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몰락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거대한 파도처럼 휘몰아칠 것 같지만,
사실은 작은 금에서 시작된다.
벽에 생긴 미세한 균열처럼,
보이지 않는 틈새가 천천히 벌어지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기울어진 세계가 눈앞에 드러난다.
손끝에 닿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발밑에서 흔적처럼 흩어지는 것들.
어제까지 단단했던 시간들이
오늘은 부서진 조각으로 흩어진다.
몰락은 끝이 아니다.
그 아래엔 또 다른 시작이 숨어 있다지만,
아직은 그 자리에 서서
무너지는 모든 것을 바라볼 뿐이다.
떠난 것들, 잃은 것들, 남은 것들.
모두가 말 없이 가라앉아 간다.
몰락은 조용하지만,
그 안엔 수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다시 주워 담을 힘조차 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