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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면담

2023.11.21. 화

by 고주

<한 끼>


종일 불을 켜야 하는

수원역 지하 2층 셰프의 한 끼

바쁘게 얽히는 발소리들

찍 하고 끌리는 전철의 코뚜레

숨도 안 쉬고 달리는 시계의 초침

땀나게 달그락거리는 어금니

혼자 먹는 햄버거

먹기 위해 사는가?

죽지 못해서 먹는가?

시간이 딱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눈 풀린 저 아저씨

해가 뜨지 않는 또 하루



호루라기 소리가 울린다.

멀리서 복도를 따라오면서

북새통의 아이들은 제자리를 찾아가느라 바쁘다.

덩치 큰 남선생님의 반.

규율을 잡는다는 것.

길들여진다는 것.

꼭 필요한 일이지만

점점 자극은 커져야 하고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여선생님에게는

손쓸 방법이 없어지는 전쟁터가 될지도 모른다.

무수한 변수가 생기는 정글에서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누군가는 보안관이 되어야 하고

누구는 따뜻하게 밥을 챙기는 엄마도 있어야 한다.

나는 엄마 쪽에 줄을 서겠다.

시험 날이 다음 주 화요일

개념만 설명하고 가도 빠듯하다.

순둥이 8반

비교적 얌전하고 조용한 편.

앞으로 두 시간은 문제 풀이를 하겠다고

미리 예습했거나, 다 아는 문제라면

학원 숙제나 따로 보는 책을 가져와도 좋다.

기초가 부족해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복습을 겸한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시험 전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고

살얼음판을 걷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꼼지락거리는 영이

눈치를 주었건만 뒤만 돌아서면 옆 친구에게 공을 던진다.

웃음소리가 터지는 것을 보니

다른 아이들이 다 보고 있는 듯

혈압이 오른다.

숨이 가빠진다.

이러다 사고 치지.

몇 번이고 숨을 들이마신다.


“영이는 공부 잘하지?”

“예”

요놈 봐라, 감히 예라고 대답하는 녀석이 있단 말이야.

통상은 머리를 긁거나 아니라고 대답하는 법인데,

겸손해져야 한다.

앞으로 자신이 키운 힘으로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더욱더

따로 불러 조용조용하게 타이른다.

영민한 녀석이니 알아먹었겠지.

진짜 잘 커 줘야 한다.

국민을 애먹이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오늘도 혁이는 몸살이다.

수가 응해주지 않으니 옆 여학생을 찔벅찔벅.

멀리 창가까지 마수를 뻗친다.

창끝처럼 날카로운 내 눈빛을 보며

흰자 가득한 얼굴로 거울을 본다.

몰래 종이를 접어 튕긴다, 지우개 조각을 던진다.

내 자리까지 데리고 온 요 녀석.

수학은 알만한 것은 안단다.

다른 시간에도 종종 지적받는다고.

기분은 썩 좋지 않다고.

칭찬을 받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면, 그렇다고.

나에게 그런 기회를 줄 수 없겠느냐면, 머쓱하게 웃을 줄도 안다.

누나나 형은 없느냐니, 외동이란다.

그렇구나.

사랑을 독차지 한 녀석이라 관심이 필요했구나.

반에 이런 아이들이 절반일 텐데.

교실의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골고루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나누어 주기.

사랑 보따리를 크게 달고 태어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생님이라는 굴레.

점점 어려워지는.


어깨를 다독이고 보내며 내일부터 지켜보겠다는 내 말에.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옆 선생님.

하기야 한 번에 바뀐다면 중학교 1학년이 아니겠지.

민이같이 내 행동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눈이 따라오는 아이도 있는데.

다 알면서도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떡여주는.

맑고 고요한 눈빛.

이런 아이 서너 명이면 감사해야지.

수업을 하고 보니 어느새 아이들의 삶 속으로 깊게 들어온 기분이다.

딱 두 달인데, 진도 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중에 너무 아프지 않으려면.

그땐 그때고.

나로 인해 바른 방향으로 한 발이라도 옮길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만나자. 많이 만나자.


3학년 기말고사로 시간표가 복잡해졌다.

오전은 쉬는 시간이 15분씩, 오후는 5분씩.

3교시 후에 점심을 먹고.

정신없이 들락거렸더니 피곤하다.

머리도 식힐 겸 운동장에 나가보니 공을 차는 녀석들이 보인다.

수업 시간에 까부는 놈들이다.

운동 잘하는 것도 존재감이 되는 때지.

묘기를 보여주겠다며 현란한 몸짓으로 아이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녀석.

진짜 선수급이다.

목에 힘줄만 하다.

저 녀석들과 함께 축구 시합을 할 기회가 주어질까?

아서라 다친다.

과욕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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