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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가을은 어디에
청람 김왕식
가마솥 같은 더위가 대지를 집어삼킨다. 올해 여름은 여릉에서 150여 년 만에 가장 혹독한 더위였다. 햇살은 대지를 달구어 하늘마저 타오르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그늘을 찾아 헤매고, 나무조차 숨을 고르는 듯 가만히 흔들리지 않았다. 이 더위는 마치 한숨조차 허락하지 않는 무거운 담요처럼 덮쳤다.
기온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찌는 열기 속에서 지친 대지는 비 한 방울 없이 갈라지고, 바람은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모두가 기다리던 가을의 선선한 바람은 오지 않았다. 10월이 되어서도 여전히 기온은 높았고, 더위는 지치지 않은 듯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어느새 11월 초, 가을이 드디어 찾아오는가 싶더니, 그 순간은 너무도 짧았다. 가을의 빛깔이 막 물들기 시작했을 때, 찬바람은 곧바로 몰아쳐왔다. 나뭇잎은 아직 붉게 물들기도 전에 떨어져 나갔고, 짧은 단풍의 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가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가오는 추위를 맞이해야 했다.
사라져 버린 간절기는 마치 환영처럼 희미해졌다. 봄과 가을은 이제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여름과 겨울만이 서로 뒤엉켜 계절을 지배하는 듯했다. 뜨거운 태양과 차가운 바람이 교차하는 날들은 멀리 사라지고, 시간은 여름과 겨울, 그 극단 사이에서만 흐르는 것 같았다.
가을은 더 이상 천천히 물드는 계절이 아니었다. 단풍이 들자마자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긴 여름과 긴 겨울 사이에 스며들던 간절기의 향기는 아득히 먼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었다. 그렇게, 계절은 짧은 숨결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변해가는 계절에 맞추어 적응해 가야 했다. 더위 속에서는 더위를 견디고, 추위 앞에서는 몸을 움츠렸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더 이상 부드러운 이행은 없었다. 오직 거친 변화를 감내해야 할 뿐, 그 속에서 우리는 계절의 얼굴을 재빨리 바꾸어 가며 살아갔다.
여름과 겨울의 끝없는 싸움은 이어졌고, 그 사이의 봄과 가을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매번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며 살아간다. 계절의 변화가 얼마나 급박하고 가혹해질지라도,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여름과 겨울을 기다린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