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 드디어 내 실력을 보여주겠어!
금요일 퇴근하고 집에 왔다. 점심시간에 체육부장이 골득실 뭐시기 뭐시기 설명했는데 내가 못 알아먹은 것 같아서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골득실=득점-실점이었다. 만약 우리 팀이 3:1로 졌다면 골득실은 1-3=-2가 되는 것이다. 축구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한일전 아니면 경기도 잘 안 본다. 그러니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래도 손흥민은 좋아한다. 다음 생에 남편은 아이유 오빠로 나는 손흥민 누나로 태어나고 싶다고 심심하면 헛소리를 한다. 남편이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풋살 모임을 나간 지 10년이 넘었다는데 나는 한 번도 남편 경기장에 따라가본 적이 없다. 내 기준에 공은 둥글고 골대에 들어가면 좋은 거다.
불금이라 기분 좋은 딸내미를 살살 구슬려서 맹구 FC 마크를 그렸다. 펜 타블렛 사준 보람이 있다. 백 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름 귀엽다. 계속 옆에서 훈수를 두니 그만한다고 협박을 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들에게 내일 아침에 엄마랑 아파트 내 경기장에 축구 연습 좀 하러 가자고 하니 친구랑 약속 있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진짜 치사하다. 치사해! 내가 너 숙제 도와준 게 몇 번인데!
토요일에는 비가 왔다. 일요일 오전 드디어 날이 개어서 단지 내 경기장에 몸 좀 풀러 갔다. 경기는 바로 내일, 마음 급한 나는 원포인트 레슨이 필요한데 남편은 기본기가 중요하다며 패스 연습하고 인사이드로 공차는 연습만 시켰다. 30분이 지나자 아들이 내려와서 우리는 삼각형 모양으로 공을 주고받으며 슈팅 연습까지 했다. 몇 번 잔소리에도 내가 내 마음대로 공을 차차 남편도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지 부부끼리 운전과 운동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며 올라가자고 했다. 내가 내일 꼭 1승 해서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말겠어. 내가 폼은 어설퍼도 운동신경이 없지 않거든. 볼링장에서 매번 내가 이기는 거는 알고 있나 몰라.
오늘은 결전의 날이다. 아침 일찍 운동복을 챙겨 출근했다. 오늘 우리와 맞붙는 상대편 KFC**셀로나 팀이 운동장에 모여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 팀은 4학년 남학생으로만 구성된 팀이다. 키도 고만고만한 친구들이 재미있게 경기를 하고 있었다. 패스 연결도 매끄럽고 골키퍼가 골도 잘 막았다. 내 예상보다 잘해서 조금 놀랐지만 그래도 우리의 짬밥은 이길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암. 그렇고 말고.
점심을 먹고 체육관으로 올라갔다. 체육관에는 아이들이 공 여러 개를 놓고 때거지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체육부장이 오고 나서 상황은 모두 정리가 되었고, 오늘 공식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는 전반 10분, 휴식 2분, 후반 10분으로 진행된다. 우리 골키퍼는 오늘도 슬리퍼를 신고 당당히 등장했다. 발이 너무 커서 학생용 실내화가 없다는데 그러면 할아버지 고무신이라도 구해와야 하는 거 아닌가? 나도 슬리퍼로는 경기가 불가능해서 배구화를 신고 갔다. 첫 경기의 부담감에 또 체육관에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좀 긴장됐다. 3~6학년 아이들 반 정도가 구경을 왔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선생님들도 구경을 왔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전반이 시작되었다. 흥분한 우리 주장 MS이가 태클을 깊게 걸어서 잠시 경기가 중단되었다. 나는 경기 시작 3분 만에 숨이 찼다. 옆반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캐스터 역할을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그 사이 상대팀이 선재골을 넣고 말았다. 날카로운 공격은 아니었는데 너무 쉽게 점수를 내주어서 아쉬웠다. 전반 경기가 끝나고 이대로 무너질 수 없는 우리는 포지션을 바꾸었다. JH이는 그대로 골키퍼, 내가 수비, 나머지 3명이 다 공격수로 나갔다. 그런데 오늘 3명 공격수의 합이 잘 맞지 않았다. 회심의 슛은 번번이 골대를 빗나갔고, 응원석에서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상대편 골키퍼는 미친 활약을 선보였다. 후반 우리는 여러 번 기회를 엿보았지만 실패했고, 최종 스코어는 1대 0으로 KFC**셀로나의 승리로 끝났다.
날씨는 춥고 몸에서 열은 나고 경기는 져서 화는 나고. 눈치 없는 MS이가 나랑 JH이가 못해서 졌다고 우리 탓을 했다. 내가 보기엔 상대편이 우리 팀보다 훨씬 조직력이 우수한 팀이었다. 우리보다 어리다고 무시하면서 우리는 준비도 안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내가 아쉬워 하자 체육부장은 나에게 충분히 1인분 역할을 했다며 오늘 몸살 나는 거 아니냐며 걱정을 해주었다. 에이 그 정도로 열심히 안 해서 민망했다.
이제 남은 4팀은 화요일 수요일에 경기를 한다. 두 팀이 큰 점수 차로 이겨준다면 우리가 준결승에 진출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진짜 끝까지 구질구질하다. T.T)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