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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언니 Feb 18. 2024

<골드미스 프롤로그>

어쩔 수 없이 골드미스가 되어가는 그녀의 스토리 - #1


#1
트렌디한 직장 여성.



회장님 비서 일을 하는 은경은 일찍 출근한다. 사무실 불을 켜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픽업해 온 스타벅스 돌체라떼와 함께 날짜 지난 매경 이코노믹스를 읽는 것이 그녀의 모닝 루틴이다. 경제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이슈도 파악하면서 간간히 껴 있는 명품 브랜드의 광고를 보다 보면 어느 브랜드를 당근에 올려야 잘 팔릴지 느낌이 온다.


“여유 있게 왔다.”


업무시간 6분을 남기고 출근한 나은이 눈인사를 하며 컴퓨터를 켠다. 6분이 여유 있는 것인가?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역시 기본 개념부터 다르다. 


매일 아침 쫓기듯 출근하는 나은은 은경의 옆자리 직원이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30대 초반답지 않게 세상물정에 어둡고 순수한 것이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칠 맛이 나는 6살 동생이다.


“이거 읽어봐. 메타버스 시장이 커진대. 전에 네이버 사라고 했었잖아. 이제 제대로 올라가겠어.”


“너무 비싸서 두 주밖에 못 샀어. 남는 돈이 있어야 투자를 하지. 언니는 샀어? 부자 되겠어”


나은이 초록색이 눈에 들어오게 반으로 접힌 경제지를 은경에게 건네어받더니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대한민국의 경제 수도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은경의 회사는 B to B 서비스 사업을 하는 건실한 중견기업이다. 월급을 많이 주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데다 워라밸도 좋고 개인 사생활을 존중하는 분위기여서 직장생활 8년 차의 알만큼 아는 은경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이직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비슷한 또래 여직원들과 떠는 수다가 직장 생활의 활력소가 될 만큼 분위기가 자유롭다.


언제나처럼 은경이 매일 모이는 회의실에 도착하기 무섭게 점심 멤버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어머 언니 신발 또 샀어? 새 거 티가 팍팍 나네”


“응 전에 코타키나발루 가면서 면세점에서 못 참고 샀어. 캐주얼 입을 때 신으려고 한참 기다렸어.”


까만 광택을 뽐내는 텐션감이 좋은 발렌시아가의 양말 운동화를 자랑하고 보니 스스로 주책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쑥스러운 애교가 목소리에 절로 묻어났다. 


은경은 완전한 트렌드 세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20대의 감성으로 세상을 즐기며 산다. 엄청난 미인은 아니지만 잘 나가던 한 때에는 나름 사무실 삼촌들의 심장을 흔들던 귀요미였다.


6년 전 헤어진 공기업을 다니던 전 남자 친구는 그녀를 공주님처럼 모셨는데 말하지 않아도 세심하게 그녀를 챙겼다. 민감한 피부를 생각하여 순면 시트만을 사용하는 4성급 호텔만 갔었고 명품 가방도 사줬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여자들이 말하는 괜찮은 추억은 모두 그와 함께였다. 그와 결혼했어야 했는데 연애 7개월 째로 접어들던 어느 날 그는 이별을 고했다.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화려한 결혼식을 꿈꾸며 고급스러운 신혼 식기에 한창 빠져있던 은경은 33살의 나이로 다시 싱글이 되었고 그 후로 쭉 혼자였다.


당연했던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아 졌다. 모든 것을 홀로 짊어져야 하는 현실에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은 타협하며 은경도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혼자 사는 여성의 몸이라 치안과 생활의 질을 위해 통근시간 40분 내 풀옵션 오피스텔에 월세를 내며 살고 있지만 그게 가장 큰 지출이다. 차도 없애고 카드 값을 아껴 우량한 주식에 가치 투자도 하고 있다. 덕분에 경제에 관심이 많아져 소소하지만 이자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저축은행으로 주거래 은행도 바꾸었다. 강남 직장인의 출근길 메트로폴리탄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스타벅스는 아침에만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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