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시
박성현
표지석도 없는 무덤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눈이 녹아 가풀막을 흘러내렸습니다
봄볕 몇 송이가 자박자박 고인 물을 뒤척였습니다
젖은 운동화에서 한 계절 묵은 바람이 새어나왔습니다
어디선가 소리를 잃은 울음이 들려왔습니다
발자국에 껍데기만 남은 벌레들이 잔뜩 박혀 있었습니다
기척도 없이 모여들었고 안쪽부터 말라 있었습니다
방향을 돌려 길을 냈습니다
새로 낸 길도 낯설고 서걱서걱했습니다
매일매일 내게 오시지만 닿지 못했습니다
슬픔조차 너무 먼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