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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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나 때문이라지만
이종식
잔잔한 연못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던져진다. 물결이 일렁이며 동심원을 그리고, 파장은 멀리 퍼져 나간다. 삶도 마찬가지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예상치 못한 여운을 남긴다. 때로는 자신에게 되돌아와 깊은 흔적을 새긴다.
어제 아내가 오랫동안 버텼던 이를 뽑았다. 볼이 부어 입이 돌아가 몬순처럼 변한 얼굴로 말한다. "흰머리도, 손의 깊어진 주름도, 다 오빠야 때문이야." 세월이 새겨진 얼굴과 손등의 주름이 내 탓이라니. 하지만 아내는 덧붙인다. "사람 얼굴이 잘생겼다고 뭐 하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아름다운 거지." 흐트러진 모습 속에서 균형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아내의 말이 감사하고, 그 마음을 나누는 내가 또한 감사하다.
아들들은 나를 닮고 싶지 않다고 혀를 찬다. 거울을 보면 묘하게 닮아 있다. 부모가 남긴 유산이 때론 피하고 싶은 흔적으로 각인되기도 하는 법.
이웃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울타리 너머 미나리 농사를 짓는 이웃은 내가 나무를 제때 깎지 않아 보기 싫다며 불평한다. 정작 그들은 밤마다 술잔 소리를 바람에 실어 보내면서도, 그 소음이 이웃에게 어떻게 닿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불편을 감내하는 쪽과 불만을 표하는 쪽, 울타리는 보이는 것 이상의 경계를 품는다.
새들도 예외가 아니다. 수백 그루의 오디나무에서 탐스럽게 익은 열매를 따먹고는 우리 지붕과 주차장 위로 흔적을 남긴다. 특히 세차한 날이면 보랏빛 배설물이 성난 붓질처럼 뒤덮인다. 오디는 새들이 먹었는데, 피해는 내 몫이다. 세상에 억울한 일이 어디 한둘인가. 그러나 새들은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이 날갯짓 한 번으로 떠나간다.
문득 예수님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손끝에서 비롯된 고난, 죄 없는 그분이 짊어진 십자가. 억울함 속에서도 변명하지 않고, 원망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다. 그렇다면 나는? 내게 쏟아지는 불만과 억울함을 어떻게 품어야 할까.
집에서도, 이웃에게서도, 심지어 아들들에게서도 나는 손가락질받는다. 내 말을 들어주고 인정해 주는 이는 실비주막 주모뿐이다. 거기 가면 나도 주인공이 된다. 따뜻한 술 한잔과 함께 마음속 허기를 달랜다. 해가 지면, 그곳으로 향해야겠다.
오늘도 작은 돌멩이가 연못에 던져진다. 물결이 번져 나간다. 삶의 파장은 멈추지 않는다. 잘못이든 아니든, 결국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말만이 남는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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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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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식 작가의 글은 삶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면서도, 이를 유머와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모든 게 다 나 때문이라지만'은 그의 가치철학과 미의식이 오롯이 담긴 작품이다.
먼저, 작가의 삶의 철학은 '수용과 감사'에 있다. 그는 삶이란 결국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본다. 억울함 속에서도 변명하지 않는 예수의 모습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주변의 불평과 원망 속에서도 묵묵히 삶을 견뎌낸다. 그의 글 속에서 억울함은 원망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살아가면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 어쩌면 숙명처럼 주어진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감사함을 찾아낸다. 아내의 불평 속에서 ‘제자리에 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불합리한 세상의 질서 속에서도 따뜻한 술 한잔에 마음을 기대는 태도는 삶을 대하는 그의 긍정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작품의 미의식 또한 이와 맞닿아 있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깊이 있는 의미를 찾아낸다. 잔잔한 연못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파문을 일으키듯, 작은 사건 하나에도 삶의 철학이 녹아 있다. 또한 그의 글은 대상과의 거리감을 섬세하게 조율한다.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냉소적이지도 않다. 때로는 유머를 가미하며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지만, 그 안에 깃든 애정과 연민이 작품을 지탱한다.
특히, 작품 속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미적 감각이 인상적이다. 울타리, 새, 오디나무 등 주변의 사물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사의 은유로 기능한다. 울타리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의미하고, 새들은 자유로우면서도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이러한 자연적 요소들을 통해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다 유연하게 확장한다.
결국, '모든 게 다 나 때문이라지만'은 단순한 일상 기록을 넘어, 삶을 성찰하는 과정 자체가 아름다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억울함도, 불평도, 심지어는 불완전한 외모까지도 결국은 삶을 이루는 조각들이다. 이종식 작가는 이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며, 나아가 독자들에게도 그러한 태도를 유도한다. 그의 글이 지닌 미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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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종식아,
늘 그러했듯이, 네가 계획한 일은 반드시 이루어낸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학창 시절에도, 사업을 시작할 때도,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네가 목표한 것은 반드시 네 것으로 만들었지. 그 끈질긴 추진력과 불굴의 의지가 너를 오늘의 자리까지 오르게 했고, 너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허나 그 모든 성공 뒤에 감추어진 한 사람의 노고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너의 아내 말이다.
고교 친구들은 너를 리처드 기어를 닮았다고 말한다. 그렇다. 너는 훤칠한 키에 이국적인 이목구비에 지성까지 겸비했으니, 잘난 거 맞다.
그럼에도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네 아내는 네게 버겁다.
누가 봐도 빼어난 미인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외모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감당하는 삶의 무게와 내공이 아름다움을 더한다. 집안일이며 자녀 교육이며, 너는 가정의 대소사를 그녀에게 맡긴 채 오직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녀는 묵묵히 그 모든 짐을 감내하며 너를 뒷받침해주고 있지 않느냐.
그런 아내가 가끔 "흰머리도 오빠 때문이고, 손의 깊어진 주름도 오빠 때문이다."라고 말할 때, 그건 원망이라기보다 사랑의 표시다. 그러니 귀엽게 받아들여라. 네 아내가 만약 진짜 화가 났다면, 그런 말 대신 더 무서운 침묵이 이어졌을 것이다. 부부란 본디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더냐. 너는 앞만 보고 달리는 마라토너라면, 그녀는 묵묵히 템포를 맞추며 네 뒤를 지켜주는 페이스메이커 같은 존재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네가 진짜 리처드 기어를 닮았다면, 그녀가 아니더라도 이미 전 세계 미녀들이 너를 쫓아다녔겠지.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리처드 기어는 모르겠지만, 네가 가진 가장 큰 행운은 바로 그녀와 함께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네가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동안, 네 집은 어떻게 유지되었겠느냐. 네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고, 가정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것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그 모든 것이 그녀의 보이지 않는 노력 덕분이다. 만약 집안일과 아이들의 교육을 네가 맡았다고 가정해 보자. 음식을 할 때마다 소금과 설탕을 헷갈리고, 세탁기를 돌리는 방법조차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너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난다. 그런 혼란 속에서 네 사업이 지금처럼 탄탄하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친구야, 네가 아무리 바쁘고 중요한 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가끔은 아내에게 "고생 많다"라고 말해주어라. 그리고 그 말에 진심을 담아야 한다. 네가 성공을 이뤄가는 동안, 그녀는 가족을 지키는 성공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만약 네가 한 번이라도 직접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도맡아 본다면, 그녀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는지 몸소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안다. 네가 그런 역할을 자청하지는 않을 것임을. 그러니 그저 아내의 작은 푸념을 애정 어린 고백으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해 주길 바란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번에는 리처드 기어와 비교하지 말고, 네가 어떻게 하면 아내에게 멋진 남편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자. 그러면 내가 너를 진짜 멋진 사내라고 인정해 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
친구야, 가정도 결국 사업처럼 꾸려가는 것이니, 아내라는 CEO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보아라. 그리하여 네 삶이 더욱 균형 잡힌 성공을 이루기를 바란다.
늘 건강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너의 고교 친구 청람 보냄