에 있을 때였는데... 그때 어떻게 했냐면 말이지...”

그래서 또 다른 의미로 피하게 된다. 대화가 어느새 ‘라떼는’ 얘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가 자연스럽게 두 상무의 피드백 스타일에 대한 푸념이 나왔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하아... 그래서 두 분한테는 이제 뭘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어요.”

그 선배는 HR 담당 출신이라 그런지, 잠시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너도 참 고생이 많다. 근데 그거 알아? HR 관점에서 보면 두 분 다 나름 리더십 공부를 하신 분들일 수도 있어.”

“네? 리더십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네가 말한 그 방식들, 사실은 리더십 이론에 다 나오는 기법들이야.”

“헉, 진짜요? 이런 게 책에 나오는 거라고요?”

“그럼. 예를 들어 김 상무처럼 계속 ‘왜?’를 물어보는 방식은 코칭 리더십에 해당해.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라고도 하지.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야. 질문자 스스로가 뭘 놓치고 있는지를 깨닫게 도와주는 거지.”

“그럼 이 상무가 자꾸 본인 얘기하는 건요?”

“그건 멘토링에 가까워. 본인의 유사한 경험을 얘기함으로써, 질문자가 영감을 받아 스스로 방향을 잡게 해주는 방식이지. 멘토링의 핵심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경험을 나누는 거야.”

“헐... 진짜요? 저는 그냥 자랑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사실 코칭이나 멘토링이 효과를 내려면, 전제가 하나 필요하거든.”

“전제요?”

"정서적 유대감."

“정서적 유대감이요?”


“그래.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 유대감도 없는 사람이 ‘왜 그랬니?’ ‘내가 예전에 말이야~’ 하면서 계속 얘기하면, 그건 그냥 잔소리처럼 들릴 수밖에 없어. 질문에 답을 주기 전에, 그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었는지부터가 더 중요하거든. 김상무나 이상무가 너랑 함께 고생하며 으쌰으쌰 해본 적도 없고, 멀찌감치서 훈수만 두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너 입장에서는 그런 말이 반감으로 들리는 게 당연하지.”

“아... 그럼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군요.”

“사실 리더 입장에서 ‘코칭’이나 ‘멘토링’을 한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야. 그냥 아는 얘기 툭툭 던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근데 진짜 중요한 건, 유대감을 쌓고, 그 사람이 들을 준비가 된 시점에 말을 건네는 거거든. 그걸 모르고 자기 말만 계속하면, 결국엔 ‘꼰대’ 소리 듣게 되는 거고.”

전엔 그냥 막연히 ‘답답하다’ 고만 느꼈던 상황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조언이 조언으로 들리려면,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건 결국 ‘관계’라는 것.


“그래서 말이 좀 길어졌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코칭이나 멘토링이란 건, 화자가 무슨 얘기를 할지 고민하기 전에, 듣는 사람이 과연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해. 유대감이 없으면 어떤 말도 그냥 공허하게 들릴 수 있거든. 그러니까 사람을 코칭하고 멘토링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지. 반대로, 그런 고민 없이 그냥 본인이 아는 거, 겪은 거 이야기하는 건 오히려 제일 쉬운 방식이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씩 이해가 됐다. 그러고 보니, 듣고 싶어지는 말은 대부분, 듣고 싶은 사람에게서 나왔다.


내가 듣고 싶지 않았던 건,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 말이 나온 거리감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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