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모범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릴 때부터 나는, 부모님에게
한 번도 대든 적도 없는 말 잘 듣는 착한 딸,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말씀을
법처럼 여긴 모범생이었다.
흔히 어른들이 착하다고 칭찬해 주시는 아이.
어른들의 뜻에 따라서 말을 잘 듣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좋은 것인 줄 알았다.
찍소리도 할 줄 모르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걸린 아이.
그때는 몰랐다.
어른들의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나를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자꾸만 나를 숨기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진짜 꼭꼭 숨겨져서 나도 나를 못 찾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모르는
그냥 어른들의 뜻에 맞춰진 내가 되어 있었다.
학생 때는, 어른들이 흔히 말씀하시는
이름 있는 대학이 목표가 되어서 공부를 했었고,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들어가서 취업하고,
결혼 적령기가 되어서 결혼하고,
아이 두 명 낳고 육아하는 흔히 말하는 인생.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는 인생.
어른들의 속 안 썩이는 인생.
이게 잘 못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의 공허감이 커졌다.
나의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
내가 세운 목표 같았지만,
그냥 사람들이 짜놓은 인생의 규칙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를 더 공부하고 나를 더 알아갈수록
아이들이 나의 잔소리에 화를 내고 문 닫고
들어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느껴졌다.
부모님과 본인은 같은 사람이 아니니까
뜻이 당연히 달라야 한다.
부당하면 반항해야 한다.
본인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아이가 나에게 말대꾸한다는 것에
기특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말 잘 듣는 모범생이 부럽지는 않다.
지금에서야 나는 사춘기가 온 것인지
부모님께 말대꾸하기 시작했다.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나의 목소리를 내다보니,
나의 의견도 낼 수 있게 되었고 의견을 내다보니
내 생각이 내가 중심으로 바뀌어서
나의 일상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앓고 있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벗어난 것이다.
어른들의 눈치를 안 보고 나의 의견이 생기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생겼다.
그동안 ‘한번 해 볼까?’ 하던 일도
주변 사람들의 “그런 일 해서 뭐 하냐?”
“그거 하면 돈은 많이 버냐?”,
“그냥 안정적인 일을 해라.”라는 말들에
두려워서 못 했던 일들을
이제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낼 수 있는 나의 목소리가
세상을 향해 나를 보일 수 있는 용기였던 것이다.
아이가 찍소리를 내면 고마워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이므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